김원웅 부모의 서훈을 정밀 조사해야 하는 이유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2022. 9. 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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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서훈된 '광복군 김근수'가 1992년 사망한 김원웅의 부친인가 아닌가
창씨개명한 모친 전월선도 허술한 인우보증 세 건만으로 독립유공자 선정돼

(시사저널=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김희선 전 민주당 국회의원은 평생 자신이 광복군 제3지대장이었던 김학규(金學奎) 선생의 친손녀임을 내세우며 그 덕을 보고 살았다. 심지어 자기 아버지도 독립운동가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뒤에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일단 두 집안은 본관이 달랐다. 김학규 선생의 친며느리 증언으로 점화된 이 사건의 끝은 더 충격적이었다. 김희선의 친부는 만주국 특무(형사 또는 경찰관에 해당)로 활동했던 김일련(일본명 가네야마 에이이치)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독립운동을 탄압한 인물이었다. 악질 친일파 자손이 유공자 자손으로 둔갑한 대표적 예였다.

솔직히 말해 소위 독립유공자 중 불량 유공자, 허위 유공자가 의외로 많다. 그렇다 보니 가짜 유공자 자손도 많은 게 사실이다. 인우보증 제도를 통해 몇몇의 증언으로 유공자가 선정되는 허술함도 이런 혼란을 가중시켰다. 일본군 학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가담한 장준하는 광복이 다가오자 별별 이상한 사람들이 광복군에 가담하고는 졸지에 독립투사로 둔갑하는 세태를 개탄했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2019년 11월7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반일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김 전 회장의 모친은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을 했으며 그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재조사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만주에서 개장수 하던 사람들까지 갑자기 독립투사 행세

만주에서 '개장수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만주 독립투사로 행세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유행했었다. 심지어 1945년 8월15일부터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들'이 있다는 얘기도 유행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수립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적대적이었던 인사들이 우르르 건국유공자가 되고 건국훈장을 받는 해괴한 일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원웅(金元雄) 전 민주당 의원(1944~)이 광복회장 당시 저질렀던 큰 비리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금액은 10억원대에 육박한다. 아마도 액수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여기에 대해 "이 같은 불법이 과거 정부에서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며 "정권의 비호를 받은 비리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시도 때도 없는 반(反)대한민국적, 심지어 북한 체제 찬양적인 종북(從北)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으며, 좌충우돌 모순적인 주장으로 빈축을 사기 일쑤였다. 정치적으로도 그는 현란한 변신을 일삼았다. 1972년 김원웅은 민주공화당 사무처 직원 공채에 합격해 공채 7기 당료로 근무를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집권당인 민정당에서 고위 당료를 맡으면서 활동했다. 그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친일 반민족 정권"이라고 매도했으니 그의 논리대로라면 자신이 그 정권에서 일한 셈이 된다. 생계 때문에 그리한 것이라는 군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전국구로 입후보해 낙선한 이후,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 대전 대덕에서 당선됐고, 16대 때는 한나라당으로 당선, 17대 때는 열린우리당으로 당선, 18대 때는 통합민주당으로 낙선했다. 당적 변경은 너무 빈번해 다 언급하기조차 힘들다. 어질어질할 정도의 변신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행각에 더불어 유공자 자손이라는 그의 지위가 의혹투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부친 김근수부터 살펴보자. 정부는 1963년 '광복군 출신 김근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는데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런데 김원웅의 부친인 김근수는 1977년 건국포장을 받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고 1992년 사망했다. 1963년에 사망한 사람이 1992년에 또 사망한 셈이다. 또한 1963년에 이미 사망한 김근수(평안북도 출신)와 1992년 사망한 김근수(경상남도 출신, 김원웅 선친)의 행적도 다르고, 무엇보다 출신지가 다르다. 이미 광복회 내에서도 김원웅의 부친은 독립유공자 김근수(1963년에 이미 작고한 분)가 아니라는 주장이 계속 나왔었다. 김원웅은 그동안 이 문제에 답변을 회피해 왔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물의가 적게 일어날 잘못이라면 보훈처 기록 관리의 문제와 사실 확인의 미비였을 것이지만, 이것도 가벼운 문제는 아니다.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혼선이 생겼거나, 엉뚱한 사람이 독립유공자가 됐을 경우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이 모든 것이 희대의 사기극이었을 가능성이다. 생각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보훈처와 광복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 재조사 필요

김원웅은 창씨개명한 사람들을 전부 친일파로 마구잡이로 몰아붙였다. 그런데 그의 모친인 전월선(全月善)이 1940년에 '에모토 시마지'로 창씨개명을 한 증거가 나왔다. 자기 논리대로라면 자기가 친일파 집안이 돼버린다. 그런데 이 시기는 전씨가 조선의용대 활동을 했다는 시기와 겹친다. 조선반도에서 창씨개명을 하고, 동시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거대한 모순이 생긴다. 또한 독립 공적이 있는 전월순(全月順)이라는 여성은 김원웅 모친인 전월선의 언니이며 1953년 사망했다. 김원웅의 모친인 전월선은 2009년 사망했다.

일단 그동안 전월선과 전월순이 동일인이라는 김원웅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확실하다. 자기 큰이모의 존재를 모르다가 전월순의 기록이 나오자 이제야 알았다는 김원웅의 변명도 앞뒤가 안 맞는다. 전월선이 소위 독립유공자가 된 과정도 허술한 인우보증 세 건인 것으로 밝혀졌다. 근래에 광복회 인사들이 전월선은 독립유공자가 아니고 그동안 김원웅이 거짓말을 했다고 공개 주장하고 나섰다. 아예 전월순이라는 유공자가 김원웅 집안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김근수-전월선-김원웅 관계를 명확하게 조사하라고 광복회 원로와 관련자들('광복회 개혁모임'과 광복군 제2지대 후손들 모임인 '장안회'), 그리고 시민단체가 검찰에 김씨를 고발했지만, 문재인 정권하의 보훈처에서는 '기록에 착오가 있었던 듯하다' '자료가 부족하다'며 모두 덮어버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제는 대충 넘어갈 사안이 아니게 됐다. 보훈처와 광복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제대로 조사해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두 기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일이다. 적어도 그동안의 오류가 일어난 경위를 밝히고, 밝혀진 사실관계의 모순을 해소해야만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사기극이었을 경우에는 바로잡는 용기를 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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