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성격 판단은 시간에 맡기라
이근미 작가
성격유형검사 MBTI 열풍
이것 모르면 구세대로 몰려
스펙·관상에 자신하다가도
뒤통수 맞고 잘못봤네 후회
사람 판별 최고 수단은 시간
오래 함께하면 바닥 드러나
상대방이 신세대인지 구세대인지를 알아보는 방법 중 ‘MBTI를 묻느냐, 혈액형을 묻느냐’가 있다. 지인들을 만나 MBTI를 물어보면 “그게 뭐야?”라는 반문이 많고 “아, 해봤는데 까먹었어”라는 답변이 이어진다. “그거 모르면 구세대야, 정신 차려” 하고 큰소리치면서 내 성향을 설명해주는 게 다음 순서다.
MBTI는 이사벨 마이어스(Myers)와 캐서린 브릭스(Briggs)가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유형검사를 뜻한다. 요즘 네이버의 MBTI 검색량이 하루 10여만 건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2019년까지만 해도 MBTI 검색량이 많지 않았는데, 2020년부터 급격히 늘어나더니 지금도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연령별 MBTI 관심도는 20대와 30대가 가장 높고 그 뒤를 이어 40대, 10대, 50대 순이라고 한다.
이미 오래전에 개발된 MBTI 성격유형검사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뭘까. 코로나 사태로 대면 활동이 줄었을 때 상대방을 빨리 파악하려는 시도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연예인들이 너도나도 MBTI를 공개한 것이 유행 몰이를 한 측면도 있다. 영국 사이트에서 ‘16퍼스낼리티(personality)’라는 MBTI 약식 검사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열풍이 시작되었다는 추측도 나왔다. 질문에 답하면 금방 결과가 나오는 무료 검사지 덕분에 MBTI가 급부상한 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SNS에 자신의 유형을 공개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
MBTI 열풍은 우리나라를 넘어 가히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자기 MBTI 정도는 알아야지” 하며 재촉하곤 한다. ‘셀프브랜딩 시대에 나를 잘 알고 나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자기 분석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MBTI에 그다지 관심 없는 지인들이 내세우는 외면 이유는 복잡함과 ‘귀차니즘’이다. 하긴 딱 네 가지 유형인 혈액형성격론은 간단명료했다. 예를 들어 ‘남자 B형은 완전 재수없다’는 게 지난 반세기 동안의 낙인이었다. 오죽했으면 ‘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까지 나왔겠는가. 여자친구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남자 주인공이 극장에서 빨대로 보약을 쪽쪽 마시는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A형은 내성적, B형은 자유분방, O형은 외향적, AB형은 오리무중. ABO식 혈액형별 성격은 이런 도식에 대입하면 간단한데, MBTI는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다. 내향적(I)인지 외향적(E)인지, 직관적(N)인지 감각적(S)인지, 감정적(F)인지 사고적(T)인지, 인식적(P)인지 판단적(J)인지 따져 무려 16개 성격유형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같은 유형이 A형과 T형으로 나뉘기까지 한다.
복잡다단해 보이지만 ‘MBTI도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에서 한때 유행했던 혈액형성격론과 같은 수준’이라고 비판하는 심리학자도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검사지는 약식에 불과하므로 정확성이나 상세한 분석과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제대로 알고 싶다면, 검증된 정식 검사를 받으라는 게 전문가들의 권유다.
지인들이 MBTI에 심드렁한 진짜 이유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딱 보니 알겠다’ ‘몇 마디 나눠보니 다 뜨네’ ‘스펙 보면 대충 답이 보인다’며 자신의 눈썰미와 경륜을 확신하는 세대가 된 것이다. 사실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하다 보면 상대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슬쩍 던진 질문을 통해 얻은 전공과 종교·고향·형제 관계 등을 대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에 대해 다 알았다고 확신하게 된다.
문제는 뒤통수를 세게 맞고 나서 ‘내가 사람 잘못 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세상에 믿을 인간 없다’라며 통탄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는 점이다. 어쩌면 상대방의 성향보다 나의 성향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게 우선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무조건 믿는 건 아닌지,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은지, 자신을 과신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점검하고 다른 사람의 판단도 받아보는 게 좋다. ‘사기공화국에서 살아남기’라는 책까지 나온 마당이니 꺼진 불도 다시 보며 살아야 할 판이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뒤늦게 외면당하거나 배신당하는 낭패는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혈액형, MBTI, 체질, 스펙, 관상, 이 모든 것보다 사람을 판별하기 좋은 수단은 시간이다. 오래 함께하다 보면 그 사람의 바닥이 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시간은 내가 수렁에 빠졌을 때 외면하는지, 도움을 주는지 지켜볼 수 있게 해준다.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기쁜 일을 진정으로 축하해주는지’를 꼭 살펴봐야 한다.
요즘 취업 현장이나 결혼시장에서 MBTI는 필수 기재 항목이 되었다. 판단에 어느 정도나마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게다. 상대의 성향이 궁금하면 내 패도 보여줘야 하는 세상이다. 제자나 후배의 질문에 “MBTI가 뭐야?”라고 했다가 ‘꼰대 라떼’ 소리 듣기 전에 유행 아이템은 미리미리 챙기는 게 나을 듯하다.
너무 앞서 나가 시행착오를 자처할 필요도 없지만, 다들 아는 거 혼자만 모르면 피차 답답해진다. 게다가 사람을 파악하는 새로운 방법 같은 거라면 알아둬서 나쁠 게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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