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상회담에 대한 한일 양국의 엇갈린 입장 발표, 왜?

박원경 기자 2022. 9. 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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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된다고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놓고 시간을 조율 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본과는 양자 회담을 하기로 일찌감치 서로 합의해놓고 일정을 조율 중에 있다"며, "이번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한일 양국이) 흔쾌히 합의가 됐다"고도 말했다.

발표 이후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확정된 것처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2019년 12월 24일 이후, 2년 9개월여 만에 개최되는 한일 양국 정상의 대면 정상회담.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해빙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일 정상회담 합의" vs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측 브리핑 후 몇 시간 뒤 나온 일본 측의 입장은 달랐다.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기시다 총리는 여러 사정이 허락하면 유엔 총회에 출석하는 방향으로 조정 중이지만, 뉴욕 방문의 구체적인 일정은 현 시점에서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이 한일 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눈여겨볼 점은 기시다 일본 총리의 유엔 총회 참석에 대해서도 확정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시다 총리의 유엔 총회 참석을 전제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했는데, 일본 측은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물론 유엔 총회 참석도 확인하지 않은 입장 차가 발생한 건 왜일까.
 

"기시다 총리 해외 방문 국회 승인 아직 안 나"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기시다 총리가 유엔 총회에 참석한다는 것을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총리가 해외에 나가기 위해서는 국회의 승인이 필요한데, 아직 그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일본은 통상 국회 승인 등 절차가 마무리 되면 총리의 해외 방문 계획 등이 발표 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일본 관방장관이 기시다 총리의 유엔 총회 참석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일본 내부의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관방장관과 일본 측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총리의 해외 순방을 위한 일본 내부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는데 한국 측이 유엔 총회 참석을 전제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한 것에 대한 불쾌감 내지 불만도 감지된다.

'정상회담 발표'에 대한 한국 외교안보 라인의 불만

어제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의 한일 정상회담 개최 발표는 사실 좀 이례적이었다. 통상 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되면 양국에서 동시에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지난 5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역시 개최 사실을 한미 양국이 같은 시간에 동시에 발표했다. 국가안보실도 이런 관례를 모르지 않을 텐데, 어제는 왜 먼저 발표한 것일까.

한일 양국 사정에 밝은 한 외교 소식통은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건, 이미 며칠 전에 양국이 합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본 측이 한일 정상회담 개최 결정 발표를 계속해서 미루거나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한국 측 외교안보 라인에서는 일본 측이 일종의 갑질을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긴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어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표는 어쩌면 전략적인 선택이었다는 해석이다.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일본 측에 끌려가지 않겠다, 어제 발표를 통해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는 전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와는 무관하게 어제 양국의 입장 발표를 통해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일본의 선택에 달린 것으로 비춰지게 된 측면이 있어 악수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시다 총리의 일본 국내 정치적 위기

어제 발표가 한일 관계 개선을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에 둔 윤석열 정부의 조급함을 노출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30%대의 국정 운영 지지율 정체 상황에서 외교적 성과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대통령의 순방 전에 발표하기 위해 서둘렀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다 총리가 현재 일본 국내에서 처해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역시 어제 발표는 좋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현재 일본에서 딜레마적 상황에 처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베 전 총리를 계승하며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국장까지 결정했는데, 이후 아베 전 총리와 통일교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장 결정도 비판받고 있는 게 현재 기시다 총리의 상황이다.

그렇다고 아베 전 총리와 거리두기 하기도 어렵다. 아베 전 총리 측의 도움이 없이는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아베 전 총리의 정통성을 강화하려면 통일교 등과 관련된 문제점을 덮거나 합리화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한일 양국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인 관계 개선

아베 전 총리의 리더십을 계승하겠다고 기사다 총리가 밝힌 만큼,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기도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베가 누군가. '보통국가화'로 대표되는 우경화의 주역이다. 수출 규제와 과거사 부정 등을 통해 한일 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장본인 인만큼, 아베 리더십 계승을 내건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전향적 시도는 앞뒤가 맞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한일 양국 모두에서 조심스러운 주제인 한일 관계 개선. 이 상황에서 한국이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먼저 발표했다. 일본 측의 모호한 입장 발표에도 외교가에서는 유엔 총회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는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지율 하락이라는 위기를 동시에 맞은 한일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반전을 모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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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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