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변비에 걸린 전갈 연구한 과학자, 짝퉁 노벨상 받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2. 9. 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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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그 노벨상 수상 10팀 발표
새끼 오리들이 어미를 따라 일렬로 헤엄치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이그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업적이다./pixabay

변비에 걸린 전갈은 짝짓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둥근 문 손잡이를 효율적으로 돌리려면 손가락이 몇 개 필요할까? 새끼 오리는 왜 어미를 따라 줄지어 헤엄칠까? 아이의 엉뚱한 질문 같은 호기심을 진지하게 연구한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다. 단 재미로 주는 짝퉁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지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웨스트 체스터대의 프랭크 피시 교수 연구진이 새끼 오리들이 어미를 따라 줄지어 헤엄치는 이유를 유체역학으로 밝혀 제32회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 물리학상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연보는 이날 10개 부문 수상자를 발표했다.

오리의 에너지 아끼는 일렬 대형

이그 노벨상은 노벨상 발표 한 달 전에 발표하는 일종의 ‘짝퉁 노벨상’이다. 이그는 ‘있을 법하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이라는 영어 단어의 약자다. 주최 측은 “사람들이 한바탕 웃고 나서 새로운 생각을 할 기회를 제공한 연구에 상을 수여했다”라고 밝혔다. 올해 시상식은 코로나 대유행으로 온라인으로 개최됐는데, 수상자들의 발표에 영국의 생화학자 리처드 로버트 경 같은 실제 실제 노벨상 수상자 8명도 참석했다.

피시 교수는 1990년대 박사 학위 과정에 있을 때 대학 안으로 흐르는 강물에서 어미와 새끼 오리들이 줄지어 헤엄치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그는 사향쥐의 헤엄을 유체역학으로 분석한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했을 때였다. 그는 오리 역시 유체역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조에 어미 모형을 띄우고 새끼들이 따라 헤엄치도록 하는 실험을 통해 일렬로 헤엄치면 소용돌이로 인해 뒤따라 오는 새끼들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음을 밝혔다. 20여년 뒤 스코틀랜드 스트레스클라이드대의 유체역학자인 지밍 유안 교수도 오리의 헤엄을 컴퓨터 모델로 분석해 같은 결론을 얻었다. 두 사람은 이그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그 노벨상의 마스코트인 '냄새나는 사람(The Stinker)'.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패러디했다./Ig Nobel

변비 걸린 전갈도 짝 찾는다

일본 지바 공대의 겐 마츠자키 교수는 1999년 크기가 다른 둥근 문 손잡이를 돌리는 데 최적인 손가락 개수를 밝힌 논문을 일본 디자인과학학회 연보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올해 이그 노벨 공학상을 받았다.

지바 공대 연구진은 자원자 32명에게 각각 크기가 다른 손잡이를 돌리도록 했다. 그 결과 손잡이의 지름이 1㎝보다 크면 돌리는 데 손가락 세 개가 필요하고, 2.5㎝를 넘으면 손 가락 네 개로 돌릴 수 있음을 밝혔다. 5㎝를 넘으면 다섯 손가락이 모두 필요하다. 연구진은 당시 볼륨 조절 장치나 수도꼭지를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제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고 밝혔다.

생물학상은 변비가 전갈의 짝짓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밝힌 콜롬비아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전갈이 천적을 만나면 도마뱀처럼 꼬리를 스스로 잘라내고 도망간다. 이런 자절(自切)을 하고 나면 몸무게의 25%를 잃는다. 특히 소화기관의 마지막 부분인 항문을 잃는다. 자연 변비에 걸려 이동이 힘들어진다. 연구진은 관찰 결과 전갈 수컷은 자절과 변비로 이동이 힘들었지만, 변비로 죽기까지 수 개월이 걸려 그 사이 짝짓기는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스웨덴에서 만든 자동차 충돌시험용 사슴 더미./Magnus Gens

법 조항의 난해성은 글 못 쓰는 탓

영국 에든버러대의 프랜시스 몰리카 교수는 법률 문서가 왜 그리 이해하기 힘든지 밝힌 연구로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법 문서가 난해한 원인은 개념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두 문장을 따로 쓰지 않고 한 문장 안에 중문으로 만드는 것이 이해를 가로막는 예로 꼽혔다.

브라질 과학자들은 2018년 성공한 사람은 재능이 뛰어나기보다 아니라 운이 좋았기 때문임을 수학적으로 밝혀 경제학상을 받았다. 스웨덴의 IT(정보기술) 엔지니어인 마그누스 장은 2001년 석사 학위 논문으로 큰 사슴을 본떠 충돌시험용 더미를 만들었다. 북유럽에서 사슴과 자동차 충돌 사고가 자주 일어나 그 피해를 예측할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연구로 안전공학상을 받았다.

그밖에 첫눈에 반할 때 생리적으로 동기화가 일어난다고 밝힌 연구는 응용 심장병학상, 항암 치료의 부작용을 막는 데 아이스크림이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의학상을 받았다. 고대 마야인의 그릇에서 제식에 술과 환각제를 썼다는 증거를 찾아낸 연구에는 미술사상이 돌아갔으며, 수다를 떨 때 진실 또는 거짓말을 할지 결정하도록 돕는 알고리즘은 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여러 수상자 배출

우리나라는 아직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지만 이그 노벨상에서는 한국인 수상자가 여럿 있다. 1999년 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향기나는 정장’을 개발한 공로로 환경보호상, 2000년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1960년 36쌍에서 시작해 1997년 3600만쌍까지 합동 결혼시킨 공로로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또 1992년 10월 28일 자정 세상의 종말인 휴거(携擧)가 온다고 주장했던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는 2011년 이그 노벨 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최근에는 미국 버지니아대의 한지원씨가 커피잔을 들고 다닐 때 커피를 쏟는 현상에 대해 연구한 공로로 2017년 유체역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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