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생존형 숲해설가 나무공부 분투기 '숲속 인생 산책'

민혜정 2022. 9. 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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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품 팔아 찾아간 전국 37개 숲의 나무와 꽃에서 길어 올린 삶의 이야기

[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글쓰기 강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저자는 숲해설가들에게 스토리텔링 강의를 한 것을 계기로 '생존 툴'을 하나 더 축적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숲해설가 세계에 덜컥 발을 디딘다.

나무와 꽃조차 구별하지 못했던 '나무맹'에게 숲해설가의 길은 까마득해 엄두가 나지 않고 순간순간 후회가 밀려든다. 봐도 봐도 떡갈나무인지 신갈나무인지 갈참나무인지 졸참나무인지 굴참나무인지 상수리나무인지 곧바로 이름이 튀어나오지 않아 숲해설가로 살아가는 삶을 버겁게 한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숲으로 가는 길'이라는 코너를 맡게 되면서 저자는 방송을 위해 매주 전국의 숲과 수목원, 공원 등을 발품 팔아 다니며 열심히 준비한다.

숲속 인생 산책 [사진=동연]

이 책은 저자(김서정)가 방송을 준비하면서 쌓은 지식들과 거기서 얻은 느낌들을 모은 '식물 에세이'이자, 이제는 선배 숲해설가로서 식물이 열어준 열린 세상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다.

저자에게는 식물 트라우마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학교 뒤뜰에 전시를 앞둔 국화꽃이 너무 예쁜 나머지 잠깐 손을 댔다가 관리하는 어른 손바닥이 뺨에 꽂힌 이후로 식물은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오히려 트라우마 차단을 위해 스스로 거리를 둔다.

저자는 트라우마 극복도 할 겸 나무 공부를 하지만 나무와 꽃조차 구별하지 못했던 '나무맹'에게 숲해설가의 길은 까마득해 엄두가 나지 않고 순간순간 후회가 밀려든다.

선유도공원에서 이태리포플러를 만나도 양버들은 아닌지 다람쥐보다 더 뛰어난 망각에 머리를 쥐어뜯고, 때죽나무 꽃이 피었다고 SNS에 사진을 찍어 올렸더니 쪽동백나무 꽃 같다는 댓글을 보고 잎 크기만으로도 동정할 수 있는 나무를 착각했기에 화들짝 얼굴을 붉히기도 하며, TV 드라마를 보면서도 내용보다는 화면 배경에 등장하는 나무를 동정하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직업병도 생긴다.

식물 동정은 쉽지 않았다. 뻗은 가지 모양이 작살처럼 보여 작살나무로 생각했는데 잎 전체에 톱니가 없어 좀작살나무라 하고, 연못가에서 핫도그 열매를 달고 있는 식물은 부들이겠거니 하는데 열매와 암꽃이삭에 거리가 있어 애기부들이 되고, 마로니에공원이라고 해서 느닷없이 고독해지는데 열매에 가시가 없어 일본칠엽수라 한다. 봐도 봐도 떡갈나무인지 신갈나무인지 갈참나무인지 졸참나무인지 굴참나무인지 상수리나무인지 곧바로 이름이 튀어나오지 않는 참나무과 앞에만 서면 위축되는 식물 동정이 숲해설가로 살아가는 삶을 버겁게 한다.

책들을 보면서 머릿속에 기억하려고 못을 박듯이 꾹꾹 눌러놓아도 갈수록 퇴화되는 세포 탓인지 해설 내용이 나방 우화하듯이 매끈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하더라도 숲 현장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숲해설을 하는 건 실내에서 영상자료를 띄우며 순서대로 하는 강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릴 적도 있고 한참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말문이 콱 막히는 적도 있다. 해설에 한창 열을 올리는 참가자들이 중간에 갑자기 질문을 해오면 기운이 푹 꺾이기도 하고, 움직이는 생물이 보이면 아이들이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통에 해설 자체가 어려워질 때도 있다. 자신의 해설 실력과 기억 세포를 노화시키는 세월을 탓하면서도 이럴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숲다운 숲을 발품 팔아 다니면서 나무의 온전한 느낌을 자신의 몸에 깃들게 하는 방법뿐이다. 그 느낌을 참가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연결해야 숲해설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은 숲해설가 활동 자체가 막히는 막막한 상황이 된다. 다행히 저자에게는 천운으로 그 어렵다는 방송국 고정 출연의 기회가 온다. KBS '오늘아침1라디오'에서 '숲으로 가는 길' 코너를 매주 금요일 진행하게 된 것.

새벽 6시경 방송이라 그야말로 분투가 시작된다. 두 번 오지 않을 기회이기에 저자는 방송을 위해 매주 전국의 숲과 수목원, 공원 등을 발품 팔아 다니며 방송을 준비한다. 원칙은 1주일에 딱 두 개의 나무만 소개하는 것. 그 방송 내용을 글로 풀어내 인터넷 신문에 연재한다.

짧은 시간의 방송에서 온전히 소개하지 못한 나무 이야기를 '나무 화두'로 자신의 삶의 굴곡들, 우리 모두가 맞닥뜨린 고민들에 대입해 풀어낸다. 숲해설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경험을 녹여내 숲해설가 길라잡이로서도 선배가 전해주는 귀한 이야기다.

저자는 나무 공부를 하면서 지금껏 절반의 인식만으로 부족한 삶을 살아왔다는 걸 느낀다.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식물을 긴 세월 인식에서 배제하거나 소홀히 취급하거나 종속적 노예처럼 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는 나무 공부를 하면서 깊은 회한을 남겼고, 나무를 위주로 하는 새로운 사유로 부상하게 된다. 나무를 중심으로 해나가는 사유들이 그동안 부족했던 절반의 삶에 완벽한 꽃을 보는 것 같은 기쁨을 채워줬던 셈이다.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면서 쌓은 지식들과 거기서 얻은 느낌들을 자신의 삶과 연결해 녹여내는 글들을 모은 이 책은 '식물 에세이'이면서도 식물과 삶이 하나로 연결되도록 구성한 이야기들이 나무와 풀의 생태적 관찰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차원으로 상승한다.

/민혜정 기자(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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