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위 해제' 신당역 살해범, 피해자 야근 어떻게 알았나
지난해 불법촬영 혐의 고소돼 직위 해제
내부망 접속으로 피해자 근무형태 파악
재판 끝나 징계 개시돼야 접속 권한 박탈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순찰 중이던 20대 여성 역무원이 흉기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서울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과 관련해 "이러한 범죄가 발붙일 수 없게 하라"며 법무부에 '스토킹 방지법' 보완을 지시했다.
피해자인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A(28)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된 뒤 약 2시간 반 후 사망 선고받았다. 피의자 전 모(31) 씨는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는 A 씨의 입사 동기로 알려졌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흉기 살해 혐의를 적용해 15일 전 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B 씨는 3년여 전부터 A 씨를 스토킹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가 불법 촬영과 스토킹을 이유로 2차례나 고소했음에도 법원은 용의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경찰과 검찰은 가해자의 접근을 막지 못했다.
그는 피해자를 지속해서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B 씨는 지난해 불법 촬영 혐의로 고소된 후 직위 해제됐지만 내부망을 통해 A 씨가 이날 오후 6시부터 야간근무에 투입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서울교통공사 내부망 접속 권한은 재판이 끝나고 징계 절차가 개시돼야 박탈되는 탓에 전 씨의 내부망 접속으로 개인 연락처, 구내전화를 비롯해 근무지 정보, 근무 형태, 담당 업무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전 씨는 전날 오후 7시 50분께부터 역사 내 화장실 앞에 숨어 A 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1시간 10분 후 순찰하던 A 씨를 상대로 범행했다.
범행 당시 평소 집에서 쓰던 일회용 위생모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전 씨는 A 씨가 역내 순찰을 하다 오후 9시께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자 곧장 흉기를 휘둘렀고, 흉기에 찔린 A 씨는 화장실에 있는 비상벨로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역사 직원과 사회복무요원·시민 등이 함께 전 씨를 붙잡아두고서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인계했다.
A 씨의 가족들은 A 씨가 3년여 전부터 전 씨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 씨는 A 씨에게 300차례 이상 전화를 하고 메시지 등을 남기며 계속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또 전 씨는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하고 만남을 강요한 혐의로 두 차례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했다.
이 사건으로 직위 해제된 전 씨는 이후에도 스토킹을 멈추지 않았다. 가족들에 따르면 "내 인생 망치고 싶지 않으면 합의하자", "원하는 조건이 뭐든 다 맞춰주겠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20여 건 보냈다고 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스토킹 처벌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친고죄다 보니까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스토커들이 피해자를 쫓아다니면서 계속 합의 종용하고 협박하는 문제점은 애초에 입법할 때부터가 얘기가 됐었다. 그런데 그게 법률 개정이 안 된 바람에 계속 합의해달라고 스토킹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구속이 됐으면 아마 이 여성은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A 씨로부터 고소당한 전 씨는 재판에 넘겨졌으며 범행 다음 날인 15일이 1심 선고일이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8일 그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전 씨는 범행 당일에도 법원에 두 달 치 반성문을 제출했으며, 이전에도 반성문을 지속해서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전 씨가 낮에는 사과와 사죄와 반성의 글이 가득한 반성문을 내고 밤에는 살인한 것에 대해 "피고인이 인지적인 여러 가지 왜곡부터 시작해서 거의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간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 사법제도가 피의자에게 최대한의 기회를 다 주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상습 스토킹 사건인데도 구속영장 청구도 안 했다. 피의자의 주소가 분명하고 직업이 확실하다는 것 때문에 결국에는 모든 재판에서 유리할 수 있는 정황을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고 지적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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