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컴퍼니빌더의 '종횡무진'..음원 IP 투자부터 뉴욕증시 진출까지 [긱스]
팀을 만드는 것을 즐기고 또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타고난 컴퍼니빌더(Company-builder) 말이다. 1993년생인 이장원 콘텐츠테크놀로지스 대표는 이미 대학 2학년 때 서울대 음식 배달 플랫폼 '샤달'을 만들었다. 군 제대 후엔 음악 악보 거래 서비스 '마피아'를 공동 창업했다. 그 다음엔 아예 콘텐츠 지식재산권(IP)와 금융을 접목해 회사들을 직접 만드는 컴퍼니빌딩 회사 콘텐츠테크놀로지스를 창업했다.
이곳에서 설립 1년 만에 2650억원을 투자받은 비욘드뮤직이 탄생했다. K-팝 투자상품으로 미국 증시에 진출한 자산운용사도 나왔다.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90년대생 컴퍼니빌더 이장원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나봤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한국 K-팝 가수에게 투자할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이달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정식 명칭은 'KPOP AND KOREAN ENTERTAINMENT ETF'로 주식처럼 실시간 거래할 수 있는 펀드 상품이다. 거래시 사용되는 티커 종목명은 'KPOP'이다.
미국 최초 상장된 한국 대중문화 ETF인 KPOP은 전통적인 자산운용사가 만든 상품이 아니다. 콘텐츠 지식재산권(IP) 기반 사업체를 운영하는 콘텐츠테크놀로지스의 자회사인 CT인베스트먼트가 처음 출시한 ETF다.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장원 콘텐츠테크놀로지스 대표(사진)는 "KPOP 종목명을 선점한 것으로 '게임 끝'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음 목표는 아시아 콘텐츠 ETF를 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KPOP 티커 선점으로 '게임 끝'
이 대표가 뉴욕증권거래소에 티커를 신청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그는 "KPOP 종목명이 남아있었단 게 신기할 정도로 행운이었다"고 했다. 메타버스 ETF만 보더라도 'META'란 종목명을 선점한 곳의 자산규모가 수십 배 많을 만큼 선점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국 주식 살래요? K팝 주식 살래요?'라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K팝 주식이라고 답할 것"이라며 "K팝에 관심 있는 미국 투자자들에게 손쉽게 한국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만든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KPOP ETF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인터렉티브 미디어 기업 등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30개 기업에 분산 투자한다. 펀드가 가장 많이 보유한 종목은 하이브 10.34%, CJ ENM 10.05%, JYP엔터테인먼트 9.84%, 네이버 9.73%, 카카오 9.57% 순이다. 딥러닝 기반 자연어 처리방식(NLP)을 통해 사업보고서에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미디어, 인터랙티브 등 K팝을 정의하는 키워드를 추출해 연관 기업을 선별한 뒤, 시가총액 가중방식으로 보유 종목을 정한다.
비욘드뮤직이 '트랙레코드'
일각에선 신생 운용사가 ETF를 출시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 대표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대규모 음원 IP를 보유한 비욘드뮤직의 운영 성과가 우리의 트랙레코드"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CT인베스트먼트는 약 2900억원 규모 국내 최대 음원 IP 자산(AUM)을 보유한 비욘드뮤직의 자매 기업이다. 콘텐츠테크놀로지스는 콘텐츠 IP를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컴퍼니 빌딩' 회사로, 비욘드뮤직매니지먼트와 CT인베스트먼트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비욘드뮤직매니지먼트는 비욘드뮤직의 음원 IP 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다. 비욘드뮤직의 음원 IP 수익이 불어날수록 비욘드뮤직매니지먼트의 관리 보수도 늘어나는 구조다. 이 대표는 이들 4개 회사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비욘드뮤직은 지난해부터 500억원 규모 음원 IP '메가딜'을 세 번 연속 주도했다. 지난해 5월 LF그룹으로부터 466억원에 KNC뮤직 인수를 시작으로, 지난 3월 FNC인베스트먼트, 4월에는 인터파크 음악사업부를 차례로 인수합병하면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 다비치 ‘8282’, 티아라 ‘롤리폴리’, 임창정 ‘내가 저지른 사랑’ 등 2만5000여곡의 음원 저작인접권을 전량 사들였다. 보유 음원 수 기준으로 비욘드뮤직은 SM엔터테인먼트 CJ ENM과 어깨를 견주는 수준이다.
이 대표는 "김현식, 박효신, 먼데이키즈 등 1990년대부터 2010년대 히트가수의 곡들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현금 흐름이 검증된 3~5년 이상의 음원을 사들이기 때문에 저작권료 수익을 탄탄하게 쌓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욘드뮤직은 지난해 멜론, 벅스 등 서비스에 제공한 노래들로만 약 50억원의 저작권료 수익을 냈다. 이 밖에 원 저작권자에게 수익이 귀속되지 않은 유튜브 콘텐츠를 잡아내고,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음원 플랫폼에 음원을 유통해 저작권 수익을 올리고 있다.
타고난 컴퍼니빌더
이 대표는 타고난 컴퍼니빌더다. 서울 대원외고에 다닐 때는 행동경제학회를 만들어 당시 유행하던 행동경제학 이론과 사례를 공부했다. 한국무용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무용 선생님의 권유로 만든 동아리였지만, 상고를 돌리며 꽹과리를 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1993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부 12학번인 그는 대학 2학년 때 이미 배달앱 '샤달'을 창업했다. 당시 '요기요' '배달의 민족'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서울대 인근의 찐 맛집 음식을 배달해주는 서비스였다. 이후 8개 대학으로 확대한 '캠퍼스달'을 출시했지만, 팀원들이 군에 입대하면서 팀은 해산했다.
군 제대 후엔 음악 악보 거래 플랫폼 '마피아(마음만은 피아니스트) 컴퍼니'를 공동 창업했다. 서울대 음악 동아리 활동을 했던 것을 인연으로 또다시 창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 대표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투자유치 등 자금 부문을 맡았다.
이 대표는 마피아컴퍼니를 7년여간 운영하면서 콘텐츠 저작권 사업에 눈을 떴다. 룰라의 '백일째 만남' 작곡가로 유명한 박근태 대표와 함께 비욘드뮤직매니지먼트를 공동 설립하게 된 배경이다. 박 대표가 음원 IP 매입 등 콘텐츠 사업을, 이 대표가 투자 관리 등 금융사업을 맡고 있다.
'금융'을 아는 창업가
이 대표는 스스로 '금융'을 잘 아는 창업가라 말한다. 그는 "샤달과 마피아에서 제품이나 플랫폼을 만들어봤지만 스노우와 크림을 만든 김창욱 대표만큼 잘 만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대신 엔젤투자와 펀드레이징을 직접 해보면서 스스로 자본시장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 금융과 IP를 결합한 콘텐츠테크놀로지스를 창업했다"고 설명했다.
보통 플랫폼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중요하지만 콘텐츠테크놀로지스는 자본시장 전략이 중심에 있는 회사다. 콘텐츠테크놀로지스의 핵심은 제품도 플랫폼도 아닌 '금융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느 CEO처럼 잘 만들어진 파워포인트(PPT)를 갖고 기업설명(IR)을 하지 않는다. 콘텐츠테크놀로지스가 올 초 진행한 프리 시리즈 A단계 라운드에서 170억원 규모 투자금을 유치할 때도 이 대표가 직접 화이트보드에 사업모델과 금융구조를 써 내려가며 사업 구조를 설명했다.
컴퍼니빌더 역할을 하는 콘텐츠테크놀로지스는 비욘드뮤직매니지먼트, CT인베스트먼트 외에도 레거시 IP 기반 음원 제작사 스튜디오 비욘드, 오리지널 음악 IP 및 2차 저작물 매니지먼트사 뮤지스틱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 회사에 투자해 보유 IP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게 목표다. 콘텐츠테크놀로지스의 투자사로는 SV인베스트먼트, 뮤렉스파트너스, KB인베스트먼트 등이 있다.
아시아 최대 음원 IP 회사로 성장
비욘드뮤직매니지먼트가 음원 IP를 관리하는 회사라면, 음원 저작인접권 투자는 비욘드뮤직파트너스가 맡는다. 일종의 음원 IP 권리 전문 투자사다. 홍콩에서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던 이재륜 대표가 이끌고 있다.
비욘드뮤직은 다수의 재무적 투자자들이 출자한 대규모 음원 IP를 보유하고 있는 법인이다. 비욘드뮤직의 투자목적회사(SPC)인 비욘드뮤직컴퍼니는 프랙시스캐피탈 공동 창업자인 이관훈 대표가 이끌고 있다. 프랙시스캐피탈은 지난해 11월 1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해 이 SPC의 지분 60%를 확보하며 최대 주주에 올랐다. 기존 주주인 메이븐인베스트먼트, 베이스인베스트먼트 비욘드뮤직이 나머지 지분을 갖고 있다. 프랙시스캐피탈은 지난 7월엔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을 통해 1000억원을 대출받아 추가로 출자했다. 누적 투자금은 2650억원에 이른다.
지식재산권(IP)은 상속 및 양도가 가능한 저작재산권과 불가능한 저작인격권으로 나뉜다. 저작재산권은 저작권(음악을 만든 저작자가 갖는 소유권)과 저작인접권(실연권 및 마스터권)으로 구분된다. 실연권은 실제로 곡을 연주한 사람이, 마스터권은 제작비를 지불한 기획사나 제작사가 갖는 권리다. 이 중 비욘드뮤직은 양수도가 가능한 저작인접권을 거래한다.
과거엔 저작인접권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기업이 없었지만, 영국 힙노시스 같은 저작인접권 전문 기업이 생기면서 관련 산업이 커지고 있다. 힙노시스는 미국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이 10억달러를 투자해 기업가치 2조원을 인정받기도 했다.
국내에선 비욘드뮤직 외에 음원 저작권료 청구권을 쪼개서 투자 거래하는 '조각투자 플랫폼' 뮤직카우가 있다. 뮤직카우는 사모펀드(PEF)인 스틱인베스트먼트와 함께 뮤직카우포트폴리오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고 초대형 음원 IP 펀드를 조성에 나선다. 가수 싸이로 활동하는 박재상 대표가 이끄는 엔터테인먼트사 피네이션도 음원 IP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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