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들 뒤에서 받치고 싶었다"..하정우, '수리남'의 수비수
[Dispatch=정태윤기자] 넷플릭스 '수리남'(감독 윤종빈)은, 연기 베테랑들만 모인 드라마다.
배우 황정민이 마약대부의 다크 포스를 내뿜으면, 조우진이 실감나는 조폭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박해수의 두 얼굴은 어떤가. 국정원 요원의 스마트함을 선보이다가, 어느새 양아치 사업가로 빙의한다.
이 쟁쟁한 배우들을 리드하는 1번 크레딧은, 바로 하정우다. 그는 '수리남' 배우 라인업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정우가 그린 '강인구'는 어땠을까. 인구는 유창한 언변을 가진 사업가다. 수리남에서 홍어 사업을 하려다, 마약상과 국정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우려 아닌 우려는, 강인구 캐릭터가 (다른 배역들에 비해) 다소 밋밋하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하정우를 잘 안다. 그는 특유의 덤덤한 얼굴로 현실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그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래서, '수리남'의 하정우도 납득 완료다. 극한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처세술을 펼친다. 타고난 배짱과 능청스런 언변으로 언더커버 역할을 200% 수행했다.
"1번 주연은 공격수 같지만, 실은 수비수입니다. 튀고 화려하면 지루해지죠. 작품을 쭉 끌고 가면서 주변인들을 돕는 게 1번 주연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하 하정우)
'디스패치'가 지난 13일 하정우를 만났다. '수리남'의 비하인드와 그의 연기 열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 "2년 반의 공백, 삶을 돌아보는 시간"
하정우는 소처럼 일하는 배우다. 지난 2005년부터 1년에 2~3작품씩 꾸준히 선보여왔다. 하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이에 그는 먼저 고개부터 숙였다.
"제 개인적인 일로 그동안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응원해주신 분들께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그는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짧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제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컴백작은 '수리남'이다. (참고로, 휴식기 이전 촬영한 3작품도 순차 개봉을 앞두고 있다. 향후 '보스턴 1947', '야행', '피랍' 등에서 하정우의 연기를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복귀는 성공적이다. 배우들의 맛깔나는 연기, 빠른 전개, 밀도 있는 연출, 예측불허 심리전 등으로 6부작을 단숨에 끌고 갔다.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역시 3위.
"오랜만의 작품이라 모든 게 낯설어요. 그동안 인터뷰하고 무대 인사 해왔던 것들이 다 리셋된 기분입니다. 이번이 첫 인터뷰, 첫 제작발표회, 첫 작품 같아요. 하하."
◆ "수리남, 하정우가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수리남' 이야기. 알고보니 하정우는 '수리남'의 시작점이었다. 그는 마약대부 조봉행 사건을 접하고 호기심을 느꼈다. 영화화를 결심하고, 윤 감독에게 제안했다.
그는 "15페이지 정도의 강인구(민간인 사업가 K씨) 인터뷰를 보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와 소재 모두 영화보다 더 영화 같더라"고 회상했다.
하정우는 가장 돋보이는 역할 대신 평범한 배역을 자처했다. 희대의 빌런 전요환(황정민 분)을 밀어두고, 민간 사업자인 강인구를 선택했다.
배우라면 극적인 캐릭터에 욕심이 나지 않을까? 하정우는 이 질문에 "1번 주연은 공격수 같지만, 수비수다"며 "튀려고 하면 오히려 지루해진다"고 연기 철학을 전했다.
"1번 주연은 오히려 꾸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인물들을 도우면서 극을 끌고 나가야 하죠. 저도 어떻게 해야 더 새롭고 나아질지 늘 고민합니다. 내공을 더 키워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강인구를 해석해냈다. 억지로 튀려 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1번 주연으로서 개성 강한 인물들을 조화롭게 모았다.
◆ "전주·제주도·부산 찍고, 도미니카까지 갔다"
연기도 연기지만, 촬영 여건 역시 고난이 따랐다. 그도 그럴게, ‘수리남’의 주 무대는 남미 수리남.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불발됐다.
결국 전주, 안성, 제주도, 부산 등 국내의 자연 친화적인 환경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막바지에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2개월간 촬영을 진행했다.
하정우는 “2달간 40회차나 넘겼다. 정말 많이 찍은 것”이라며 “도미니카에서도 밀림을 담아야 했다. 2~3시간 걸려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마피아 게임 신'. 극의 하이라이트다. 전요환이 총을 들고 스파이를 색출하는 신이다. 인물 갈등이 최고조에 올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대사량이 정말 많았어요. 같은 연기를 수십 번 반복했죠. 게다가 조금이라도 힘이 떨어지면 편집점이 안 맞았어요. 계속 감정을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마치 무대에서 공연하듯 찍었던 기억입니다."
그럼에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연기에 대한 의지였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선물을 가져오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간절히 복귀를 준비했다.
이제부터 다시, 다작 배우의 시작이다. 우리가 알던 '충무로 공무원'이 돌아왔다.
"드라마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매체잖아요? 큰 기회를 얻었는데, '수리남'이 많은 분들께 선물 같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많이 고생했지만, 그거 하나만 보고 '파이팅'을 이어갔죠. 즐겨주세요. 저는,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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