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지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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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지구를지켜츄>를 좋아한다. 주인공 츄는 사랑스럽고 친환경 주제도 마음에 든다. 알고 보니 츄는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출신이다. 지금 내가 이 원고를 쓰는 작업실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곳이다. 매일 이용하는 버스정류소 명칭이 ‘한림예고 앞’이다. 츄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의 인식과 기후변화의 관계도 그런 느낌이다. 희미하지만, 어쨌든 연결된다. 백팩에 텀블러를 챙기고 쓰레기를 분리해 버린다. 동시에 매일 지구를 망가트린다. 우리는 친구들과 고기를 굽고, 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달린다. ‘아아’를 다 마신 뒤에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버리면서 딱히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전례 없는 폭우와 폭염에 혀를 내두르지만, 내가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은 국내 스포츠 단체 중 가장 먼저 ‘유엔기후변화협약 스포츠 기후 행동 협정’에 가입했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 1997년 ‘교토기후변화협약(교토의정서), 2016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거쳐 이루어진 스포츠계의 참여가 2018년 ‘스포츠 기후 행동 협정(UN Sports for Climate Action Framework)’이다. 유엔과 국제축구연맹(FIFA), 유럽축구연맹(UEFA) 등이 손잡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최종 목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다.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각오가 대단하다. 2030년부터 탄소중립을 준수하지 않는 스포츠 이벤트는 취소 또는 연기된다. 스폰서십 기업과 중계권자에게도 동일한 기준이 요구된다. 화석연료를 판매하거나 이용하는 기업(정유사, 항공사 등)은 스폰서십 검토 대상에서 제외된다.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서도 친환경은 이미 새로운 사업 방향타로서 작동한다.
K리그의 ‘그린 킥오프’ 발표 자료는 ‘20년 후에도 우리는 축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스포츠 기후 행동 협정’이 제시한 다섯 가지 원칙 중 하나인 ‘친환경 필요성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축구 팬은 지금 당장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른다. 스포츠 이벤트를 구성하는 요소는 경기, 선수, 관중, 경기장이다. 특정 장소에 군중이 모인다는 뜻이다. 자신의 차를 이용해 경기장에 오는 팬이 많을수록 대기 중에 뿜는 탄소가 많아진다. 경기장의 전기 사용량이 증가할수록, 내방객이 매점에서 육류를 많이 소비할수록, 그 포장지가 일회용품일수록, 수분 섭취가 늘어 화장실에 가는 관중이 많을수록 해당 스포츠 이벤트는 지구 온난화를 더 적극적으로 악화시키는 셈이다.
‘스포츠 기후 행동 협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스포츠의 반환경적 요소를 하나씩 줄여가자는 구체적 강령이다.
스포츠가 지구를 지키는 방법은 다양하다. 스타디움은 LED 전구를 사용해 전기 사용량을 저감할 수 있다. 빗물관리시스템 설치는 화장실의 물 사용량을 줄인다. 스포츠팀의 실천 방법도 여러 가지다. 입장권을 모바일 티켓으로 바꾸면 그만큼 숲을 보호하는 효과를 낳는다. 선수단 버스를 전기차로 바꾼다든가, 셔틀버스를 운영해 팬들의 자가용 이용을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난 7월 2일 SK에너지가 모기업인 제주 유나이티드는 ‘탄소중립 경기’를 개최했다. 이날 서귀포월드컵경기장 매점에서는 식물성 대체육 핫도그와 육포, 비건 음식을 팬들에게 제공했다. 선수들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유니폼을 입었고, 관중에게 다회용기를 대여해 장내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했다. 2년 전부터 K리그는 안전문제로 금지했던 개인용 텀블러의 경기장 반입을 허용했다. 1만 명 단위로 군중이 모이는 스포츠 이벤트 현장에서 이런 기후 행동은 효과가 매우 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지연 개최된 2020 도쿄올림픽도 탄소중립이란 키워드를 내세웠다. 대회에서 사용된 약 5천 개의 메달은 모두 재활용 제품이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휴대폰 6백21만 대, 소형 가전제품 7만8천9백85톤을 수거해 금 32kg, 은 3,500kg, 동 2,200kg을 확보해 제작한 메달을 영광의 주인공들에게 걸어줬다. 논란이 되기도 했던 선수촌 내 골판지 침대도 구체적 기후 행동의 한 예였다. 대회 기간 내내 꺼지지 않는 메인 스타디움의 성화는 올림픽 최초로 수소 연료를 사용했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시장은 기후 행동에서도 앞서간다. 최상위 디비전인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해 리버풀, 아스널, 토트넘 등 ‘스포츠 기후 행동 협정’에 개별 가입한 클럽이 드물지 않다. 2019년 문을 연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안에서는 플라스틱 빨대와 봉지, 식기를 모두 없앴다. 런던 라이벌 아스널은 콜니 훈련장에 빗물관리시스템을 설치했고, 주변에 나무 2만9천 그루를 심어 넓은 숲을 조성했다. 나무 심기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다.
제일 주목할 만한 클럽은 3부 소속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다. 훈련장과 홈 경기장에서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는 완벽한 탄소중립을 달성했다. 모든 시설은 전기, 빗물 등을 재활용한 에너지원만으로 운영된다. 선수들이 섭취하는 음식도 전부 비건이다. 2015년 포레스트 그린은 유엔으로부터 탄소중립 인증을 획득한 세계 최초의 축구 클럽이 되었다. 지난해 홈 경기장 ‘뉴 로운 스타디움’ 앞에 ‘풀리 차지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기차 전문 유튜브 채널과 맺은 명명권 파트너십 계약의 결과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기후변화는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스포츠 생활에 깊숙이 들어왔다. 2050년 대한민국은 심각한 물 부족 국가가 된다.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해수면 탓에 잉글랜드에서는 92개 프로 클럽 중에서 23곳의 홈 경기장이 매년 침수 피해를 입는다는 예측도 있다. 이름부터 저지대(로 랜드)인 네덜란드의 축구 클럽들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K리그가 던진 화두처럼 우리가 20년 후에도 스포츠 참여와 관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여가를 즐길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일상 속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나무를 심는 일이다. 지금 당장.
Editor : 조진혁 | Words : 홍재민(축구 칼럼니스트) | Illustration : 송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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