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수사'라는 적폐의 쳇바퀴

김규원 기자 2022. 9. 1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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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새 집권 정부와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여야 관계 완전히 얼어붙어
한국 정치는 정치 보복 수사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022년 9월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표적수사를 따져묻는 야당의 질의에 “범죄수사일 뿐”이라고 답했다. 공동취재사진

“정치적 반대자들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치인들이 적과 적수의 차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적수는 꺾고 싶은 상대이며, 적은 말살해야 할 상대다. 정치를 적수와의 관계가 아니라 적과의 대립 관계로 보면 민주정치는 작동하지 않는다.” -<위험한 민주주의>(야스차 뭉크, 201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인 수사로 여야 관계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정치 보복 수사’라고 비판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중대 범죄 수사’라며 검경의 수사를 지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권 교체 뒤 전직 대통령이나 야당 당수에 대한 ‘정치 보복 수사’ 관행이 악순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인카드 사용 의혹 시작으로 이 대표 전방위 수사

대선 이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은 2022년 9월1일 폭발했다. 검찰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이 대표를 소환했기 때문이다. 2022년 정기국회 첫날이었고, 이 대표가 선출된 지 나흘 만이었다. 이 대표는 9월6일 검찰에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검찰은 한가위 연휴 전날인 9월8일 이 대표를 기소했다.

민주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민주당은 9월5일 윤 대통령을 이 대표와 같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 국회에서 김건희 여사의 각종 부정부패 의혹에 대한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7월1일 정치보복수사대책위원회까지 꾸려 검경의 이 대표 수사에 대응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은 임기 중에 기소되지 않으므로 별 실효성은 없었다. 특검을 추진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김도읍 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인데다 법사위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특검 반대 의견이어서 이 또한 실효성은 없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대응은 여야의 막장 대결 상황을 잘 보여줬다.

검경의 전방위적인 수사는 이재명 대표의 때 이른 재등판도 불러왔다. 이 대표는 대선이 끝난 지 불과 두 달 만인 5월8일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또 두 달 뒤인 7월17일엔 당대표 선거에도 나섰다. 민주당은 이 대표를 보호하기 위해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할 수 있도록 한 당헌 제80조까지 바꿨다. ‘정치 보복으로 인한 경우’는 직무 정지를 취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방탄용’이었지만, 검경의 고강도 수사가 부채질한 일이었다.

검경은 3월9일 대선 이후 이 대표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개시했다. 4월4일 이 대표 부인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사용 의혹’ 수사를 위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성남FC 후원금 의혹’ ‘백현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이 대표 옆집 비선 캠프 설치 의혹’ 등과 관련해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조사를 계속했다. 9월13일엔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현재까지 이 대표와 관련해 검경이 수사 중인 사건은 모두 10건에 이른다.

2022년 9월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보좌진이 보낸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읽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0건은 △성남FC 후원금 의혹 △부인 김혜경씨 경기도 법인카드 사용 의혹 △백현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옆집 비선 캠프 설치 의혹 △장남 불법 도박 의혹 △무료 변론 의혹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중 성남시의회 상대 로비 의혹(이상 경기남부경찰청) △변호사비 대납 의혹(수원지검)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대선 때 허위사실 공표 혐의(서울중앙지검) 등이다.

에너지 사업과 마스크 공급도 하반기 감사

단지 이 대표만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6월 중순 국민의힘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살인 혐의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을 다시 이슈화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을 고발했고, 검찰은 8~9월 박 전 원장, 서 전 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의 집과 해양경찰청, 대통령기록관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최종 목표로 한 수사로 여겨졌다.

감사원까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 8월23일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사업, 코로나19 백신과 마스크 공급과 관련한 감사를 하반기 감사 대상에 포함했다. 앞서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과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를 벌인 뒤 일부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을 발표하거나 언론에 흘렸다.

이런 수사에 대해 윤 대통령은 6월17일 출근길 문답에서 “정권이 교체되고 나면 (…) 과거 일부터 수사가 이뤄지고, 좀 지나면 현 정부 일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하는 것이지, 민주당 정부 때는 (과거 정부, 야당 수사) 안 했습니까?”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검찰을 장악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한 장관은 이 대표의 소환 통보 뒤 9월5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범죄 수사”라고 잘라 말했다. 이 대표 보좌진이 검찰의 소환 통보에 대해 “전쟁”이라고 이 대표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데 대한 답변이었다.

윤 대통령은 8월30일 이 대표 당선 뒤 첫 통화에서 이 대표의 회담 제안도 사실상 거부했다. 이 대표는 “빠른 시간 내 만날 자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으나, 윤 대통령은 “당이 안정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여야 당대표님들과 좋은 자리를 만들어 모시겠다”고 말했다. 단독 회담은 하지 않을 것이고, 시기도 국민의힘 내부가 안정된 뒤에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9월14일 “대통령이 해외순방(9월18~24일)을 다녀오고 나서 (여야)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만나는 것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소극적으로 말했다. 심지어 대통령실의 다른 고위 참모는 “(이 대표와의) 일대일 만남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수사 대상인 이 대표와 단독 회담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2022년 8월23일 이재명 대표의 부인 김혜경씨가 ‘경기도 법인카드 사용 의혹’과 관련해 조사받기 위해 수원의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대통령 수사가 불씨?

대부분 정치 전문가는 현재 검경의 수사가 과거부터 반복돼온 ‘정치 보복 수사’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관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박사(정치학)는 “대한민국 역사엔 정권 교체 뒤 전 정부나 정치적 경쟁자에 대해 수사해온 오랜 관행이 있었다. 민주화 이후엔 새 집권 정부와 검찰이 ‘연립정부’를 구성해 이런 정치 보복 수사를 함께 벌여왔다. 이번 수사도 그런 연장선 위에 있다”고 말했다.

정치 보복 수사는 왜 반복될까?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집권당이 야당을 무너뜨려야 총선, 대선에서 이겨 재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한 경우 상대방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도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독재·군사 정권 때는 불법적으로, 총칼로 했는데, 민주화 이후엔 법과 검찰이라는 칼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정치 보복 수사가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 비롯했다는 분석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민주당 쪽에 이명박 정부에 대한 원한을 심었고,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수사와 검찰 중심의 윤석열 정부 등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노 전 대통령에게 들이댄 잣대를 문재인 정부가 다시 이 전 대통령에게 들이댔다. 윤 정부의 수사는 그 잣대가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수사까지만 하고 수사를 끝냈어야 한다. 적폐 청산 수사가 아니라, 촛불혁명에 참여한 다양한 정치 세력과 연정이나 정책 연대로 나아갔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한국 정치는 정치 보복 수사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비관적이다. 장성철 소장은 “이걸 끊으려면 협치하겠다고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또 여야에 그런 결단을 이끌 어른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원호 교수는 “결국 시민이 정치 보복 수사가 안 된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선 이재명 대표, 김건희 여사를 모두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나 검찰 관련 법,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처방도 있다. 박성민 대표는 “양당제를 낳는 소선거구제를 없애야 한다. 한 선거구에서 서너 명씩 뽑아 다당제가 되면 정치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 수사를 함으로써 오히려 검찰을 키우고 검찰개혁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권이 검찰에 의존하지 않아야 정치 보복 수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복 수사 반대’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그러나 아직 여야 정치권은 타협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정치 보복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우리도 많이 당했다. 그러나 현재 이 대표 관련 사건들은 실정법 위반에 대한 범죄 수사다. 범죄 행위를 덮으면서 정치적 타협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칼자루를 쥔 대통령이나 여당에서 결단해야 한다. 정치 보복 수사를 당하는 야당이 어떻게 끊나? 다음에 집권하면 정치 보복 수사를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지금은 한가한 소리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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