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사건 이후 뭐가 달라졌나".. 신당역 스토킹 살인에 시민들 분노
15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지난 14일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살해된 20대 역무원 A씨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추모 공간에는 여러 장의 대자보와 시민들이 쓴 추모 메시지가 붙었다. 잔혹한 범행을 규탄하는 목소리와 불법 촬영·스토킹 등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었다. 한 시민이 붙인 대자보에는 “확실한 처벌과 개선이 없다면 더 이상 국가와 사회에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쓰여있었다.
이 사건은 지난 14일 오후 9시쯤 발생했다. 가해자 B씨는 신당역 내부에서 1시간 10분을 기다리다 A씨가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러 가자 그를 따라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다. B씨는 지난해 10월 A씨에게 불법 촬영 영상과 사진을 전송하며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B씨를 경찰에 신고하며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경찰은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후 경찰이 A씨에 대한 신변보호 활동을 했으나, 1개월로 끝났다. B씨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촬영물 등 이용 협박), 스토킹처벌법 위반,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징역 9년을 구형했고, 15일 1심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었다. B씨는 선고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추모를 위해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가해자를 향해, 바뀌지 않는 사회를 향해 분노했다. 퇴근 후 추모를 위해 신당역에 왔다는 직장인 한모(29)씨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에서 장소만 바뀌었다. 여성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내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했다. 그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든다”며 “주변의 남성들도 많이 분노했다. 불법 촬영으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을 때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호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한씨는 국화 한 송이를 10번 출구 앞에 내려놓고는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서성였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직장인 A(35)씨는 메모지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문장을 한자 한자 꾹꾹 눌러 담아 썼다. A씨는 “지금 당장 드는 감정은 분노”라며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도대체 뭐가 달라진거냐”고 했다.
대학생 구모(29)씨는 “학교에서 공부하다 스토킹 피해자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 추모를 위해 왔다”며 “비슷한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도 결국은 달라지는 게 없다”고 했다. 구씨는 감정이 북받친 듯 눈시울을 붉혔고, 목이 메는 등 수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그는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화두에 올랐지만 결국은 제자리 걸음”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불법 촬영이나 스토킹 범죄 등과 관련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다.
사건 현장인 신당역 내부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복도에 놓인 테이블 위에 조화를 올려놓고, 추모 메시지를 메모지에 써 벽에 붙였다.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등의 글이 붙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현장을 예고없이 방문했다. 한 장관은 이날 오후 6시 50분쯤 신당역을 찾았다. 사전 예고 없이 수행원 2명만 동행했다. 한 장관은 약 10분에 걸쳐 사건 현장인 여자화장실을 직접 들어가 살펴본 뒤 나왔고, 현장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한 장관은 “국가가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다”며 “법무장관으로서 책임감을 깊이 느끼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묻지마 살인도 무서운 사건이었는데, 보복 살해라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자기가 가해자로 재판받으면서 대체 뭘 보복한다는 건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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