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값 싸도 매력 없는 한국 주식시장

노자운 기자 2022. 9.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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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온 나라가 비탄에 빠졌던 1990년대 말,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및 부실 경영과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가 우리 증시의 상단을 짓누르는 장애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한국 국적을 달고 있는 기업이라면 규모와 실적이 비슷한 다른 나라 회사들보다 저평가 받는 관행이 보편적이었다. 글로벌 증권 전문가들은 이를 코리아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는 ‘신조어’로 정의했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지금, 코리아디스카운트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증시에 드리워있다. 최근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12개월 선행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8.7배에 불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주요 대도시를 봉쇄한 중국(10.8배), 건국 이래 지금까지 늘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는 대만(11배)보다도 낮다. 전세계 주요 신흥국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주식 가치가 낮은 국가는 포퓰리즘 정책의 부작용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브라질(6.4배)뿐이다.

문제는 한국 주식의 가격이 매우 저렴해졌음에도 외국인 투자자들 눈에는 그다지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7~8월 외국계 자금이 반짝 유입되긴 했으나, 이는 원화가 중국 위안화보다 큰 폭으로 절하되는 바람에 겪은 일시적 현상이었다. 외국계 큰손들의 보유 자산 안에서 미 달러화로 표시된 한국 주식의 비중이 자동으로 낮아졌고, 이 때문에 중국 주식을 팔고 한국 주식을 사는 리밸런싱이 이뤄졌던 것이다.

우리 증시는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고질적 문제를 여럿 안고 있다. 원자재 수입 비중과 대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우리 경제의 태생적 한계인 만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20여 년 전부터 지적돼온 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대주주와 임원들의 ‘깜깜이’ 내부자 거래나 무분별한 물적분할 및 중복상장 같은 문제가 여전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진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초 상장한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이다. 모회사 LG화학의 시가총액은 46조원에 불과한 반면 자회사 시총이 120조원이다. 핵심 사업인 배터리 부문을 떼어내 국내 시총 2위의 거인으로 만드는 동안 LG화학 주주들은 철저히 소외됐다.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가 깎이는 지주사 할인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최근에야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주는 방안을 내놓으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으나,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는 확신할 수 없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15일 자본시장연구원 주최로 열린 정책 세미나에서 “물적분할 대신 현물출자를 통해 자회사를 설립하더라도 충분히 중복 상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국의 규제를 우회하는 꼼수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지나친 상속세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기름을 끼얹는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누르는 일이 불가피하고, 이는 증시의 하방압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삼성생명의 주가는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기 한참 전부터 상속세 이슈와 엮여 오랫동안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지난 2020년 한국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속세 실효세율은 58.2%에 육박했다. 일본(55.0%), 미국(39.9%), 독일(30.0%), 영국(20.0%)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천문학적 금액의 징벌적 상속세는 올해 2월 김정주 NXC 이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논란이 됐다. 김 이사의 유족은 결국 6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10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는 방법을 택했다.

자본시장연구원 세미나에 참석한 한 업계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들은 배당이나 지배구조보다는 자본차익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 비중이 높은 우리 증시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의 한 국장급 인사도 “개인은 단기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아 투기적 성향이 크다”며 일견 동의했다.

재계와 금융당국은 머리를 맞대고 개인 투자자들이 왜 우리 증시를 단기 차익 실현의 장으로 여기게 됐는지, 왜 좋은 주식을 장기 보유하기보다는 ‘단타’만 치고 있는 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값 싸도 매력 없는 시장은 개미는 고사하고 외인의 마음도 절대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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