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한 핵무력과 수령체제

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 겸 국민대 정치대학원 국방관리 교수 2022. 9. 16.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 겸 국민대 정치대학원 국방관리 교수

(서울=뉴스1) 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 겸 국민대 정치대학원 국방관리 교수 = 북한은 9월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법령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의결하고 노동신문에 게재했다. 이번에 나온 법령은 2013년 4월에 공개한 법령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공히 할 데 대하여'를 대체하는 것으로서 북한의 정치군사적 의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어서 사강(D.Sagan)이 언급한 핵보유의 3가지 관점(국내정치, 안보, 국제규범)에서 개정 배경과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핵무력정책에 대하여' 법령은 2019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성과없이 끝나고 정면돌파전을 내세우며 추진했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와 핵전략의 변화를 반영한 북한식 핵정책 바이블이다.

국내 정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당이 국가를 선도하는 당국가체제이므로 헌법은 당의 결정을 법제화해 정책으로 시행하기 위한 규범이다. 따라서 '핵무력정책에 대하여' 법령은 지난 4월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언급했던 근본이익이 침해받을 경우 두 번째 사명에 따라 선제 핵공격을 공식화한 수령의 교시를 법령으로 만든 것이다.

이번 법령과 2013년 법령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핵무기 사용조건을 5가지로 적시했는데 지난 4월 김정은이 밝혔던 근본이익을 핵사용조건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5가지 핵무기의 사용조건 중에서 특이한 조건은 북한 지도부에 대한 공격이 임박한 경우엔 자동적으로 핵공격이 가능하도록 법제화했다는 점이다. 핵무기 사용조건이 국가나 국민 또는 전략적 표적, 그리고 전쟁에 추가해 김정은까지 포함한 점은 북한 수령체제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에서 김정은은 당정군위에 존재하는 무소불위 절대권력자이므로 김정은은 당이자 국가다. 따라서 김정은의 흥망을 북한의 흥망과 동일시하는 역사적 맥락이 자리하고 있다.

안보 관점에서 보면 김정은이 9월8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의 궁극적 목적은 정권 붕괴이므로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법령(제1항)에서 핵무력을 국가방위 기본역량으로 명시하면서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체제를 보위하기 위한 자위권으로 주장한 것은 최근 한미동맹의 공고화에 따른 북한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한미동맹이 비핵화 추진 의지를 공조하면서 핵·미사일 고도화를 상쇄하기 위해 맞춤형 억제 실행력을 제고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또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핵에 대해 핵대응 원칙을 분명히 했고, 한미가 공동으로 참수작전을 시행하는 훈련과 연합연습을 재개하면서 북한에 대한 원칙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보면 러시아와 미국의 핵전략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가존립이 위협을 받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은 경우, 또 적국이 핵무기를 사용했을 때, 핵무기 시설이 공격당했을 때, 국가존망을 위협받는 경우를 제시했다. 러시아가 제시한 핵무기 사용이 가능한 조건과 최근 북한이 공개한 법령 '핵정책에 대하여'에 포함된 핵무기의 사용조건과 유사하다.

미국의 핵전략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핵무기의 단일목적 정책을 폐기하고 극단적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존정책을 유지하면서 전략핵무기의 빈 공간을 상쇄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 전력화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핵사용 원칙을 참고하면서 미국이 공개한 극단적 상황이란 전략적 모호성으로부터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법령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법령에 명시된 자동 핵타격(제3항)과 경상적 동원태세(제7항)에 주목해야 한다. 자동 핵타격은 핵무기 사용권한이 김정은 중심의 중앙집권적 지휘체계에서 핵운용부대 지휘관에게 위임이 돼야 가능하다. 또 경상적 동원태세는 상시 핵태세를 유지할 수 있는 지휘통제체계와 높은 수준의 훈련이 요구된다. 북한은 이미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용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을 하달하고, 임무와 표적에 따라 타격수단의 주도성을 강조한 바 있어 핵전력 지휘체계가 상당 부분 위임됐을 가능성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이 최근 발표한 법령 '핵무력정책에 대하여'의 핵심은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사용 임계점을 낮게 설정하는 강압전략을 구상하고, 그 수단으로써 핵무기를 실전전력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북한은 이미 강압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전략핵과 전술핵을 겸비하고 있으므로 실전전력의 신뢰성이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우린 한미공조 하에 맞춤형 억제의 실행력을 제고하면서 북한의 핵사용 임계점을 높일 수 있는 정치·외교·군사적 혜안을 준비하고, 대북 대화창구를 마련해 한미동맹의 정치군사적 행보에 대한 편향과 오인식을 방지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pej86@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