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방산 열풍, 방위산업 도약의 기회로
무기획득 절차 등 옛 시계 맞춰진 규제 개선 필요
(서울=뉴스1) 박상수 산업연구원 기계방위산업실장 = 지난해 방산수출 수주는 70억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당초 수출 호조가 일회성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올해 대형 수출계약들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방산수출 수주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폴란드와 K-2 전차, K-9 장갑차, FA-50 경공격기의 수출 계약에 성공하면서 국내 방위산업의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 방산제품이 주목받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남북 대치란 한국의 특수한 안보상황은 방위산업의 성장 동력이 됐으며 정부의 지속적 관심과 투자 덕분에 모든 무기체계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 기계, 조선, 항공, 전자 등 방위산업과 밀접한 제조업이 발달한 것도 방위산업이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한 밑거름이다.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고 업체들이 납기를 제때 맞출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것은 한국 방산의 강점이다. 한국 방산제품은 임무역량을 발휘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기술우수성을 갖추고 있으며 선진국의 동급 무기와 비교한 가격경쟁력도 탁월하다. 특히 수출 제품들이 내수용 생산라인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에 구매국이 요구하는 납기를 제때 맞출 수 있다.
수출 호조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선 한국 방위산업이 보유한 역량과 강점을 살리면서도 약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방위산업의 발목을 잡는 약점 중 하나는 과거 시계에 맞춰진 일련의 규제 시스템이다. 특히 무기를 획득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장기간이 소요되는 점이나 내수 시장 위주의 개발이 지속되는 점 등은 개선해야 한다. 향후 한국 방위산업이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고 한국이 주요 방산수출 강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방위산업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을 완화해야 한다.
먼저 무기획득 프로세스의 혁신이 요구된다. 현재 글로벌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은 이미 1990년대에 개발된 재래식 무기체계들이다. 향후 방위산업 시장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접목한 첨단 무기체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재의 무기획득 프로세스만으로 최첨단의 무기체계를 조기에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의 무기획득 프로세스를 보면 기획·예산 편성부터 무기체계 개발·생산, 전력화(戰力化)까지 자그마치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장기간이 소요되는 무기 획득방식으론 제아무리 진보한 기술이라 할지라도 진부한 무기체계가 돼버리고 만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획에서 개발, 생산, 전력화까지 5년 내에 완료할 수 있는 신속한 무기 획득 프로세스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시장지향형 무기체계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획체계 개선이 필요하다. 그동안 무기체계 개발기획 단계에서 시장성(marketability)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물론 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가진 무기체계를 정해진 기간 내에 개발할 수 있느냐가 최우선 순위가 돼야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군의 수요만 고려할 경우 정부의 막대한 국방예산이 지속적으로 수반돼야 할 뿐만 아니라 산업기반도 겨우 부지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산업이 자생력을 가지기 위해선 내수로만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수출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주요 방산 선진국들은 무기개발 단계에서 수출가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미국은 F-35 전투기 개발과 같은 기술의 난이도가 높은 초대형 프로젝트일수록 국제 공동개발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고 개발비용과 리스크를 분담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스라엘은 기존 방산강국 '빅5'(미국·러시아·프랑스·영국·독일)에서 개발하지 않지만 글로벌 수요가 예상되는 '아이언돔'과 같은 무기체계 개발에 집중해 틈새시장을 확보했다. 우리도 무기 획득에서 방산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할 수 있는 시장지향형 개발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셋째, 기업 주도의 산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무기체계의 획득방식이 정부 주도에서 기업 주도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기업이 방위산업 연구·개발(R&D)을 선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방위산업 계약법' 제정이다.
현재는 무기 개발에 실패하거나 사업이 지연될 경우 지체상금을 부과하거나 해당 기업을 부정당업체로 지정하고 제재 처분을 내리는 등 기업의 개발의욕을 저해하는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업 지연에 따라 업체와 정부가 소송에 돌입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다.
지금의 무기 획득절차는 '국가계약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직면한 어려움을 풀어주기에는 국가계약법이 충분치 못한 점이 있다. 따라서 방위산업에 특화된 계약법을 새로 만들어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자발적인 R&D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인센티브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기업이 산정한 비용분석 결과가 무기획득 사업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정부의 예산심의나 최저가 입찰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이 산정한 비용보다 적은 보상을 받고 개발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개발 의욕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마지막으로 방산수출 강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현지화를 위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 인도, 이집트, 사우디 등 전 세계 1~3위 무기 수입국들은 공통적으로 무기를 구매할 때 자국산 부품 사용, 즉 현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생산의 현지화를 통해 자국의 산업기반을 갖춤으로써 무기체계의 높은 해외 의존도를 극복하겠다는 의도다.
이번 폴란드 사업의 경우에도 초도 물량만 국내에서 생산하고 2~3차 물량은 현지에서 생산한다는 점에서 현지화는 방산수출에 있어 필수요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만 하더라도 현지 조립(assembly)으로 구매국의 요구조건들을 충족해줄 수 있었지만 이젠 단순한 조립물량 할당으론 그들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지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생산 비용을 분담하는 한편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등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기술력과 자본력을 보유한 현지의 협력업체를 찾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현지 기업과 기술자료를 공유하며 협상하는 과정이 요구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 안보나 기술적 난이도에 따라 방산기술을 분류해 기술이전 체계를 차등 적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체계를 신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4대 방산수출 국가'라는 불가능해 보였던 목표가 이제는 실현 가능한 목표로 바뀌고 있다. 그 위상에 걸맞은 규제혁신을 통해 방위산업이 진정한 국가먹거리 산업으로 발돋움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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