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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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가면 어느 도시든 그 도시가 자랑하는 대성당을 볼 수 있다.
결국 로버트는 종이와 펜을 갖고 오라고 하더니 나의 손에 자기 손을 겹치고 대성당을 그려보라고 한다.
어설프게 그리는 나의 대성당 그림을 통해 시각장애인 로버트는 대성당을 느끼며 무척 행복해한다.
화제성을 떠나 우리가 그동안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장애인을 이해하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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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가면 어느 도시든 그 도시가 자랑하는 대성당을 볼 수 있다. 영국 런던 성 폴 대성당부터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독일 쾰른 대성당, 오스트리아 빈 성 슈테판 대성당, 스페인 바르셀로나 성 가족 대성당, 바티칸 성 피에트로 대성당까지. 저마다 아름다움과 규모를 자랑한다.
사실 인터넷 검색창에 ‘대성당’을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것은 바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대성당>이다.
미국 소설가이자 시인, 레이먼드 카버의 대표작 <대성당>은 시각장애인 손님을 맞이하는 한 부부 이야기다. 아내는 결혼 전 복지관에서 한 시각장애인과 일한 적이 있다. 그가 원하는 책들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최근 아내를 잃은 그는 우연히 부부 집에 방문해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남편인 ‘나’는 이 상황이 불편하다. 주변에 시각장애인이 없고 한번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시각장애인 로버트를 기차역에서 데려오자 멋쩍은 인사 이후 어색한 시간이 이어졌다. 턱수염이 더부룩한 첫인상을 뒤로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가벼운 대화를 시도하며 나는 뉴욕에서 오는 기차에서 어느 쪽에 앉았는지를 묻는다. 오는 길에는 오른쪽 풍광이 좋다는 말을 했는데, 아내는 눈치 없다며 눈살을 찌푸린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거실에서 가벼운 위스키 한잔이 이어지다 공교롭게 로버트와 나, 둘만 남았다. 어색하게 TV 채널을 돌리다가 대성당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채널에 멈춘다. 혹시 대성당의 이미지를 알고 있냐고 질문한 나는 로버트의 요구에 따라 말로 대성당의 느낌을 설명해주다가 한계를 느낀다. 결국 로버트는 종이와 펜을 갖고 오라고 하더니 나의 손에 자기 손을 겹치고 대성당을 그려보라고 한다. 어설프게 그리는 나의 대성당 그림을 통해 시각장애인 로버트는 대성당을 느끼며 무척 행복해한다.
시각장애인의 눈으로 무언가를 보는 법을 가르쳐준 이 작품은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가르쳐준다. 우리는 최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장애인 연기자 정은혜 작가가 연기한 다운증후군 장애인 영희를 만나봤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비장애인 연기자가 연기한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우영우를 만났다. 화제성을 떠나 우리가 그동안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장애인을 이해하는 기회였다. 실제로 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중적인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단다. 우리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리지도 변호사처럼 똑똑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발달장애인들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다. ‘척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법’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척하면서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영희와 우영우는 척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우리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주지 못한다. 단순히 그들 연기력이나 능력에 감탄하기보다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가운데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없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이런 드라마들이 세상에 나온 명분을 살리는 일일 것이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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