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태풍과 허풍의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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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힌남노(Hinnamnor)' 위력은 대단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해안지역의 피해는 당장 복구하기 힘들 정도다.
태풍(颱風)이 대비(對備)를 만나면 허풍(虛風)이 되고, 무비(無備)를 만나면 폭풍(暴風)이 된다.
인생도 준비하고 대비하면 그 어떤 고난의 태풍도 허풍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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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급 태풍 ‘힌남노’
기상청 예보에 대비 철저
생각보다 피해 적어 다행
인생도 예상하고 준비하면
힘든 상황 잘 넘길 수 있어
태풍 ‘힌남노(Hinnamnor)’ 위력은 대단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해안지역의 피해는 당장 복구하기 힘들 정도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추석을 우울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예상보다 피해가 적었다는 것이다. 태풍 ‘매미’보다 더 센 역대 최대급 태풍이란 기상청 예보에 대비하고 방비했기 때문이다. 대비하는 일이 재앙을 방지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보여줬다. 공항은 비행기 운항을 취소하고, 정부 관계자는 종합상황실에서 비상대기했고, 단체장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자리를 지켰다. 해안가에 사는 주민들에게 대피 권고가 있었고, 버스와 열차는 운행을 단축하거나 중지했다. 학교는 임시 휴교나 원격수업을 진행했고, 소양강댐은 수문을 열어 방류하고 기다렸다.
일이 벌어지기 전, 철저한 대비와 마음의 준비는 지나칠수록 좋다. 태풍(颱風)이 대비(對備)를 만나면 허풍(虛風)이 되고, 무비(無備)를 만나면 폭풍(暴風)이 된다.
인생도 준비하고 대비하면 그 어떤 고난의 태풍도 허풍으로 끝난다. 우주의 이치가 그렇다.
‘하늘이 어두워져 비가 내리려 하네! 뽕나무 뿌리 주워, 창문과 문짝을 만들어 대비하네, 이렇게 대비하면 그 누구도 나를 힘들게 할 수 없네!’
<시경> 빈풍(豳風) 편 ‘치효(鴟鴞)’라는 제목의 시구절이다. 치효는 부엉이다. 남의 둥지에 침입해 새끼를 잡아먹는다. 아마도 이 시를 지은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의 소중한 것을 많이 뺏겼던 것 같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의 둥지마저 뺏길 것이라 염려했다. 비는 재앙을 상징한다. 그 재앙이 닥쳐오기 전에 둥지를 보수해 튼튼히 지키고자 하는 대비의 마음을 담은 시다. 한번 당했지만 두번은 당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이 시를 지은 사람에게는 태풍이 허풍이 된다. 준비하고 대비한 자를 힘들게 할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이덕리(李德履)는 진도로 유배 가서 <상두지(桑土志)>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상두’는 ‘비가 오기 전에 둥지를 뽕나무 뿌리로 보수하자’고 한 <시경> 구절의 ‘뽕나무 뿌리’를 뜻한다. 당쟁으로 권력 투쟁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절, 억울하게 유배 생활을 보내던 이덕리 선생이 향후 전란에 대비해 조선의 국방과 안보 체계를 튼튼하게 구축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이 <상두지>에 담겨 있다. 환란의 태풍이 오기 전에 상두의 대비를 하면 폭풍이 아닌 허풍으로 끝날 것이란 주장이다.
<주역>의 63번째 괘는 수화기제(水火旣濟)다. 기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뜻이다.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해결됐으니 아주 좋은 괘다.
그러나 재앙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정치인이 선거에서 당선되고, 기업인이 프로젝트에 성공하고, 수험생이 시험에 합격했으니 아주 좋은 일이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비하지 않으면 태풍이 폭풍이 돼 덮친다. 그래서 다가올 환란을 고민하고(思患·사환), 재앙을 예방(豫防)해야 태풍을 허풍으로 만들 수 있다. 성공에 발목이 잡혀 대비하지 않으면 사나운 폭풍을 만날 일을 감수해야 한다.
지나친 위기라고 강조하며 대비하는 것은 위기를 감소시킨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온다 해도 준비하고 예상했기에 위기는 싱겁게 소멸하기 때문이다. 정말 큰 위기와 재앙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아무런 대비 없이 얕보다가 결국 피할 수 없는 폭풍을 만나기 때문이다. 태풍과 허풍의 함수를 잘 풀어야 할 이유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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