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코앞인데..쌀 주산지 곳곳 '발만 동동'

김소영 2022. 9. 1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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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농촌에선 안 오르는 게 세가지 있다고 해유. 아이 성적, 남편 월급, 그리고 쌀값."

쌀값이 브레이크 없는 추락을 거듭하는데도 7월 10만t 격리 이후 추가 격리 소식이 들리지 않아 극도로 불안하다는 심정의 다른 표현이다.

건조저장시설(DSC)을 보유한 농협까지 확대하면 쌀사업 손실 규모는 생각하기 아찔한 수준이다.

하지만 쌀값은 격리 직후 오히려 더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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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쌀산업]
재고 산더미에 값은 최대 폭락
신곡 저장공간 없어 불안 가중
정부의 추가 격리소식은 없어
생산량 줄이는 정책도 난맥상
쌀 생산조정제 예산 편성안해
자동시장격리제도 ‘유명무실’
 

올해 벼 작황이 좋아 풍년이 예고되지만 농민들에게는 기쁨이 아닌 근심거리로 다가오고 있다. 2021년산 구곡 재고 문제가 계속되면서 쌀값은 크게 떨어지고, 올해산 햇벼 생산량은 평년작 수준을 웃돌 것으로 전망돼 농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14일 전북 부안군 동진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최기석씨(77)가 실하게 영글어가는 들녘의 벼를 바라보며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짓고 있다. 부안=박철현 기자


“지금 농촌에선 안 오르는 게 세가지 있다고 해유. 아이 성적, 남편 월급, 그리고 쌀값.”

13일에 찾은 충남 A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 장장이 애써 던진 농담에 소리 내 웃을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씁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젠 체념했다”는 말도 했다. 쌀값이 브레이크 없는 추락을 거듭하는데도 7월 10만t 격리 이후 추가 격리 소식이 들리지 않아 극도로 불안하다는 심정의 다른 표현이다.

이 지역 만생종 벼는 9월말부터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간다. 수확 개시를 보름 앞둔 이 시점엔 저장고에 벼가 300t 정도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올해는 3배가 넘는 1000t이 가득 들어차 있다.

장장은 “규모가 큰 통합RPC는 재고가 1만t인 곳도 있어 이 정도는 약과”라면서도 “15일 후쯤 뒤면 물밀듯 들어올 햇벼를 어디다 받아놔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사무실 직원들도 풀이 죽은 건 마찬가지였다. 올해 이 농협의 예상 결산액은 적자 20억원. 전국 RPC농협 150곳이 한곳당 평균 20억원을 손해본다고 치면 RPC농협 전체적으로 최소 3000억원이 공중에 사라지는 셈이다. 건조저장시설(DSC)을 보유한 농협까지 확대하면 쌀사업 손실 규모는 생각하기 아찔한 수준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쌀산업이 벼랑 끝에 처해 있다. 2021년산 재고 상황도 심각하지만 생산·유통·소비 등 모든 과정에서 그동안 누적된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붕괴 일보 직전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는 2021년산 쌀을 올들어서만 2월 14만4000t, 5월 12만6000t, 7월 10만t 등 세차례에 걸쳐 모두 37만t을 격리했다.

당초 수요 초과물량이라고 했던 27만t보다도 10만t을 더 시장에서 빼냈다. 하지만 쌀값은 격리 직후 오히려 더 떨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당 4만1185원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수확기 평균(5만3535원)보다 23.1%, 지난해 같은 때(5만4758원)보다 24.8% 내렸다. 1977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8월말 기준 농협 쌀 재고량은 31만3000t이다. 평년(12만8000t)과 견줘 2.4배 많다. 산지농협은 지난해 쌀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평년(130만t)보다 13% 많은 147만t을 매입했다. 정부 공공비축미 매입량(35만t)보다 4배 많은 규모다.

그러나 판매는 평년(117만2000t)보다 20% 감소한 94만t에 그쳤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국민 식생활 변화에 따른 소비부진이 예상보다 큰데도 정부의 쌀 수급정책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생산도 문제다. 올해산 벼 재배면적은 72만7158㏊로 지난해(73만2477㏊)와 견줘 5319㏊(0.7%) 줄어드는 데 그쳤다. 쌀농가 채산성이 나빠졌지만 생산비가 급등해 그나마 기계화 등이 이뤄진 벼농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정부 정책도 난맥상이다. 소비부진이 심각해 쌀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는 논 타작물 재배지원사업(쌀 생산조정제) 예산이 한푼도 편성되지 않았다. 2019년을 끝으로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공익직불제로 개편하면서 도입한 이른바 ‘자동시장격리제’는 ‘시장격리를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식의 애매한 법조항으로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됐다.

그런 와중에 쌀값은 물가관리 희생양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하루 기준 쌀에 460원을 쓰지만, 외식커피에는 600원을 지출하는 나라다. 쌀산업이 해방 후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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