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핫플] '백제 예술혼' 물위에 수놓고..'서동요' 사랑이야기 흐르네
우리동네핫플 (9) 충남 부여 궁남지
백제인이 조성한 한반도 최초 인공정원
호수위 정자 잇는 목조다리 곡선미 뽐내
연분홍빛 수련·흐드러진 버드나무 장관
선화공주·서동의 사랑노래 ‘서동요’ 배경
신분·국경 초월한 낭만적인 설화에 감동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백제미의 정수를 표현한 말이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가을이 오는 향기가 한층 짙어진 요즘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 지금의 충남 부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가면 신분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궁남지가 있다. 선선해진 계절,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궁남지에서 백제의 예술혼을 마주한다면 사랑의 감정이 한층 깊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궁남지, 백제미를 꽃피우다= 잠잠한 못에는 수면에 반사된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이 수놓아져 있다. 수련은 수줍은 듯 꽃봉오리가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호수 한가운데 놓인 정자를 잇는 목조 다리는 완만한 곡선미를 뽐내며 마치 꿈속으로 들어가는 길목 같다. 물에 닿을 듯 말 듯한 버드나무 가지는 바람에 얄랑거리며 이방인에게 반갑게 손짓한다.
부여읍 동남리의 궁남지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이곳이 진정 고대 백제인이 조성한 인공정원이란 말인가.
궁남지는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인공정원이다. 경북 경주 안압지와 비교해도 40년 이상 이르다. 당시 삼국 가운데 제일 앞선 백제의 조경술은 일본의 정원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삼국사기>에는 궁남지 조성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무왕 35년(634년) 3월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여리에서 물을 끌어들였으며 네 언덕에 버드나무를 심고 물 가운데에는 섬을 축조해 방장선산(중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산)처럼 꾸몄다.”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숨 쉰다= 궁남지가 아름다운 진짜 이유는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가 부여의 백마강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어서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였으니 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궁남지는 선화공주와 서동의 사랑을 노래한 서동요의 배경이 된 곳이다. 무왕(백제 30대 왕, 641년까지 재위)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백제의 서울 남쪽 못가에 살다가 연못의 용과 통정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항상 마를 캐서 팔아 생계를 꾸렸으므로 사람들은 서동(薯童·참마 서, 아이 동)이라 불렀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아내로 맞아들일 계획을 꾸민다. 중의 행색을 한 그는 신라 수도 서라벌(지금의 경주)에 잠입하고는 발칙한 내용의 서동요를 대중에게 퍼뜨린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면서 서동요를 알려주고 이를 크게 부르게 한 것이다. 정숙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공주는 궁에서 쫓겨나 귀양을 가는데 이 과정에서 서동을 만나 결혼에 이른다. 자유분방하면서도 파격적인 서동요를 찬찬히 곱씹어보니 백제문화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포용성과 다양성을 발견하게 된다.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궁남지에 들러야 한다. 서동은 비루한 현실을 극복하고 불굴의 정신으로 상대의 마음을 여는 듬직한 장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선화공주는 그야말로 부창부수! 비록 적대국가 출신, 비천한 신분이나 자신을 만나겠다며 고향을 등지고 이역 땅을 밟은 서동을 가슴으로 품었으리라. 선화공주야말로 설화의 마지막을 탁월하게 매듭지은 삼국시대 최고의 ‘낭만주의자’가 아닌가.
◆백제의 불멸하는 예술혼을 만나다=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백제는 패망국(660년)으로 역사에 남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후대는 의자왕을 사치와 향락에 빠진 혼군으로 묘사했고 백제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결과론으로 짜 맞췄다.
그러나 실제 백제는 말기인 무왕과 의자왕(641∼660년) 때에도 왕성한 국력을 자랑했다. 나제(신라·백제)동맹을 일방적으로 깨고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수복한 한강 하류 지역을 뺏은 신라에 원한이 깊었던 무왕은 집요하리만큼 신라를 공격해 괴롭혔다. 의자왕은 한술 더 떠 지금의 경남 합천 일대인 대야성을 포함해 40여개 성을 함락했다. 신라의 심장 서라벌이 풍전등화나 다름없었다.
연이은 패배로 다급해진 신라는 당나라에 원병을 요청했다. 결국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신라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대군 앞에 중과부적이었던 계백장군과 ‘5000 결사대’는 조국을 지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역사 속 국가의 흥망성쇠는 반복한다. 신라 경순왕은 고려에 나라를 바쳤고 고려 공양왕은 무기력하게 조선에 나라를 내줬다. 조선 순종은 힘없이 일제에 국권을 빼앗겼다.
이번 가을에 만난 부여는 멸망한 왕조의 마지막 수도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삼한을 호령하고, 바다 건너 동진ㆍ왜와 교류했던 백제인의 예술혼이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명징하게 서려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위에서 비상을 꿈꾸는 봉황의 약동하는 날개, 새색시의 속눈썹처럼 살짝 들린 정림사지오층석탑의 옥개석, 왕궁과 도읍지 백성을 말없이 품었을 부소산성의 능선이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부여=이문수 기자,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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