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19) 팔월 열나흘밤

2022. 9. 1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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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밖 주막집 뒤꼍 외진 골방은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골패 노름판이 달아올라 열기가 곧장 터질 것만 같다. 갓을 푹 눌러 써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창백한 노름꾼은 못 보던 얼굴이다.

저잣거리에서 돈놀이하는 오 첨지의 끗발이 올랐다. 오 첨지 뒤에는 언제나 왈패 두놈이 호위무사로 앉아 있다. 판돈을 올렸는데 오 첨지가 짝을 맞춰 판돈을 쓸어갔다. ‘갑절’ 판돈이 두배가 됐다. 오 첨지는 쌍육을 내리치며 또 짝을 맞춰 판돈을 끌어 모으는데 누군가 “잠깐! 왼쪽 소매를 한번 털어보실까” 한다. 오늘 처음으로 노름판에 끼어든 백면서생의 짧은 경고에 오 첨지 호위무사 두 놈이 벌떡 일어서서 오 첨지를 가로막았다. 백면서생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퍽퍽 이단옆차기하자 왈패 두놈이 나가떨어지고 오 첨지 왼 소매 속에서 골패 두개가 쏟아져 방바닥에 또르르 굴렀다.

백면서생이 품 속에서 번쩍이는 단검을 꺼내 오 첨지의 목을 지그시 눌렀다.

“모, 목숨만 살려주시오.”

오 첨지 목소리가 떨렸다.

“이 진사네 집문서를 내놓으시오.”

백면서생 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가산을 탕진하고 이제 방구석에 처박혀 개평이나 뜯는 이 진사의 못난 아들 칠복이다. 늦게 본 애물단지 외아들 칠복이는 술과 여자에 빠지더니 그것도 시들해지자 급기야 짜릿한 노름에 빠져버렸다. 오 첨지가 뿌려놓은 떡밥을 먹다가 낚싯바늘에 코가 꿰인 셈이다. 야금야금 논밭을 팔아 치우더니 집까지 잡혔다. 아버지 이 진사는 화병으로 삼년전에 이승을 하직했고 이백냥에 오 첨지에게 저당 잡힌 마누라는 어린 아들을 안고 행방을 감췄다.

오 첨지는 몹쓸 인간이다. 돈과 색(色)에 환장한 악덕의 화신이다. 이 진사네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 집까지 빼앗자 반편이 된 칠복이는 노름방에서 쪽잠을 자고 주막집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며 장돌뱅이들이 먹다 남은 음식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기노름 책이 잡힌 오 첨지는 정체 모를 백면서생에게 이끌려 집 장롱 속에 넣어뒀던 이 진사네 집문서를 내어줬다.

백면서생이 주막집 노름방으로 돌아와 칠복이 멱살을 잡고 철썩철썩 양쪽 뺨을 후려쳤다. 영문을 모르는 칠복이 떨면서 “댁은 누구신지요?”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백면서생의 하인이 “나리 준비해왔습니다” 아뢰자 백면서생이 칠복이를 끌고 마당으로 나갔다. 추석을 하루 앞둔 팔월 열나흘, 밤은 깊어 삼경일제 두둥실 떠오른 달밤에 세 사람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졌다.

칠복이 앞장서고 백면서생과 고리짝을 진 하인이 뒤따라 달밤에 산을 올라 칠복이 아버지 이 진사의 묘지에 다다랐다. 고리짝을 풀어 묘 앞에 보자기를 깔고 제사상을 차렸다. 백면서생이 청주를 한잔 올리고 “진사어른, 왜 이렇게 빨리 가셨습니까” 하며 흐느껴 울었다.

십오년전 바로 이날, 추석 전날밤 계속 과거에 낙방한 총각 윤씨는 책을 몽땅 꺼내어 마당에 쌓아 놓고 불을 붙이자 노모가 나와서 대성통곡을 했다.

윤씨가 처마 밑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니 열나흘 만월이 처량하기만 했다. 추석에는 조상제사도 지내야 하거늘 쌀독은 바닥을 드러내 당장 노모의 추석 아침상도 올릴 수 없게 됐다. 윤씨는 들판으로 나갔다. 아직 벼를 벨 때가 아닌데 어느 논둑에 볏단이 펼쳐져 있었다. 허겁지겁 한단을 묶어 집으로 달려오는데 “도둑이야” 뒤통수를 때리는 고함에 윤씨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리 조상 추석 제사상에 올리려고 올벼를 심어 추수했더니 네놈이 마수걸이하네그려!”

이 진사네 머슴이 벼도둑의 멱살을 잡아끌고 와 곳간에 가둬버렸다.

밤 늦게 마실갔다 돌아온 이 진사는 곳간에 갇혀 있는 윤씨를 끄집어 내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더니 풀어 주는 것도 모자라 쌀 한자루와 굴비 두마리를 어깨에 얹어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십오년 세월이 흘렀다. 윤씨는 이듬해 어머니상을 치르고 고향을 등졌다. 보부상이 돼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제물포에 객주를 세워 거부가 됐다. 그 윤씨가 바로 백면서생이다. 모습은 창백한 젊은 선비처럼 보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서른여섯살 거상이다. 추노들을 풀어 칠복이 부인과 어린 아들을 찾아서 데려왔다. 백면서생은 칠복이와 가족을 데리고 제물포로 가서 아담한 기와집에 가족을 살게 하고 칠복이는 삼년동안 보부상을 하게 해 죽도록 고생을 시킨 후 객주 총괄 집사로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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