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의 부동산 에세이] 실체 없는 ‘재창조’…기존 정비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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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스터플랜 수립’ 내놓아
계획안 마련에만 5년 넘게 걸리고
10년 안에 입주 사실상 불가능해
현실성 떨어져 ‘총선 겨냥’ 논란만
타지역과 형평성 문제 극복 과제
일산·분당 재건축 등 추진위 구성
단지별로 정비 속도 낼 수 있도록
재초환 완화 등 제도 지원 바람직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 1기 신도시 재정비 문제를 놓고 정부와 정치권이 딜레마에 빠졌다.
지은 지 30년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재정비 욕구는 한층 커졌는데 해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는 총 29만 2000가구, 100만명가량이 거주하고 있어 정치권에선 재정비의 효율성을 넘어 정치적 유불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당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올 연말까지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최대한 신속하게 정비작업에 나서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정부가 8·16 부동산대책에서 2024년 말까지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해 신도시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그러자 “(마스터플랜 확정까지) 5년 걸릴 사안을 2년 당긴 것”, “당장 9월 중 마스터플랜 연구용역을 발주하겠다”며 허둥지둥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1기 신도시는 마스터플랜에 의해 세워진 계획도시라 마스터플랜을 다시 수립하기엔 난관이 적지 않다. 또한 기본 도시 인프라가 이미 갖춰진 상황에서 전면적인 재정비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뜨거운 감자’ 1기 신도시 재정비
정부는 270만채 공급을 핵심으로 한 8·16 부동산대책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와 관련해선 “연구용역을 하반기에 하고, 2024년 중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을 추진한다”는 짤막한 계획을 내놓는 데 그쳤다. “애초에 현실성이 결여된 공약이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계획을 가시화해 정치적 효과를 노릴 것”이란 비난까지 나온다. 어쨌든 8·16 대책 발표 이후 쏟아지는 논란을 종합해 볼 때 1기 신도시 재정비 공약의 준비가 덜 돼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2024년 마스터플랜 수립’이란 몇 줄짜리 발표에 그친 게 방증이다.
실망한 신도시 주민들은 연합회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정부만 믿고 있다간 재정비사업이 하세월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대통령 경제수석이 잇따라 “대통령 약속대로 최대한 빠르게 재정비가 이뤄지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마스터플랜 일정을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했다. 정부가 화들짝 놀란 것은 1기 신도시 문제가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재창조 수준 재정비? 실체 분명해야
정부는 8·16 대책에서 ‘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을 통한 재정비’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다. 통상적으로 도시 재정비는 도시계획법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기반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이뤄진다. 도시계획법상 1~3종 주거지역의 용적률 상한 범위에서 지자체가 조례로 해당 구역 용적률을 확정해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은 이 같은 방식을 뛰어넘어 ‘신도시특별법’ 등을 통해 기존 신도시를 뒤집어엎을 정도의 재정비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마스터플랜 마련에만 5년 넘게 걸리는 등 시일이 한정 없이 늘어나 10년 내에 입주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용적률이나 정비 순서, 규제완화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마스터플랜 수립과 실행을 위한 신도시특별법 제정이 가능해서다.
따라서 ‘재창조’란 난해한 개념을 접고 기존 도시 재정비 방식으로 최대한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게 효율적이란 전문가들의 의견이 외려 설득력 있어 보인다.
서진형(경인여대 교수) 공정주택포럼 대표는 “현행 제도하에서 중대 규모 단지별로 재정비가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스터플랜은 고밀도 개발에 따른 주거 수준 저하를 막기 위해 도로와 상하수도, 정보통신망 등 인프라 확충을 위한 수준으로 신속히 수립하면 된다는 것이다.
일산, 분당신도시 등에선 이미 노후 단지별로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추진위를 구성해 정비에 나선 상황이다. 분당에선 서현동 시범단지와 수내동 일부 단지에 이어 금곡동 청솔주공9단지가 재건축추진위를 구성했다. 일산에선 문촌1단지 등 4곳이 재건축추진위를 꾸렸고 문촌16단지와 강선14단지 등은 리모델링을 통한 재정비 사업에 나섰다.
1기 신도시 범재건축연합회 측은 “마스터플랜에 의한 동시다발적 재정비는 외려 피해를 야기한다”며 “마스터플랜만 고집할 게 아니라 재정비가 가능한 곳부터 할 수 있게 물꼬를 터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들 단지가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안전진단 기준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완화 등 제도적 지원에 집중하는 게 재정비 문제를 쉽게 푸는 길일 수 있다. 기존 법령을 보완하든 특별법을 만들든 입법을 통한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재건축이 사업성을 가지려면 기존 아파트 용적률이 180% 이하여야 한다. 현재 일산(169%)과 분당(184%)을 제외한 중동(226%), 산본(205%), 평촌(204%)은 200%를 넘어 사업성이 떨어진다. 여야 의원들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용적률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신도시특벌법을 발의해 놓은 상황이다. 성남시와 고양시 등 1기 신도시를 품은 지자체들도 관련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
●재정비 형평성 논란 극복해야
재정비 사업을 어떤 순서로 진행할지 결정하는 것도 민감한 문제다. 대규모 이주 문제 등으로 5~10년 동안 순차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어서다. 무리하게 추진하다간 재건축 시기를 둘러싸고 단지별로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정치인들이 휘둘리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아파트 노후화, 주민 동의, 사업성, 주변 아파트 공급 현황 등을 촘촘히 따져 주민들이 납득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타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서울 강남과 목동, 상계동 등 서울만 해도 노후단지가 즐비하고, 지방도 마찬가지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이들 지역도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가능성이 크다.
●3기 신도시 큰 변수 가능성
1기 신도시 재정비에서 3기 신도시 사업도 큰 변수다. 이미 부분적으로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이 시작됐다. 3기 신도시는 서울 접근성이 1기 신도시보다 좋고 수도권광역급행전철(GTX) 등 교통망 계획도 촘촘해 1기 신도시엔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입주 수요가 3기 신도시로 몰릴 경우 1기 신도시는 재정비에 따른 신규 물량 선호도가 낮아져 사업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판교를 제외한 2기 신도시들이 고전했던 것과는 양상이 크게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3기 신도시 최초 입주일은 인천계양 2026년 상반기, 고양창릉 2027년 하반기, 하남 교산 2027년 상반기로 예정돼 있다. 올해 들어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3기 신도시 청약이 본격화할 경우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이 직격탄을 맞을 위험이 큰 것이다. 특히 고양 창릉과 의왕·군포와 인접한 일산·평촌신도시 등은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따라서 3기 신도시 공급과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은 개별 단지별로 신속히 추진하거나 늦추는 등 정교한 로드맵 수립이 필요하다.
임창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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