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가 운영하는 펀·집·숍] 느리게 추억을 기록하는 방법 필름카메라

김명준 2022. 9.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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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싱그러움 담긴 36컷 필름의 '총천연색 유혹'
디지털시대 필름사진 감성 공유
36컷 기록하는 '느림의 미학' 인기
번거로움 불구 쨍한 색감이 장점
사진현상 과정도 일상여행 한부분
인화지 만지는 촉감 즐거움 더해
1만원대 일회용카메라 부담 없어
▲ 저마다 도드라지는 색감을 가진 필름은 골라찍는 재미를 더한다. 사진 속 첫 번째 두 번째 줄이 컬러 네거티브 필름,세 번째가 흑백,네 번째 다섯 번째가 컬러 슬라이드 필름. 사진/김명준

2000년대 이전 사진은 필름으로 찍는 것이 당연했다. 이후 디지털카메라 사용자가 늘고 고성능 렌즈가 내장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필름사진은 보기 좋지만 무언가 불편한 것으로 인식됐다. 디지털 시대 속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넣고 36컷을 신중하게 찍어 그걸 또 현상소에 맡기고, 맡긴 필름을 디지털로 변환해 주변 사람들과 ‘갬성’을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또한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내 기억의 보조수단이 된지 오래다. 복잡한 주차장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기둥번호를 찍고, 새로운 물건을 발견했을 땐 추후 구매를 위해 상품명을 찍어두는 등 너무나 손쉽게 카메라를 이용해 기록하고 있다.필름 카메라였다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을 일을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 카메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여행지에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빠르게 찍고 빠르게 보정한 후 실시간으로 공유가 가능한 시대 사람들은 왜 번거로운 필름으로 사진을 찍을까.

슬라이드 필름의 추억

“흑백으론 내 상상력을 표현할 수 없어/코다크롬은 싱그러운 색감을 보여줘/마치 온 세상이 화창한 여름날 같아요/니콘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행복해/엄마(?), 내 필름 추억을 버리지 말아요” 사이먼엔 가펑클의 전 멤버 폴 사이먼(Paul Simon)이 1973년 발표한 노래 ‘코다크롬’ 가사의 일부다.

슬라이드 필름의 전설 ‘코다크롬’은 1935년 첫선을 보였다.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코다크롬 덕분에 사진가들은 흑백 시대와의 작별을 고하고, 본격적인 총천연색의 사진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코다크롬은 사진뿐만 아니라 그 시대 다양한 역사적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얼마 전 서거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 1953년 대관식 기록에 사용되기도 했다. 탄생부터 단종까지 74년간 코다크롬은 싱그러운 색감 묘사와 강한 내구성으로 아마추어와 프로에게 널리 사랑받았다.

▲ 중고시장에서 필름카메라를 찾아보면 1만원대부터 수십만원대 카메라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고가의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작은 투자로 소확행을 느낄 수 있다.

유행은 돌고 돈다

2009년 필름생산업체 코닥은 필름 수요의 감소와 디지털 사진의 보편화를 이유로 슬라이드 필름 생산과 코다크롬 현상 중단을 발표했다. 발표 이후 세계 곳곳의 아마추어, 전문 사진가들은 그간 숨겨둔 필름을 꺼내 현상하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현상 수요의 증가로 2011년까지 현상소를 운영했다.

궁해서 통했을까. 코닥은 필름을 사랑하는 이들의 강한 요구로 2018년 엑타크롬 슬라이드 필름을 재생산하겠다고 발표한다. 영상을 기록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었다. 과거의 필름과 다를 게 없이 예전 그대로의 색감으로 재출시된 필름은 무척이나 비싼 가격이 책정됐다. 감성을 찾는 반짝 수요에 따른 공급인 줄 알았던 필름생산은 코닥의 고가 정책에도,우리나라에서 사려면 3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보자

필름 사진은 기록의 보존성이 놀랍다. 우리 신문사 조사부 캐비닛에 켜켜이 쌓여있는 과거 흑백사진을 보면 당시 생생한 현장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또 2000년대 이전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고향집 사진첩 속 크게 인화한 백일, 돌 사진이 하나쯤은 있을 거다. 비록 보관상태가 좋지 못해 빛이 바래고 먼지가 끼었어도 내려앉은 시간으로 따뜻함이 묻어난다. 요즘은 컴퓨터 모니터나 작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쉽게 눈으로만 사진(이미지)을 본다. 이와는 달리 인화된 사진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진첩 속에서 기억을 꺼내 사람의 촉각, 후각을 자극하며 추억을 보여준다. 그래서 필름 사진은 능동적으로 기억에 접근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사진첩을 꺼내고 한장씩 넘기며 과거의 기억을 손으로 더듬는 행위가 현재 디지털사진을 보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골라찍는 재미

후지, 일포드, 코닥 등 여러 필름 생산업체가 있다. 각 회사는 저마다의 도드라지는 색감으로 사진 찍는 사람을 유혹한다. 필름은 크게 3종류로 나뉘는데 컬러 네거티브, 흑백, 슬라이드가 대표적이다. 국민학교 시절 소풍날 사용하던 일회용 카메라 안에 들어있던 필름이 컬러 네거티브다. 컬러 네거티브는 사용이 쉽고 주변의 오래된 사진관에서도 현상할 수 있어 초보자에게 추천한다. 흑백의 장점은 피사체를 흑과 백으로 표현해 명료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관심이 있다면 약품을 구입해 직접 인화도 가능하다. 슬라이드 필름의 경유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이미지의 선명함이 장점이다. 사진을 크게 인화하고 싶다면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해 보자. 현상소가 많이 사라졌지만, 수도권에 가능한 곳이 있다.

느림의 미학으로 일상여행

고향집 장롱에 처박혀 있는 고물 필름카메라를 찾아보자. 없다면 1만~2만원 정도하는 일회용 카메라를 한번 사용해보는 것도 좋다. 최근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김태성(42·동해)씨는 “카메라의 필름을 직접 손으로 감아 촬영하는 느낌이 재밌고, 사진이 만들어지는 기다림이 좋았다”며 “제주도 현지에서 36컷을 촬영 후 그 지역의 사진관을 찾아서 현상을 하고 사진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됐다”고 말했다. 필름 사진찍기가 번거롭지만 ‘느림의 미학’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늘었다. 필름사진은 요즘 이해하기 어려운 수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손으로 착착 카메라 속 필름을 감아 찰칵 사진을 찍는 것이 바쁜 일상을 조금 여유롭게 해줄지도 모른다. 요즘 청명한 하늘은 필름에 담기 좋은 소재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풍경을 일회용 카메라에 담아 근처 사진관에서 인화해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보면 어떨까.김명준 weege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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