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쌍용자동차와 여의주
“온 세상에 펼쳐라 널리 펼쳐라. 광활한 우주에 환히 비춰라...”사가(社歌)의 노랫말이 말해 주듯 그룹이 뿜어내는 분위기와 이미지는 호방하고 남성적이었다. 한창 때는 국내 재계 순위 다섯 손가락 안을 넘볼 만큼 사세도 거칠 것이 없었다. 시멘트·해운·자동차·건설 등 덩치 큰 업종 계열사들의 심장부였던 1980년대 서울 저동 사옥은 외관도 꾸밈과는 거리가 멀었다.
1939년 조그만 비누회사로 출발해 질풍노도의 고성장 가도를 달린 후 외환위기의 격랑 속에서 해체된 쌍용그룹. 계열사마다 인수·합병·청산 등 비운의 길을 걸었지만 자동차의 여정은 특히 험난했다. 미래를 향해 달리기는커녕 홀로서기도 어려운 날들이 이어지면서 걸핏하면 주인이 바뀌었다. 대우그룹 울타리 안에서 숨을 돌리나 했더니(1998년) 중국 상하이차로 넘어갔다가(2005년) 인도 마힌드라로 손바뀜한(2010년) 후 최근 KG그룹의 가족사가 된 쌍용자동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회사의 굴곡진 운명은 상하이차 시절(2009년)과 마힌드라 시절(2020년)각각 한 차례씩 법원의 결정(기업회생절차)에 앞날을 맡겨야 했던 과거사에 진하게 녹아 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근로자들이 벌인 2009년 5~8월 77일간의 옥쇄 파업은 오랜 아픔으로 남아 있다. 사람으로 치면 천신만고의 풍파를 겪은 후 이제 새 주인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선 셈이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질주는 가능할까. 해답의 열쇠 중 하나는 뿌리를 파고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기술력 DNA가 첫째 단서다.
쌍용자동차의 모태인 하동환자동차제작소는 1954년 설립된 원조격 한국형 토종 자동차 회사다. 버스, 특장차 등의 분야에서 시장을 주름잡다가 1977년 동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꾼 후 1986년 쌍용그룹 계열사로 간판을 바꿨다. 4륜 구동차 생산에서 축적한 기술력은 쌍용을 거치면서 더 업그레이드됐다. 무쏘 코란도 렉스턴 티볼리 등 SUV 시장의 강자들을 속속 선보인 이 회사에 ‘SUV 명가’ 타이틀이 붙은 건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거미줄 판매망을 갖춘 대형사들의 진입과 유사 차종간 무한 경쟁은 쌍용을 줄곧 먹구름 속으로 밀어 넣었다. 쓰나미처럼 몰려온 도전을 뿌리치는 데에는 기술력 하나만으로 한계가 있었다. 기술 유출 논란 속에서 이 회사를 사들였던 외국 자본들이 대규모 추가 투자를 감당하지 못하자 ‘먹튀’ 시비와 노사 분규 등 구설수만 남긴 채 손을 들고 만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2017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22분기 연속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 채 부실기업 오명을 달고 다닌 옛 상처가 안타까울 뿐이다.
기업이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 전문가들은 기술력 외에 영업력과 자금, 그리고 경영진의 능력과 시운을 꼽는다. 여러 요소가 함께 섞여 시너지 효과를 낼 때라야 풍파를 이겨 내고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회사는 그동안의 냉대와 설움, 패배주의를 떨쳐내고 제 대접을 받을 호기를 맞았다. 경영 정상화를 향한 새 주인 회사의 집념과 의지, 빠르게 호전되고 있는 시장 상황 등이 그 증거다. 올 상반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3% 늘어난 데 이어 지난 7월 첫선을 보인 신차 ‘토레스’가 8월 말로 누적 계약 대수 6만대를 넘어서며 돌풍을 예고한 상태다.
용의 승천에는 여의주가 필수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비상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노사의 하나 된 마음과 산업 현장의 평화일 것이라고 나는 꼽고 싶다. “자식들에게 작업복이 가장 귀한 옷이라고 말해 왔다”는 한 직원의 말이 최근 매스컴을 탔지만 산업 현장의 장인들에게 작업복은 회사와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행복을 지켜주는 ‘갑옷’이다. 작업복의 가치와 의미를 누구보다 절감했을 임직원들의 얼굴과 가슴에 미소와 훈장이 가득해지길 기대한다.
양승득 (tanuki26@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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