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붙은 소금, 춤추는 기계.."이것은 모두 조각입니다"
큰 원탁을 어깨에 짊어진 머리 없는 허수아비들은 어쩌면 현대인의 표상일지도 모른다. 밀짚으로 만든 18개의 몸뚱이들은 원탁 위의 머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지만, 머리는 허수아비들을 놀리 듯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바쁘지만 공허할 뿐인 이들의 동작을 바라보는 것은 높다른 천장 위를 떠도는 검은 새들이다. 이는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 중인 최우람 작가의 '원탁'과 '검은 새' 작품이다.
머리를 차지하기 위한 허수아비들의 쳇바퀴식 싸움터를 떠나 세종대로로 내려가면 분위기가 사뭇 다른 적막한 공간이 나타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의 회색빛 바닥을 흰빛의 얼룩이 뒤덮고 있다. 이 얼룩들은 작업자가 흘린 페인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목공풀로 정교하게 접착한 소금이다. 마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해변에서 말라붙은 파도를 연상케 한다. 이는 조각가 정서영의 신작 '말 그대로' 작품이다. 몇 걸음 더 옮기면 유리로 만든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놓여 있다. 안에는 아이스크림 대신 새하얀 빛이 가득하다. 앙상한 각목처럼 보이지만 브론즈(청동)를 이어 붙인 구조물도 있다. 이제는 누군가 붙들고 물어볼 법도 하다. 이런 작품도 조각인가?
낯설음이 감각을 깨운다
낯선 감각을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생경한 조각들이 서울 한복판에 모였다. 인물이나 동물처럼 구체적 형상을 본뜬 조각에 익숙한 관람객에게는 형태도 재료도 새로운 조각들이다. ‘이것은 조각이오’ 광고하는 좌대도 없다. 소금 조각은 주변에 안내선조차 설치되지 않아서 직원이 알려주지 않는다면 관람객이 밟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각에 대한 현대적 이론을 몰라도 감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작품 자체의 낯설음이 관람객의 감각을 자극해 새로운 정서와 생각을 일깨운다. 기계들이 살아 움직이며 서사를 만드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가 내년 2월 말까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재료를 간단히 조합해 시어처럼 활용한 ‘오늘 본 것 - 정서영’이 올해 11월 중순까지 열린다.
최우람(52)과 정서영(58)의 개인전은 세계 미술계 관계자들이 방한한 계기였던 ‘프리즈 서울’을 전후해 개막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1990년대부터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온 두 작가의 전시가 우연찮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나란히 열린 것이다. 전시 규모도 작지 않다. 각각 신작을 포함해 53점과 33점을 선보인다. 작품의 양식은 조형물과 그것을 둘러싼 공간 전체가 작품을 이루는 ‘설치’부터 영상, 드로잉까지 다양한데 미술사의 긴 흐름으로 보면 모두 조각이다. 그러면서도 전혀 다른 예술적 언어를 사용해 관람객에게 말을 건넨다. 의미를 찾으려고 공부하듯 애쓰지 않아도 차이점을 느끼는 것만으로 감상은 넓고 깊어진다. 두 전시는 현대 조각의 다양한 면모를 함께 맛보는 계기이자 난해한 암호처럼 여겨지는 현대미술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다.
소설처럼 이야기하는 조각: 최우람
문학에 비유하자면 ‘작은 방주’는 소설처럼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시다. 전문가가 해설하지 않아도 작가의 의도가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최우람은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 생명체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번에 전시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통을 먹어 치우는 뱀을 형상화한 ‘우로보로스’가 유명하다. 몸통을 삼키면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자신의 몸통이 만들어낸 고리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머리의 모습은 역사를 상징한다. 이번에 선보인 허수아비들의 머리 쟁탈전(원탁)이나 그 모습을 허공에서 내려다보는 새들(검은 새) 역시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사회적 현상이나 구조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시의 백미는 어두운 전시장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작은 방주’다. 선체는 길이가 12m에 달하고 한쪽에 35개씩 모두 70개의 흰 노를 장벽처럼 둘렀다. 노를 수평으로 완전히 펼치면 폭이 7m가 조금 넘는다. 음악가 이이언이 작곡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노들이 사방으로 펼쳐지면서 장중한 군무를 펼친다. 노들은 20분간 때로는 조화롭게 때로는 사납게 춤추며 시선을 사로잡지만 방주는 어쩐지 방향을 잃은 듯 보인다. 배가 전진하는 방향의 벽면에는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나타나는 영상이 재생된다. 작품의 의미는 관람객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방주와 노가 각각 사회와 인간을 상징한다는 미술관 측 설명을 받아들이면 많은 부분이 새롭게 보인다. 왜 선장이 두 명일까, 왜 다른 방향을 가리킬까, 등대는 왜 이따금 감시하듯 한 방향을 비출까, 선수상은 왜 고개를 떨궜을까 등등의 질문을 떠올리고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다.
시처럼 생각을 일으키는 조각: 정서영
정서영의 작품들은 시처럼 함축적이다. 작가는 ‘이것이 조각인가’ 자문하게 만드는 조각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1999년 선보인 ‘전망대’가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 이 작품은 ‘전망대’라는 이름과 달리 기껏해야 성인 키 높이보다 조금 클 뿐이어서 도무지 제 구실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같은 해 제작된 ‘조각적 신부’는 나무 지지대에 신부의 드레스를 닮은 주름진 스펀지를 걸었다.
처음 공개되는 신작들 역시 조각처럼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전시장 중앙에 자리한 ‘뇌 속의 뼈’는 청동 막대가 뻗어 나가면서 뼈대처럼 보이는 형상을 드러낸다. 소금을 활용한 드로잉이면서 조각인 ‘말 그대로’는 말할 것도 없다. 전시장에는 판자부터 철, 유리, 싱크대, 비닐장판 등의 재료를 간결히 결합해 만들어낸 조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공책 여기저기에 끄적인 시어를 닮았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정서영의 조각에 대해서 “소설처럼 내러티브를 쌓는다기보다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고 재구성하면서 의미를 만드는 시와 같은 작품”이라면서 “실체가 딱 잡힌다기보다는 사물의 가능성을 열린 상태로 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학 모르면 어때? 자기 눈을 믿어야
물론 미술관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제공하는 해설을 듣거나 전문가들의 평론을 읽어서 감상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예컨대 ‘전망대’는 친구가 보낸 엽서에서 손톱만 한 크기의 전망대 이미지를 발견한 작가가 그것을 어떻게 ‘실제 경험’으로 바꿔낼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전망대가 제도가 부여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린 것들을 쓸쓸한 모습으로 표상한다는 분석도 있다. 다양한 정보와 해석이 더해져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람객 자신의 감각, 낯설어하는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정서영 작가는 자신은 개념 미술가가 아니라 조각가라고 강조했다. 관람객이 해설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조각은 눈으로 형태를 감상하는 예술이란 이야기다.
“우리가 모든 전문 분야에 대해서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죠. 그런 결핍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미술관에서는 작가들이 제안한 여러 의견을 만나는 겁니다. 그게 자신이 배웠던 말이 아닐지라도 작품을 보고 ‘오늘 내가 좀 유별난 상태가 됐네?’ 느끼는 것만으로 상당히 좋은 일이에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겠죠. 오히려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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