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돌아온 '다락방의 미친 여자'..'함께 읽기' 인증샷까지

진달래 2022. 9. 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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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고전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이주민과 美 의료계 문화 충돌 그린 '리아의 나라'
절판 이후 정가 8배 넘게 뛴 중고책 가격
꾸준한 복간 요청·사회 변화 등에 재출간
서점 알라딘에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 출간 전 이벤트로 7월 21일부터 한 달간 진행한 북펀드를 통해 목표 금액의 10배가 넘는 돈이 모이며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알라딘 홈페이지 캡처

"중고가가 22만 원인 게 말이 되나요. 어느 출판사든 재출간 좀 해주세요."

온라인 중고 서점은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도 종종 절판된 책을 구하는 게시글이 올라온다. 이처럼 재출간 요청을 심심치 않게 듣던 '다락방의 미친 여자'와 '리아의 나라'가 다시 출간됐다. 국내에 처음 선보인 지 10여 년 만이다. 그간 4만8,000원짜리 책의 중고가가 20만 원을 훌쩍 넘고 정가 1만2,000원의 책은 중고 최고액이 8배 이상으로 뛰었다. 독자들의 복간 요청은 물론이고 변한 시대상과도 맞아 떨어져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재출간이 결정됐다. 두 책 모두 국경, 언어, 성별과 같은 경계를 넘어서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오늘날에도 유효한 시사점을 준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지음·박오복 옮김·북하우스 발행·1,168쪽·5만5,000원

19세기 영미 문학사, 여성 작가 통해 재구성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이달 7일 재출간된 영문학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재출간 전 이벤트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출판사가 서점 알라딘에서 7월 21일부터 한 달간 진행한 '북펀드'는 목표 금액(400만 원)의 10배가 넘는 약 5,180만 원(1,036명)을 모금액으로 기록했다. 목표액 달성 시 참가자에게 해당 도서와 사은품 등을 제공하는 '알라딘 북펀드'에서 단권이 5,000만 원 넘게 펀딩 받는 일은 이례적이다. 재출간 이후에도 온라인상에선 '함께 읽기' 글이 속속 올라와 이 책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준다. '벽돌책'이라 불릴 정도로 두꺼운 분량(1,168쪽)인 터라 주차별 읽기 계획을 세워 짤막한 독후감과 '인증샷'을 같이 올리는 식이다.

한국어판 출간(이후·2009) 이후 13년 만에 대폭 수정된 번역으로 새 단장한 이 책은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고전으로 불린다. 길버트·구바는 19세기 영미 문학의 역사를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등 여성 작가를 통해 재구성한다. 미국에서 출간된 1979년 당시, 기존 남성 작가 위주의 연구와 비평의 빈 공간을 채운 파격적 시도였다. 40년 이상이 흘렀지만 신선한 대목들이 적지 않다. 그 시대 여성 작가의 문학 속에서도 감금, 거식증, 가스라이팅 등 현재에도 성차별과 연결되는 소재들을 찾아낼 수 있다. 세월의 변화로 빛이 바란 해석도 있지만,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토대로서 핵심은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허정은 북하우스 팀장은 "페미니즘 관련 정보에 대한 독자들의 늘어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라고 판단해 재출간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두 저자가 지난해 20세기 여성 작가 등에 대해 쓴 '스틸 매드(Still Mad)'를 출간하면서 전작('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대한 관심이 환기된 영향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스틸 매드' 한국어판은 내년 출간 예정이다.

리아의 나라·앤 패디먼 지음·이한중 옮김·반비 발행·560쪽·2만원

몽족 이주민과 美 병원, 넘지 못한 문화장벽 비극 '리아의 나라'

'리아의 나라'는 국내 스테디셀러 '서재 결혼 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의 데뷔작이다. 미국에서 첫 발행된 1997년 전미비평가상을 받았고 국내 초판본(윌북·2010)도 좋은 평을 들었으나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절판된 후 의료계에서는 회자됐던 책으로, 이번에 15주년 개정판(2012)을 번역해 재출간됐다.

이 책은 1980년대 라오스 고산지대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몽족 가족이 미국 의료계와 갈등을 빚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낸 르포르타주다. 사건은 어린 딸 '리아'가 뇌전증 진단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가족도 의사도 리아의 치료에 성심을 다하지만 병은 악화한다. 가족과 의료진 간 불통의 결과다.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뇌전증이란 병 자체를 이해 못하는 리아의 가족은 이를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코 다 페이')이라고 생각하고 굿을 한다. 의사는 처방약을 제때 투약하지 않는 환자 가족 때문에 답답하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아픈 환자가 직접 병원에 가야 하고 기껏 20분 진료 받고 돌아오는 의료 체계를 신뢰할 수가 없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문화 충돌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역학관계, 혐오와 배제 등도 세심하게 드러낸다. 대구 이슬람 사원 건축 갈등 등 최근 문화 충돌이 가시화된 한국 사회에도 유의미한 대목이다. 최예원 반비 팀장은 "이전에는 의료윤리 관점에서 주로 읽힌 책이지만, 이제는 문화 충돌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굉장히 균형적 태도로 서술한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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