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 타며 흥행 반란 코미디 '육사오' .."원래는 로또 둘러싼 남북 멜로"

라제기 2022. 9. 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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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만 관객 돌파.. 하반기 극장가 이변
박규태 감독은 "'육사오'가 관객 200만 명을 꼭 넘어서 큰 영화가 아니어도 흥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홈초이스 제공

제작비는 50억 원이다. 투자배급사는 신생 홈초이스다. 유명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도 아니고, 톱스타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제작비가 적어도 200억 원이 넘는 국내 영화 4편이 ‘쩐의 전쟁’을 펼치던 여름에 개봉(지난달 24일)했다.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으나 입소문 하나에 기대 200만 명(14일까지 170만 명)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영화 ‘육사오(6/45)’는 올 하반기 극장가 최대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흥행 반란을 이끌어낸 박규태(51) 감독을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육사오’는 조금 황당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다. 휴전선 최전방 감시 초소(GP)에서 복무 중인 병장 박천우(고경표)는 1등 당첨이 될 로또 복권을 우연히 줍는다. 복권은 강풍에 날려 북측으로 넘어간다. 북한군 병사 리용호(이이경)가 이를 줍고, 57억 원이 당첨된 복권임을 알게 된다. 천우는 복권을 되찾으려 하고, 용호는 돈을 받을 방법을 강구한다. 주변 남북한 병사들이 끼어들면서 일은 복잡해지고, 긴장과 웃음이 빚어진다. ‘육사오’는 45개 숫자 중 6개를 맞히면 1등인 로또를 의미한다.

박 감독은 “원래 영화사가 가지고 있던 시나리오”라고 했다. “10년 전쯤 연출 의뢰를 받았는데” 지금과는 내용이 달랐다. "북한사람이 남한에 와 복권당첨금을 찾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멜로물이었다. 박 감독은 “은행에서 돈을 찾으면 더 이상 이야기 진행이 어렵다”는 생각에 “별 관심이 없었다.”

배우 류승수와 담소를 나누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GP에서 복무 중인 남과 북 병사들을 끌어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코미디 버전으로 해보면 어떨까라는 의견이 나오면서” 작업이 빨라졌다.

'육사오'는 평화와 통일을 외치면서도 서로의 이익만 계산하는 남북한 문제점을 로또를 소재로 에둘러 표현한다. 홈초이스 제공

투자받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주요 투자배급사들이 손사래를 쳤다. 어느 투자배급사가 투자를 결정했다가 철회하면서 난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개봉을 앞두고선 “적지 않게 불안했다.”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로 대작들 틈바구니에 놓였기 때문이다. “어느 투자배급사 내부 보고서는 ‘육사오’ 최종 관객을 30만~50만 명으로 내다봤대요.” 기댈 건 입소문이었다. “블라인드 시사회(개봉 전 관객에게 영화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하는 시사회)에서 4점(5점 만점)이 나온 점”이 믿는 구석이었다. ‘육사오’는 개봉 5일 만에야 일일 흥행순위 1위에 올랐고 10일 동안 수위 자리를 지켰다. “오랫동안 연락 없던 지인들에게 전화가 오고서야 입소문이 났다는 걸 실감했어요.”

박 감독은 20대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영화인이다. 대학에서 영화동아리 활동을 하며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대학 졸업을 하기도 전 충무로 생활을 했다. “2년 동안 영화사와 대학을 동시에 다니는” 흔치 않은 삶을 살았다. 대학 3학년 때 이경영 최진실 주연 영화 ‘베이비 세일’(1997) 시나리오를 쓰며 작가로 데뷔했다.

조직폭력배와 스님들이 사찰을 놓고 대립하는 내용을 담은 ‘달마야 놀자’(2001), 급작스레 신이 내린 조직폭력배 이야기를 그린 ‘박수건달’(2013)도 박 감독의 시나리오를 밑그림 삼았다. ‘육사오’의 코미디 감각이 박 감독의 오랜 내공에서 비롯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육사오’는 박 감독이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영화다. ‘날아라 허동구’(2007) 이후 15년 만이다.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와 아버지의 사연을 그린 ‘날아라 허동구’는 호평에도 관객 39만 명에 그쳤다.

‘육사오’는 여러 장면에서 관객을 웃기나 박 감독은 "작정하고 웃겨야겠다”며 촬영하진 않았다. “코미디에 대한 강박을 지니면 이야기를 만들기 더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박 감독은 “군사분계선을 두고 총부리를 겨눈 병사들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던져졌을 때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여러 비유를 자연스럽게 넣으려고 했어요. 통일까진 아니어도 남이든 북이든 우리는 어차피 이 땅에 태어났으니 공존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할까를 관객들이 웃으면서 곰곰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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