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이다" 우리 측 항의에.. 中, 고구려·발해 뺀 연표 철거키로

유석재 기자 2022. 9. 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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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내용 수정없이 미봉책

중국 국가박물관은 15일 고구려와 발해를 제외해 역사 왜곡 논란이 된 한국사(史) 연표를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이라 항의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시품 조기 철수까지 시사하자 우리 측 항의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분명한 사과를 하지 않고, 바로 잡은 내용의 새로운 연표는 게시하지는 않아 미봉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외교부는 이날 오후 “중국 측이 문제가 된 특별전의 한국사 연표 게시와 관련해 우선 철거 조치를 한다고 공식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중국 측은 이번 논란이 “어떤 의도에 의해 추진된 사안은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한·중이 국립박물관 간 소통을 촉진해 유사 사례 재발을 방지하자”고 했다. 또 2004년 양국이 구두로 합의한 ‘중국이 교과서, 정부 차원에서 고구려사 왜곡을 하지 않는다’는 ‘5대 양해 사항’에 대한 존중의 뜻도 변함없다고 했다.

앞서 중국 국가박물관은 한·중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한·중·일 고대 청동기 유물전’에서 고조선·신라·백제·가야·통일신라·고려·조선만 표기하고 고구려·발해를 표기하지 않은 한국사 연표를 게시해 논란이 됐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했다고 표기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가 제공한 자료를 중국 측이 임의 편집해 작성한 것”이라며 “중국 측 태도는 신뢰 관계를 훼손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 측 수정 요구에도 중국 측은 아무런 회신을 하지 않았고, 역사 왜곡 논란이 계속되자 국립중앙박물관은 15일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전시품의 조기 철수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외교부가 “엄중히 문제를 제기하고 조속한 시정 조치를 촉구 중”이라고 하자 중국 측은 뒤늦게 연표를 철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고구려, 발해를 포함한 새로운 한국사 연표 전시 여부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자고만 했다. 중국이 이날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리잔수(栗戰書) 전인대 상무위원장 방한을 의식한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2000년대 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인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한중 외교 갈등이 격화하자 2004년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한중 외교 당국은 ‘중국이 교과서와 정부 차원에서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구두 양해안에 합의했다. 최근 중국 국가박물관이 고구려와 발해를 연표에서 삭제한 유물전을 연 것은 양국 합의를 위반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2004년 8월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과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서울에서 만나 ‘양해 사항’을 구두로 약속했다. ‘중국 측이 고구려사 문제가 대두된 것에 유념’하고 ‘중국 중앙·지방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기술(왜곡)에 대한 한국 측 우려를 이해한다’는 내용이다. ‘고구려사 등 역사 문제 때문에 한중 협력 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도 담았다.

서면이 아닌 구두 형식의 합의라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양국 역사 갈등은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2006년 10월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이 “동북공정 문제를 비롯한 역사 인식 문제가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합의 정신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중국은 중앙·지방정부를 가리지 않고 역사 왜곡 문제를 일으켰고, 우리 정부의 시정 요구도 묵살하는 일이 잦았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중국 국가박물관의 ‘고구려, 발해 삭제’가 양국 합의 정신을 위반했다 판단해 항의했고, 중국 측이 이를 받아들여 연표를 철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은주 외교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역사 문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이라며 “이번 건은 학술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 양국 관계 및 우리 국민의 대중국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엄중히 문제를 제기하고 조속한 시정 조치를 촉구했다”고 했다.

중국 측이 우리 측 항의를 받아들여 하루도 되지 않아 게시물 철거 조치를 한 것은 한중 관계에 대한 전략적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우리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 성격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나 반도체 협의체 ‘칩4′에 참여한 가운데, 한국 내 반중(反中)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 것을 우려해 ‘상황 관리’에 나섰다는 것이다. 15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한 리잔수(栗戰書)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한도 의식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다만 중국이 왜곡된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연표 철거 조치만 한 것은 한국의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미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측은 협의 과정에서 “고구려·발해가 들어간 연표로 수정하되 한국의 입장이라는 점을 명기하자”고 제안했지만, 중국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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