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20년째 역사왜곡… 6년전부터 교과서에서 ‘고구려’ 뺐다

유석재 기자 2022. 9. 1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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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부터 문화까지 계속되는 동북공정
15일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동방의 상서로운 금속, 중·한·일 고대 청동기전’에 전시된 고려시대 청동 소탑. 국립중앙박물관은 고구려와 발해가 빠진 한국사 연표 수정과 한국 전시실 관람의 잠정 중단을 요구했으나 이날도 계속 전시가 이뤄졌다.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15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 옆 국가박물관. 중국 국가박물관이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공동 주최한 ‘동방의 상서로운 금속, 중·한·일 고대 청동기전’ 전시관을 찾았다. 10여 명의 중국인 관람객이 고려시대 동종, 청동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한국 고대사 연표’에 고구려, 발해가 빠졌다는 사실이 지난 13일 알려진 후 국립중앙박물관은 “중국 측이 제공 자료를 무단으로 수정했다”며 내용 수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이날도 기존 연표가 그대로 걸려 있었다. 한 20대 중국 관람객은 “고구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중국 국가박물관에 전시된 내용이라면 맞는 내용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연표 수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 전시실의 관람 중단을 요구했지만, 중국 국가박물관 측은 이날도 전시를 진행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연표에 한국의 입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적시하는 방식으로 수정하자고 제안했으나, 중국이 난색을 보였다”고 했다. 중국은 결국 15일 오후 연표 수정 대신 ‘철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국의 역사 왜곡

천안문 광장에 인접한 중국 국가박물관은 ‘대국(大國)의 격에 맞는 박물관’을 만든다는 계획으로 4년간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2011년 재개관했다. 중국 공산당의 공식 역사관(歷史觀)을 보여주는 시설이다.

중국은 2004년 한·중 고구려사 분쟁 직후 외교 차관급 회동을 통해 “고구려사 관련 기술에서 한국 측 관심에 이해를 표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 나간다”고 봉합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박물관 등에서는 고구려와 발해를 ‘동북지역 소수 민족 지방 정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2009년 확장 개장한 중국 지린성 지안박물관은 고구려를 ‘중국 고대 동북의 소수 민족 정권’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외교 채널을 통해서도 중국 측에 문제 해결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고구려 문제는 하나의 학술 문제”라며 “학술 문제는 학술 영역에서 전문적인 토론과 소통을 할 수 있으며 정치적인 논의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베이징올림픽 개회식때 논란된 한복 - 지난 2월 4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여성이 다른 소수민족 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함께 등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은 1979년 이전까지만 해도 고조선·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의 나라들을 한국사로 봤으나 덩샤오핑 집권 이후 중국은 자국 내 여러 민족의 역사도 중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국가’ 이론을 내세웠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공식적으로 진행된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조선·부여와 고구려·발해를 ‘중국의 지방 정부’로 왜곡하는 작업을 했다. 주체는 국무원 산하 중국사회과학원의 ‘변강사지연구중심’이었다. 2004년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자 환런(桓仁) 등의 고구려 유적에 ‘중국의 지방 정권 고구려’라는 안내판을 달았다.

서길수 전 서경대 교수(고구리·고리연구소 이사장)는 “중국은 동북공정 이후 침탈한 역사를 ‘중국사’라고 쓰는 작업으로 전환했다”며 “이번 국가박물관 사태는 고구려사의 중국사화(化)가 이미 종결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2020년에는 한복과 김치까지도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중국 측의 주장이 불거지면서 이른바 ‘한복공정’ ‘김치공정’이라는 말을 낳았다. 서길수 교수는 “한복의 근원이 고구려 벽화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미 동북공정 등 고대사 왜곡을 통해 한복이 ‘중국 옷’이라는 근거가 마련됐던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4일 열린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회식에선 한복을 입은 여성이 조선족 대표로 나온 것을 두고 ‘중국이 또 다시 문화 침탈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동안 중국은 교과서에서만은 ‘고구려는 중국사’라는 서술을 어느 정도 자제했으나, 여기서도 왜곡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16년 중학교 ‘중국역사’ 교과서에선 고구려라는 나라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수 양제가 요동을 세 차례 쳤다”고 써서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이 마치 중국 내에서 일어난 내전인 것처럼 서술했다.

윤휘탁 한경대 교수(중국사)는 “중국 학계는 자국 정부의 통치이념과 역사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보여줬다”며 “동북공정은 여전히 진행형인데 우리 정부와 학계는 안타깝게도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베이징=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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