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한동훈 장관, 그 자신감의 원천은
여태껏 볼 수 없던 유형의 장관이 출현했다. 자신감이 넘치고, 국회에선 국회의원들과 다툼도 피하지 않는다. 자잘한 말싸움에서조차 지지 않으려 한다. 되레 훈계하거나 윽박지르는 언동도 자주 보인다. 좋게 보면 자신감이나 달리 보면 기본적 예의도 갖추지 않은 무례한 모습이다. 이렇게 당당한 ‘일국의 국무위원’은 좀체 볼 수 없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늘 당당한 모습이다. 론스타에 수천억원을 물어주게 되자, 한 장관은 이의신청을 검토할 것이고,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했다. 송기호 변호사가 ‘정동 칼럼’에서 지적했듯,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국민 세금으로 론스타에 막대한 돈을 물어주게 만든 관련 공무원들의 배임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 장관이 이쪽저쪽 상관없이 박수를 받았던 일도 있었다. 인혁당 피해자들이 반환해야 할 배상금 이자 면제 결정이 그랬다. 사람들의 박수에 고무된 듯, “법무부는 오직 팩트, 상식과 정의의 관점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고,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데에 진영 논리나 정치 논리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란 말도 남겼다.
인혁당 피해자 배상금 반환 문제는 오랜 숙제였다. 국가가 인혁당 피해자에게 지급한 배상금의 이자 계산이 잘못되었다며, 지급한 돈의 일부를 반환하라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줬다 뺏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반발했다. 반환해야 할 배상금에는 매년 20%씩 이자가 붙었다. 반환해야 할 원금은 5억원이었지만, 나중엔 이자만 10억원쯤으로 불어났다. 법원은 원금만 반환하고 이자는 내지 않도록 하는 화해권고안을 제시했다. 이걸 법무부가 받아들인 거다. 법원의 권고를 받아들였으니 당연한 일이라 여길 수 있겠지만, 여태껏 그런 결정을 머뭇거렸던 건, 국고로 들어와야 할 돈을 포기하는 일이 자칫 배임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 부분을 파고들면, 업무상 배임죄로 징역 10년 이하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KBS 정연주 사장 사건은 특히 심했다. 검찰은 세금을 많이 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정 사장을 배임죄로 기소했다. 법원이 하자는 대로 세금을 냈는데도 칼을 휘둘렀다. 나중에 무죄를 받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정 사장을 괴롭히며 KBS 사장에서 쫓아내는 게 핵심이었다.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경찰은 쌍용차 노조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대테러 진압부대인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해서 무리한 진압을 했고, 64명의 노동자를 구속했지만, 그래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쌍용차 사태의 상처는 두고두고 남았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경찰청장은 과거의 무리한 진압에 대해 사과했다. 그렇지만 손해배상 소송은 철회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도 국회 차원의 결의안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배임죄 적용 여부 때문이었다. 검찰이 이 부분을 파고들면 감당할 수 없다는 거였다.
수사기관인 경찰도 검찰 수사의 부담을 피해갈 수 없지만, 이런 일로는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검사들이다. 전임 장관과 달리 한동훈 장관만 정의감에 불타고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일념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한동훈 장관 자신감의 원천은 검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다. 검사 출신 장관이니 검찰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불법 접대에도 금액 끼워 맞추기로 멀쩡했던 것도, 검사 또는 검사 출신들이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았던 숱한 사례들은 모두 검찰이라는 뒷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선 2차전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여야의 대결이 격화하는 지금의 상황도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대결이 본질은 아니다. 검사 출신이냐 아니냐가 핵심이다. 범죄 여부, 혐의의 무거움과 상관없이 검찰은 오로지 이재명 대표만 캐고, 숱한 문제 제기에도 윤석열 대통령 본인, 부인, 장모에 대한 수사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독점적으로 휘두르고 있다. 검찰이 독점하는 기소권은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검찰 맘대로 쓸 수 있는 권한이다. 죄가 없는 게 뻔해도 기소할 수 있고, 죄가 많아도 기소하지 않을 수 있다. 검찰 처지에서 무서울 건 없다. 여론이 빗발치면 잠시 호흡을 고르면 그만이다. 국회와 언론은 물론, 국민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바로 힘을 가진 사람들만 누리는 특권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뒷배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법은 만인 앞에 공평하지 않다. 검사들 앞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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