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與 갈등의 숨은 코드, 세대 간 가치관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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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 재임했다. 그 기간 우리는 이승만부터 윤석열까지 대통령을 열 세 명 거쳤다. 그런 그가 서거했으니 ‘한 시대가 끝났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한 세기가 끝난 느낌이다. 훗날 영국인들은 21세기는 2022년에 시작됐다고 회고할지도 모른다. 1919년 ‘베르사유 체제’로 비로소 20세기가 시작된 것처럼.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을 21세기가 시작된 해로 볼 수 있다. 팬데믹은 일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인공지능(AI)이 상징하는 ‘기술의 시대’는 이미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대전환했지만 팬데믹은 그것을 ‘급가속’했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 대선은 21세기 첫 번째 선거다. 전통적 20세기(?) 대선은 ‘보수 동맹’의 박근혜와 ‘민주 동맹’의 문재인이 맞붙은 2012년 대선이 마지막이다. 그 선거는 ①정치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후보 ②역사적 이념 대립 구도 ③정당 중심 선거 ④대규모 군중 집회 등 오프라인 선거운동 ⑤전통적 공약이 특징이었다.
반면 이번 대선에선 ①정당 정체성이 약한 후보 ②디지털 세대의 캐스팅보터 부상 ③온라인으로 시공간 이동 ④스마트폰 시대 리스크 일상화 ⑤AI·팬데믹·기후위기·플랫폼 같은 새로운 이슈 부각 등 바야흐로 디지털 선거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날로그 세대인 윤석열 대통령과 디지털 세대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세대 전쟁’은 조금 과장하면 ‘문명의 충돌’이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더니 이준석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첫 세대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진국에서 태어난 세대다. 세계관과 가치관이 다른 자판기 커피 세대와 에스프레소 커피 세대의 실존적 충돌이다.
한국은 후진국에서 태어난 세대, 중진국에서 태어난 세대, 선진국에서 태어난 세대가 뒤섞여 사는 나라다. 엘리자베스 재임 기간보다도 짧은 두 세대 만에 소달구지 나라가 반도체 강국이 되었다. 촌스럽던 나라가 대중음악·영화·드라마·클래식·패션·뷰티·웹툰을 선도하는 세련된 나라가 되었다.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을 만든 세대가 선진국에서 태어난 세대보다 더 ‘위대한 세대’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미래를 선진국 세대에게 맡겨야 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가치관이 다른 세 세대를 거칠게 분류하면 1955년 이전에 태어난 ‘전쟁 세대’, 1955년부터 1985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부머’와 ‘X세대’, 그리고 1985년 이후에 태어난 ‘MZ세대’다. 전쟁 세대는 ‘국민’, 베이비부머는 ‘시민’, 1975년 이후 태어난 X세대는 ‘소비자’, MZ세대는 ‘개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식민지와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는 권리보다는 의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 세대는 항상 국가와 회사가 먼저였다.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 세대인 베이비부머는 권리와 의무를 모두 받아들였다. 반면 풍요 속에서 자란 X세대와 선진국에서 태어난 MZ세대는 의무보다는 권리를 먼저 챙긴다. 공동체와 조직을 먼저 챙긴 세대 눈에는 이런 모습이 이기적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의 아방가르드 이준석은 기성세대를 불편하게 하는 앙팡 테리블이다. ‘586′ 민주화 세대가 말하는 공정이 사회적 공정이라면 이준석 세대의 공정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는 공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가 이념적 자유라면 이준석이 말하는 자유는 개인의 자유다.
한국에서 지배 엘리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해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중반에 사회로 진출한다. 대개는 기업으로 가지만 일부는 교수가 되기 위해 유학을 가기도 한다. 고시를 통해 법조나 행정부로 가기도 하고 언론인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10년쯤 지나 30대 중반이 되면 조직에서 인정받는 에이스가 된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조직 내 경쟁이 시작된다. 그렇게 다시 10년을 보내고 40대 중반이 되면 조직 내 승자가 결정된다. 테뉴어(정년 보장), 대기업 임원, 검사장, 부장판사, 정부 부처 국장 등이 된다. 대한민국 1%가 된 것이다. 이젠 조직을 벗어나 술과 골프로 인맥을 확장한다. 50대 중반이 되면 마침내 대한민국 0.01% 최고 엘리트가 된다.
개혁적이고 지적으로 날카롭던 3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이 되는 20년간 시나브로 도덕적으로 해이해지고 지적으로 게을러진다. 그 사이 세상 변화를 읽는 통찰은 사라지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도 무뎌진다. 결국 현찰(돈과 자리)만 탐하는 기득권이 된다. 변화를 이끌기는커녕 변화에 둔감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한다.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70~80대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통찰로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①은퇴를 생각하지 않는다 ②끊임없이 공부한다 ③젊은 사람에게 배운다. 진정한 뮤지션들은 “내가 왕년에…” 이런 얘기를 안 한다. 조용필, 나훈아, 김창완, 이문세 같은 음악인은 젊은 가수들과 여전히 경쟁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프로 기사 서봉수를 본받아야 한다. 69세 서봉수 9단은 최근 한국 최정상 기사 5명을 상대로 치수 고치기에 도전했다가 두 점에서 패배하고 석 점 치수로 마감했다. 프로 기사로서는 치욕적이다. 그는 “아직도 많이 배우고 싶다. 지금 아니면 일류들에게 배울 기회가 없을 것 같다”며 용기를 내서 도전했다. 그는 무서운 승부사다. 다음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대표는 여전히 서로 필요하다. 가처분 심문이 28일로 연기된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지금까지 해온 것으로 보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1차 가처분 인용으로 정치적 승자가 된 이준석 대표는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이준석은 가처분 신청을 철회하고 국민의힘은 비대위를 해산하고 새로운 원내대표를 뽑아 직무대행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이준석 대표는 당대표 사퇴로 호응하는 것이 좋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대표는 세대가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지만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될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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