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76] 재산 축내기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누가 참 고맙다 할 때마다 걱정스러웠다. 심심한…. 맛이 싱겁거나 일이 따분한 게 아니라, ‘심할 甚’ ‘깊을 深’(‘深甚’으로도 쓴다)을 써서 매우 깊다는 뜻으로 알지 못하는 이가 적잖을 텐데. 사의는 또 어떻고. 고맙게 여기는 謝意가 아니라 죄송하다는 謝意나 물러날 생각이라는 辭意로 혼동할 수도 있으니.
객쩍은 근심이려니 하던 차에 ‘심심한 사과(謝過)’ 논란이 벌어졌다. 말뜻 못 알아듣고 되레 성내는 꼴이야 말해 무엇 하리. ‘깊이 사과한다’거나 ‘정말 죄송하다’처럼 흔한 말로 하면 좀 나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다만, 세대 갈등이니 언어 불신이니 티격태격하다 본질 잊지 말자. 어휘력이 문제 아닌가. 특히 한자어 인지 수준은 심각하다.
대중 매체 가운데 그래도 믿을 만한 신문마저 흔히 틀린다. 실이 한 올도 삐져나오지 않아 가지런한 모습을 가리키는 ‘일사불란(一絲不亂)’을 태연히 ‘일사분란’으로 쓴다. ‘난이도’는 어떤가. 어려울 난(難) 쉬울 이(易), 어렵거나 쉬운 정도를 가리키건만 툭하면 ‘난이도가 높다’ 한다. 어렵거나 쉬운 정도가 높다? 한자를 어느 정도만 알면 쓰지 않을 엉터리 표현을 마구 써서야…. ‘일확천금(一攫千金)’도 그렇다. 많은 재물을 단번에 거머쥔다는 뜻인데 ‘일확천금을 거머쥔다’고 쓰면 대체 어쩌란 말인지.
우리말의 칠할(七割)을 이루는 글자, 다시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면 좋겠다. 목포행 완행열차는 이제 보기 어려워도 ‘완(緩)’이라는 글자는 일상에서 숨 쉰다. 완급(急) 완만(慢) 완착(着) 완충(衝) 완화(和)…. ‘느리다, 늦추다, 느슨하다’는 뜻의 緩 하나를 미루어 열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한자는 하찮은 유물(遺物)이 아니라 값진 재산(財産)이다. 엄연히 역사와 문화에 뿌리박은 우리 것을 왜 한사코 버리려 하는가. 지나치게 어렵거나 딱딱한 말은 다듬되, 알 건 알고 쓸 건 쓰자. 우리말을 푸짐하게 가꾸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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