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도박에 빠진 청년들
평일 오후, 카페 옆자리에 모자를 눌러쓴 젊은 여성 두 명이 앉았다. 둘은 말도 없이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올라가라, 올라가!””3850원! 3860원!“”어어, 날아간다! 날아간다!”
주식 거래 생중계는 계속됐다. 여자는 3870원에 주식을 팔고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싸게 팔았다고 환호하던 그는 1분 만에 주가가 계속 더 오른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다시 사! 다시 사!” 친구가 부추겼다. 결국 여자는 주식을 다시 샀지만, 주가는 그 후부터 곤두박질쳤다. 둘 사이에 욕지거리가 오갔다. 내가 있는 곳이 카페인지 도박장인지 알 수 없었다.
올해 상반기 도박 중독을 치료받으려고 병원을 찾은 환자 10명 중 7명은 20~30대 청년층이었다.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도박 중독 환자 1333명 중 20대는 497명(37.1%), 30대는 505명(38%)이었다. 20~30대 도박 중독 환자는 4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도박 중독에 빠졌던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며 돈의 본질을 꿰뚫어봤다. 죄수들은 유달리 돈에 집착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밀매·도박·고리대금업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았다. 그 시절 경험이 담긴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그는 “돈은 주조(鑄造)된 자유였으며,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귀중한 것이었다”고 썼다.
돈으로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돈으로만 자유를 살 수 있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요즘 청년들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잃어버렸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등으로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자유도 누리기 어려워졌다. 다른 자유를 박탈당한 청년들에게 돈이 열 배나 더 귀중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반영인지, 일확천금을 소재로 한 드라마·영화가 자주 보인다.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난한 집안 장녀가 주인 잃은 검은돈 20억을 얻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네 자매를 그린 소설 ‘작은 아씨들’을 한국 빈곤층 가정의 네 자매 이야기로 비틀었다. 첫째는 신분 상승을 노리다 결혼 사기를 당했고, 똑똑한 둘째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셋째는 IMF 때 집안이 망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고, 그림 실력이 뛰어난 넷째는 부잣집 딸이 대회에 출품할 그림을 대신 그려준다.
“그림을 파는 건 네 영혼을 파는 것”이라며 나무라는 언니의 말에 동생은 되받아친다. “영혼이 뭐로 만들어져 있어? 나한테 영혼이란 게 있어서 비싼 값에 사준 거면 난 너무 고마운데?”
이제는 도박에 빠지는 10대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한다. ‘돈의 철학’을 쓴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이렇게 말했다. “돈은 단지 최종적 가치들로 가는 다리에 불과하며, 사람이 다리 위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다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이들에게 답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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