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도박에 빠진 청년들

백수진 기자 2022. 9.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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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 카페 옆자리에 모자를 눌러쓴 젊은 여성 두 명이 앉았다. 둘은 말도 없이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올라가라, 올라가!””3850원! 3860원!“”어어, 날아간다! 날아간다!”

화투 도박판 모습.

주식 거래 생중계는 계속됐다. 여자는 3870원에 주식을 팔고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싸게 팔았다고 환호하던 그는 1분 만에 주가가 계속 더 오른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다시 사! 다시 사!” 친구가 부추겼다. 결국 여자는 주식을 다시 샀지만, 주가는 그 후부터 곤두박질쳤다. 둘 사이에 욕지거리가 오갔다. 내가 있는 곳이 카페인지 도박장인지 알 수 없었다.

올해 상반기 도박 중독을 치료받으려고 병원을 찾은 환자 10명 중 7명은 20~30대 청년층이었다.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도박 중독 환자 1333명 중 20대는 497명(37.1%), 30대는 505명(38%)이었다. 20~30대 도박 중독 환자는 4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도박 중독에 빠졌던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며 돈의 본질을 꿰뚫어봤다. 죄수들은 유달리 돈에 집착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밀매·도박·고리대금업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았다. 그 시절 경험이 담긴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그는 “돈은 주조(鑄造)된 자유였으며,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귀중한 것이었다”고 썼다.

돈으로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돈으로만 자유를 살 수 있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요즘 청년들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잃어버렸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등으로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자유도 누리기 어려워졌다. 다른 자유를 박탈당한 청년들에게 돈이 열 배나 더 귀중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반영인지, 일확천금을 소재로 한 드라마·영화가 자주 보인다.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난한 집안 장녀가 주인 잃은 검은돈 20억을 얻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네 자매를 그린 소설 ‘작은 아씨들’을 한국 빈곤층 가정의 네 자매 이야기로 비틀었다. 첫째는 신분 상승을 노리다 결혼 사기를 당했고, 똑똑한 둘째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셋째는 IMF 때 집안이 망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고, 그림 실력이 뛰어난 넷째는 부잣집 딸이 대회에 출품할 그림을 대신 그려준다.

“그림을 파는 건 네 영혼을 파는 것”이라며 나무라는 언니의 말에 동생은 되받아친다. “영혼이 뭐로 만들어져 있어? 나한테 영혼이란 게 있어서 비싼 값에 사준 거면 난 너무 고마운데?”

이제는 도박에 빠지는 10대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한다. ‘돈의 철학’을 쓴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이렇게 말했다. “돈은 단지 최종적 가치들로 가는 다리에 불과하며, 사람이 다리 위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다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이들에게 답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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