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출산율 0.73 부산에 수의대를 허하라
소설 ‘개미’로 알려진 프랑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작품 가운데 절반이 한국에서 팔린다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다. 2001년 발매된 그의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두 기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들이 밝혀낸 사실은 충격적이다. 영장류인 아버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맏이’가 우리 인류의 기원이고 ‘빠진고리’인데 어머니의 정체가 당혹스럽다. 이 동물의 장기는 인간에게 이식이 가능하다. 이 동물은 인간에게 당뇨치료제인 인슐린을 제공하기도 하고 감정을 갖고 있어 자살을 택할 수도 있다. 이 동물의 이름은 ‘돼지’다. 소설은 원숭이 ‘아담’과 돼지 ‘이브’가 만나 인류의 기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물학자의 학설을 다루고 있다.
소설가의 터무니없는 상상력일까? 세계 최고 권위의 자연과학 학술지 ‘네이처’에는 8000만 년쯤 전에 사람과 돼지가 공동 조상에서 갈라졌다는 논문이 실린 적도 있다. 사실 돼지는 유전적으로 사람과 아주 비슷한 동물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인류와 유전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이지만 특정한 영역에서는 돼지가 앞선다. 그래서 돼지를 깊이 연구하면 인간을 더 잘 알 수 있다. 2012년 한국도 참여한 국제컨소시엄 연구진이 완성한 ‘돼지 유전체 지도’를 보면 조직과 장기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경우 사람과 돼지가 95% 유사하다. 비만 당뇨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같은 질병의 유전변이도 같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더 충격적인 사례도 있었다. 미국 메릴랜드 연구팀이 심장부정맥으로 인공심폐기에 의존해 죽음만 기다리던 57살 남성에게 돼지의 심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돼지의 심장에 인간의 면역체계를 견딜 수 있는 유전자를 집어넣는 등 유전자 교정을 거친 뒤의 수술이었다. 이 남성은 기존 의학적 방법으로는 한계에 부딪혀 죽음만 기다리는 중환자였다. 이 환자는 수술 뒤 2개월가량 더 살았다. 이를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의학적으로는 인간의 달착륙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중요한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돼지 장기의 인체 이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며 대기 중인 환자는 4만 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6.8명의 환자가 이식받지 못하고 대기 중에 사망하고 있다. 반려동물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국내 총가구의 30% 정도인 606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운다.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27년 6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라면 시장 규모가 21년에 2조8000억 원 수준이니까 2배가 넘는 셈이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동물 복제 시장도 열리고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삼성의 고 이건희 회장이 2010년과 2017년 2번에 걸쳐 포메라니안 품종의 ‘벤지’라는 개를 복제했고, 미국의 가수 겸 배우로 유명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14년간 자신과 함께하던 반려견이 2017년 세상을 떠나자 복제견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두가 바이오산업의 영역이다. 2020년 기준 바이오산업 시장은 1800조 원으로 800조 원의 반도체산업, 600조 원의 자동차산업을 합한 것보다 더 크다. 바이오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1차적인 연구는 동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의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가 인간에게 옮긴 것이다. 천연두나 결핵 사스 메르스도 동물 질병이 인간에게 전파된 것이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를 비롯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찾아올 팬데믹에 대한 연구와 대응도 바이오산업의 영역이다.
한국의 연간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68㎏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연근해 수산물 어획량은 급감하는 가운데 늘어나는 수산물 수요를 충당하는 것은 양식산업이다. 지난해 연근해 어업 생산량은 94만 t, 이에 비해 양식어류 생산량은 245만 t에 이른다. 수상생물의 질병 예방을 통해 안전한 수산물 먹거리를 확보하고 국내 수산물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해양바이오산업이다.
바이오산업의 가장 기초는 수의과대학이고 동물실험이다. 하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수의과대학이 없는 곳, 그래서 21세기의 가장 큰 산업인 바이오산업의 희망도 가져 볼 수 없는 곳이 부산이다.
한국은행 부산본부의 ‘코로나19 이후 부산지역 고용의 질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은 전국 17개 시·도 중 12위로 하위권이다. 그만큼 부산에는 청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산경제진흥원 조사는 부산 청년 10명 가운데 4명이 직업을 찾을 생각조차 없이 그냥 놀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10년 사이에 20만 명이 넘는 부산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났다. 부산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10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부산에는 이제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고들 한다.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유일한 초고령 도시, 합계출산율 0.73의 도시 부산에 더 늦기 전에 수의과대학이 필요한 이유다. 2030엑스포도 좋지만 지속가능한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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