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924 기후정의행진서 만나요
소싯적 내 꿈은 태국에 한국식 팥빙수 가게를 여는 거였다. 그래서 동남아 인류학을 공부했는데, 사실 연구는 염불이었고 나는 잿밥인 태국에만 꽂혀 있었다. 지금도 남들은 ‘내 새끼’가 미래에 기후변화로 망해버린 영화 <투모로우>나 <설국열차>의 삶을 살까 봐 걱정하는데 나는 동남아 해안이 잠길까봐 두렵다.
다음 퀴즈를 풀어보자. 플라스틱은 무엇으로 만들까요? 지구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곳은 어딜까요? 1ℓ 페트병 한 개를 생산할 때 기름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이미 질문에서 답이 나왔는데 플라스틱은 기름으로 만든다. 참기름 말고 석유나 가스 등의 오일 말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등유, 경유, 휘발유로 정제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프타라는 찌꺼기가 나온다. 석유화학업계는 이 나프타로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플라스틱 알갱이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합성수지, 합성고무, 합성섬유 등이 생산된다. 즉 비닐봉지, 페트병, 장난감, 타이어, 등산복, 페인트, 합성비료 등 현대적 삶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이 석유화학산업에서 나온다. 그 결과 화학산업은 전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산업 중 3위가 되었다.
가끔 기후문제에 있어 플라스틱은 사소한 한 부분인데 왜 더 큰 구조를 보지 않냐고 한다. 하지만 최근 환경규제에 따라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산업에 무게가 실리면서 정유사는 오일 생산공정의 일부를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화학공정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화석연료에서 뽑아낸다는 점에서 기름이든, 플라스틱이든 실은 한 몸통이다. 예를 들어 1ℓ 페트병 한 개를 생산할 때 석유 250㎖가 들어간다. 화석연료를 캐내 에너지로 쓰든 플라스틱 물건을 만들어 쓰든 생산과 폐기의 모든 단계에서 탄소가 새어 나온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흡수하는 곳이 바로 바다다. 산업혁명 이후 생성된 이산화탄소의 약 30%를 바다가 흡수했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바다에 저장하는데 미세플라스틱이 이 기능을 저하시킨다. 동물성 플랑크톤은 탄소를 바다 깊은 곳으로 운반하는데 미세플라스틱이 동물성 플랑크톤의 재생산과 대사활동을 떨어뜨린다. 즉 미세플라스틱이 바다의 탄소 저장 능력을 손상시키고 그 결과 기후위기는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가 이미 지닌 기술을 활용하고 시스템을 바꾸면 향후 20년간 바다로 흘러드는 플라스틱의 80%까지 줄일 수 있다.
근래 쓰레기 문제가 ‘뜨면서’ 재활용에 신경 쓰는 기업이 늘어나고 재활용 등급제와 일회용품 규제 등이 생겨났다. 나는 우리가 일군 작은 승리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기후위기에 맞서려면 이 작은 승리들을 모아 석유화학산업에 기댄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9월24일 광화문광장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꿈꾸는 ‘기후정의행진’이 열린다. 정치학자 체노웨스 교수는 역사적으로 성공한 비폭력 집회는 3.5%의 시민들이 들고 일어설 때라고 했다. 시스템을 뒤흔들고 거대한 석유화학산업을 정의롭게 전환하는 길은 기후위기를 자기 일처럼 챙기는 시민들의 연대에 달려 있다. 치앙마이에서 다회용 용기에 팥빙수를 팔고 있을 평화로운 노후를 꿈꾸며 광화문으로 달려가야겠다. 9월24일에 만나요.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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