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좋은 정부만들기]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쓸까
재정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신기하면서 또 의아한 것 중 하나는 많은 사람이 나라 살림에 별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른다는 점이다. 자기 차에 휘발유 채울 때는 리터당 몇십 원 차이에도 예민해져서 가장 싼 곳을 찾아 헤맨다. 편의점에서 캔맥주 살 때 낱개 대신 네 개 한 묶음으로 사면 500원이 싸서 항상 네 개 단위로 구매한다.
개인적인 지출은 작은 액수라도 꼼꼼히 따지면서, 나랏돈은 뭉텅이로 떼어져도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이해는 된다. 비록 내가 낸 세금도 국가 재정의 일부를 이뤘겠지만, 그 양은 태산 중의 티끌일 터라 내 지분이 있다는 인식보다는 그저 남의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남의 돈, 그것도 주인 없는 돈이라 여겨지니 이렇게 한 덩어리, 저렇게 또 한 덩어리,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도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아깝기보다는 나도 어찌 끼어볼까 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러나 국가 재정의 쓰임새는 내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2주 전 제출된 내년도 예산안을 보자. 내년부터는 출산하면 2년간 매달 70만원의 부모수당이 지급된다. 올해 영아수당이라는 이름으로 30만원 지급했던 것을, 이름을 바꾸고 금액도 대폭 올렸다. 군 사병 봉급은 82만원에서 130만원으로 인상된다. 오래전 군대 다녀온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혜택이 늘어난 게 있으면 줄어든 것도 있는 법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 중 공공형 일자리는 올해 60만8000개에서 내년 54만7000개로 6만개 이상 감소한다. 공공형 일자리는 노인 일자리 사업 중 특히 고령의 취약계층에 집중된 것으로 월 30시간 일하고 27만원을 받는다. 워낙 고령자가 많기에 솔직히 ‘생산성’을 따지면 효율적일 수 없다. 취업보다는 공공부조에 가깝지만, 그래서 더욱 고령 취약계층 생계에는 중요하다.
국회 부실 예산심의는 제도 문제
개별 사업을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끝이 없을 테니 총량으로 보자. 내년도 예산안은 639조원이다. 실제 정부 총지출은 여기에 건강보험과 일부 지방정부 지출도 포함되니 이보다 더 크며, 국내총생산(GDP)의 30%가 훌쩍 넘는다. 정부가 스스로 돈 벌어 재원을 마련하지는 못한다. 세금이든 보험료든 결국은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정부가 30%를 쓰면 민간은 70%만 쓸 수 있다. 내가 100만원을 벌면 그중 70만원만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30%가 아니라 20%만 쓰면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은 10만원이 늘어난다! 이렇게 따져보면 나랏돈은 절대 남의 돈이 아니며 무주공산의 공돈도 아니다. 그래서 정부 재정 활동 정당성의 최소 기준은 이렇다. “정부가 쓰는 1억원이, (세금을 그만큼 덜 걷고) 각자 알아서 1억원을 쓸 때보다 사회적으로 더 큰 효용을 창출하는가?”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다면 정부 지출의 정당성은 상실된다.
개인이 쓰는 것보다 더 큰 효용을 창출할 것. 행정학자로서 가슴 웅장해지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대체 개인이 쓰는 것보다 더 가치있게 쓰는지를 어찌 알까? 시장 경제 활동과 달리 정부 재정 활동은 가격기구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값어치를 직접 알 수는 없다. 그 대신 가치있게 쓰게 하는 다양한 장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회의 통제다. 정부 재정의 규모와 용처를 결정하고 집행을 감시하며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국회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애초에 국회가 만들어진 이유가 정부가 내 돈 함부로 못 쓰게 하기 위함이었다.
정부는 매년 9월 초 내년도 예산안과 5년간의 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넘겨받은 예산안을 심의해서 12월 초까지 확정해야 한다. 3개월의 기간이 국민에게서 걷은 돈을 얼마나 가치있게 사용할 것인지 꼼꼼히 챙기고 판단하는 데 충분한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국회는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한 열심히 재정운용계획을 검토하고 예산안을 심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기대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자주 기대에 못 미치고 흔히 상식에 어긋난다.
야당 발의 ‘예산 법안’ 통과돼야
예산안이 제출된 지 2주가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워밍업을 끝내고 본격적인 검토와 심의에 착수했을까? 전혀 아니다. 물론 요즘의 여당과 야당 상황이 국회 본연의 책무를 수행하기에 여의치 못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도 어림없다. 10월 한 달간은 국정감사 시즌이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힘 있는 자리인지 만끽하고, 운 좋으면 본인 얼굴을 언론에 노출할 절호의 찬스, 국회 일정의 꽃이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11월에 접어들어야 비로소 예산 심의가 시작된다. 한 달의 기간은 충실한 심의가 이뤄지기에는 턱없이 짧다. 그런데 남은 한 달마저도 예산 심의에 온전히 집중하지는 않는다. 실제 심의 기간은 보름 정도다. 이러니 제대로 된 심의가 이뤄질 수 없다.
제대로 된 심의가 될 수 없음은 국회도 알고 정부도 안다. 그래서 심의를 맡은 예결위원은 우선 자기 지역구 사업 챙기고, 국가 단위 사업은 적당히 생색낼 수 있는 몇 건의 감액과 증액에 만족한다. 행정부도 이에 호응해서 미리 감액할 만한 사업을 예산안에 넣어둔다. 글쎄, 정부와 국회 입장에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겠다. 하지만 국민은 아니다.
부실한 예산 심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년 이어진 유구한 전통이다. 그렇다면 이건 국회의원 자질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의 문제다. 예산 심의 기간에 국정감사 하기, 골고루 지역구 사업 챙기게끔 돌아가며 예결위원 맡기, 재정 규모와 방향은 못 건드리고 개별 사업 증감만 가능하게 설계하기 등등. 모두 예산 심의를 부실하게 하는 암초들이다. 얼마 전 야당은 이런 암초를 제거하고 제법 충실한 예산 심의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여당 시절에는 잠자코 있다가 야당이 되어서야 발의한 게 마땅치는 않지만 필요한 법안임은 분명하다. 행정학자로서, 아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꼭 통과되길 바란다. 그나저나 법안이 통과되어도 내년 이후 적용될 텐데, 이번 예산 심의는 어떻게 될까. 그래도 이번 정부 들어 첫 번째 예산 심의이니 다른 때보다는 좀 낫길 바랄 수 있을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더라도 맛있는 구이가 되어 우리 식탁에 올라오면 좋겠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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