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알면서도 못 고치는 '병폐'

채수환 2022. 9. 1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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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주택사업 인허가 때
합리적 심사·평가 선행돼야
특권과 몽니를 줄일 수 있어
구시대적 관행을 고치는 게
가장 필요한 행정개혁이다
2020년 11월 개통된 서울~문산 고속도로. 1세대 디벨로퍼로 불리는 김언식 DSD삼호 회장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속이 쓰리다. 15년 전인 2007년 경기 고양시 식사지구 택지 개발사업을 주도했는데 고속도로 개통이 지연되면서 1차 분양에 적잖은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국사봉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면서 고양시가 제동을 걸었던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식사지구는 현재 3차 분양까지 완료돼 1만가구 미니 신도시로 변신 중이다. 현지 주민들은 서울~문산 고속도로가 뒤늦게 개통한 이후 인접한 사리현IC를 통해 강북강변도로를 타고 서울 마포까지 15분이면 도달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신도시급 개발이나 재건축 도심 정비사업은 최소 5~10년 정도 시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개발 계획을 세우고 사업 인허가권을 획득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택지·주거 개발에 대한 인허가 획득뿐 아니라 도로, 학교, 환경 정비와 상업시설 등 주변 인프라 구축도 동시에 추진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 전권을 쥐고 있는 것이 바로 지자체장들이다.

인천에서 낙후 도심 개발사업을 추진 중인 한 건설사 임원은 "영호남이 솔직히 부럽다"고 필자에게 귀띔했다. 영호남 지역은 특정 정당 후보가 2~3번 계속 당선되기 때문에 사업 인허가 방향을 예측하기가 그만큼 쉽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인천이나 대전, 경기도처럼 지자체장들이 자주 바뀌는 지역은 선거 결과에 따라 홍역을 치른다. 새롭게 당선된 시장이나 군수가 "전임 단체장 때 내준 인허가는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발목을 잡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정부가 개발사업 논란에 당사자로 등장하는 경우도 자주 목격된다. '김포 장릉' 아파트의 경우 문화재청이 경관 보호를 앞세워 공사 중지를 시도했지만 법원은 건설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공릉, 선릉, 정릉도 건물로 가려져 있다"며 장릉 아파트만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적시했다. 국방부의 소송으로 한때 공사가 중단됐던 파주 운정신도시 아파트도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공사가 최근 재개됐다. 국방부는 아파트 단지 인근 황룡산에 대공 방공진지가 있어 군사작전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아파트 건설로 국방부가 손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국토 개발, 주택 건설에 보다 정확한 잣대로 사전에 영향 평가를 하겠다는 시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는 환경, 교통, 재난 등에 미치는 영향을 가상세계 디지털 기술로 시뮬레이션한 뒤 개발 심의를 자동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김포 장릉 아파트처럼 문화재 때문에 입주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지역에서도 혼란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981년 도입된 환경영향평가도 41년 만에 수술대에 오른다. 국토 개발사업을 할 때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로 이 제도가 도입됐는데 앞으로는 꼭 필요한 사업에만 사전검토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도들이 맞물리면 과거보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국토 개발이 추진되고 불필요한 갈등도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부동산 난개발과 국토·문화재 훼손을 찬성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정부나 환경단체, 지자체장의 비대한 인허가권에 따라 국가 경쟁력에 꼭 필요한 인프라 개발이나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주택 공급까지 흔들리고 춤을 춰서는 안 된다. '관행'에는 오랜 기간 정착된 바람직한 것도 있지만, 문제점을 알면서도 못 고치는 병폐도 분명히 존재한다. 행정 개혁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런 관행들을 하나씩 고쳐가는 것이다.

[채수환 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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