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법과 질서의 나라, 독일을 돌아보다

2022. 9. 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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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법규 목숨 걸고 지키고
포크 하나 흐트러진 꼴 못봐
그런 완벽주의는 아니더라도
한국인의 매력·역동성 살릴
법·제도는 무엇일지 고민을
지난 7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을 업무차 방문하는 기회에 바이마르, 비텐베르크 같은 소도시들도 돌아보았습니다. 준법의식과 검박한 국민성을 바탕으로 세계 4위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이기도 합니다. 1960년대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피땀 어린 노동을 제공하고 3000만불 차관을 빌려온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인 독일법을 받아들였기에 법률가들은 독일을 가깝게 생각합니다.

독일은 준법의 나라입니다.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에 교통법규는 꼭 지킵니다. 교외의 작은 호텔 앞에 잠시 차를 세웠는데, 지나가던 중년 남녀가 다가와 차를 치우라고 얘기합니다. 신고하면 고액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집 앞 잔디는 잘 관리해야 하지만, 일요일이나 야간에 잔디를 깎으면 바로 항의를 받습니다. 로마시대 역사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라는 책에서도 게르만인들은 악덕을 보고 웃어넘기는 사람이 없고 그들만의 규율을 철저히 지킨다고 소개합니다.

호텔이나 식당도 깨끗합니다. 작은 식당의 화장실도 호텔 못지않습니다. 베를린 교외에서 한식당을 30년간 운영한 주인 부부는 '주방과 화장실만 깨끗하면 성공한다'는 얘기를 듣고 청결을 생명처럼 지켰답니다. 호텔 뷔페식당에서 음식을 더는 포크와 숟가락이 삐뚤어져 있자 바로 종업원이 반듯하게 놓습니다. 완벽주의가 몸에 뱄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양(量)에서 질(質)을 추구하는 신경영 선포 장소로 프랑크푸르트를 선택한 이유가 느껴집니다.

오랜 교회와 왕궁도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비하면 소박합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대관식이 열렸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도 장식물이 검박합니다.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만든 프리드리히 대왕의 묘는 석판 하나만 있습니다. 상수시 궁전 한편의 작은 묘석 위에는 꽃 대신 감자가 놓여 있습니다. 구황작물 감자를 보급해 대기근에서 국민을 구해낸 국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랍니다. 정치인과 공직자에 대한 신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30년 한식당의 주인은 독일 공무원을 극찬합니다. 어떤 나라 공무원들은 현장 점검을 나와 돈을 챙겨가지만, 독일 공무원은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쓴다고 합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높은 세금도 수긍하게 하고, 국가는 대학까지 무상으로 책임집니다. 거리에선 아기를 안은 임산부들을 자주 봅니다.

바이마르, 비텐베르크같이 10만 미만의 소도시들도 깔끔하고 문화의 향취가 가득합니다. 바이마르 헌법으로 유명한 바이마르는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비텐베르크에는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성교회와 루터하우스가 그대로 있습니다. 바이마르에는 괴테와 실러가 활약했던 국립극장이 지금도 운영되고, 곳곳에 괴테의 시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독일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입니다. 베를린자유대학의 한국학과 학생들은 한국어를 잘 구사합니다. 졸업하면 취직도 보장되어 졸업 전 취직하려는 제자를 만류하는 것도 일이라 합니다. 한 대학원생의 박사 논문 주제는 '대한민국 부패에 관한 연구'입니다. 대한민국 공수처에 관한 소논문도 작성했답니다. 귀국 후 한국학과 학생 15명이 우리나라를 찾아 공주 지역을 답사하고 템플스테이도 체험했습니다.

독일을 짧게나마 돌아보니 배우고 싶은 점이 많지만,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에 쉽지만은 않습니다. 매사에 계획을 세워 신중히 실천하는 장점이, 변혁기에는 뒤처지는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기업인과 문화예술인들은 세계를 향해 경쟁합니다. 한국인의 매력과 역동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맞는 법과 제도를 과감히 모색하고 도전할 때입니다.

[봉욱 전 대검 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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