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방 후 尹-李 영수회담?..다자회담도 '글쎄'
예상 의제 '민생 위기' '코로나19 대응' '외교 안보' 등 꼽혀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다섯 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안한 횟수다. 민생 우선을 강조하는 제1야당 존재감을 보여 정국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영수회담 대신 다자회담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는 가운데, 민주당 내애선 '대선 후 첫 상견례' 성격이 커 회담으로 여야 대치 국면 전환에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취임 직후부터 영수회담을 강조해 왔다. 영수회담은 국가나 정치 단체의 수장 간 회담을 뜻하는데, 통상적으로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만남을 의미한다.
취임 첫날인 지난달 29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이 대표는 "다시 한번 영수회담을 요청한다"고 했고, 다음날 이진복 수석의 예방 자리에서도 "가능한 빨리 영수회담을 요청한다"고 거듭 언급했다. 달을 넘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지난 8일에도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지금 정치는 위기에 빠진 국민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께 다시 요청드린다"며 영수회담을 거듭 언급했다. 지난 13일 민생경제위기 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도 이 대표는 "다시 한번 이 자리를 통해 윤 대통령에게 여야·정파를 떠나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로 논의할 수 있는 영수회담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오는 18일부터 24일까지 5박7일 일정으로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에 나선다. 때문에 순방 이후 회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와의 일대일 회담은 사실상 거부하고, 국민의힘과 정의당을 포함한 '다자회담' 추진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정의당도 정리가 되면 방식은 어떻게 되든 간에 그때쯤 되면 한번 논의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대통령은 영수회담 '용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구시대에 쓰던 얘기를 계속 쓰지 않겠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드렸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이 대표가 '민생 우선 야당'의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해 윤 정부와 대화에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이 민생을 주요 의제로 선점해 정기국회를 비롯한 국정 운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현재 민생과 관련해 산적한 문제들이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야 그리고 정부가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강조하며 "지난 대선 기간 'GTX 노선 연장' '기초연금 인상' 등 여야 간 공통된 공약들을 중심으로 민생 해결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초당적으로 대처해나가자는 취지"라며 이 대표가 거듭 영수회담을 요청한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상황을 볼 때 영수회담 대신 여야 대표들이 함께하는 다자 회담에 무게가 실린다. 이 대표도 '절차도 형식도 관계없이' 윤 대통령과의 회담을 요청한 만큼, 단독 만남이 아닌 다자 회담에도 응할 가능성이 있다. 중진 A 의원도 "과거 전례를 보면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마치고 보고 차원에서 전직 대통령이나 국가 원로들과 대담하고, 여야 대표들을 불러 환담하는 경우가 대개였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며 "사실 지금 (이 대표가 검찰에 기소된) 상황에서 (검찰 출신인) 윤 대통령은 이 대표를 '피고인'으로 생각할 사람 아닌가. 1대1 만남은 윤 대통령 외에 여당 지도부에서도 반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자회담의 경우, 단독 회담과 비교해 할 수 있는 대화가 비교적 제한적으로 자칫 '식사 회동'으로 그칠 수 있다. 여·야·정 협치의 물꼬를 트는 등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초선 B 의원은 "1대 다 회담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배석자들도 있고 하니 말이 다 새어나가게 될 것"이라며 "단독 대담이어야 비공개적인 이야기도 터놓고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중진 C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1대 1 회담 먼저 한 다음, 다자회담을 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라고 본다"며 "전쟁 중에도 대화를 하는 것이 정치인데, 대통령이 대화마저 피한다면 국민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나"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만남이 성사될 경우, 다자회담 테이블에 오를 예상 의제로는 '민생 위기 해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책' '외교 안보 문제' 등이 꼽힌다.
A 의원은 "회담이 진행된다면 무조건 '민생' 이야기가 먼저 나올 것이고, 다음으로는 코로나19 대책에 대해서 의논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예측했다.
C 의원은 "민생, 그리고 외교 안보 문제를 얘기하지 않겠나. 특히 윤 정권 이후 미국과의 외교가 ('펠로시 패싱' 등으로) 틀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북 문제에 대해서도 정파를 초월해 의논해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검찰 기소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냐는 예측도 나왔으나, 사안이 예민한 만큼 다자 회담에서 나올 의제는 아니라는 게 당내 중론이다.
한편 지난 정권에서 영수회담이 성사된 최근 사례는 2018년 4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의 단독 대담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문 대통령이 홍 대표에게 영수회담을 요청했고, 제1야당 대표와의 '독대'가 처음 이뤄졌다. 당시 두 사람이 대북 정책 방향을 놓고 이견만을 확인했을 뿐이라는 회의적인 평가와 단독 회담을 통해 긴밀한 대화가 이뤄졌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혼재했다.
many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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