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金 수리남 수영 영웅, 美대표팀 '최고 코치' 됐다

정지섭 기자 2022. 9. 1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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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유일 메달리스트 네스티

면적(16만3821㎢)은 한반도의 3분의 2, 인구(약 58만명)는 서울 강남구와 비슷한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이 최근 화제다. 이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국명까지 드라마 제목까지 끌어다 쓴 넷플릭스 드라마의 인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서울 올림픽 수리남 수영 남자 접영 대표팀 소속이었던 안토니 네스티 코치.

하지만 수리남은 지금부터 34년 전에도 한국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나라다. 1988년 9월 서울 올림픽 수영 남자 접영 100m결승에서 수리남 대표팀 소속 안토니 네스티(55)가 ‘우승 0순위’로 꼽히던 최강자 매트 비욘디(57·미국)를 0.1초 차로 꺾고 깜짝 금메달을 땄다. 이 경기는 지금까지도 세계 수영 역사상 최대의 이변으로 회자된다. 이름도 낯선 나라에서 온 무명 선수의 반란에 한국인들도 환호했다. 네스티는 4년 뒤 바르셀로나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도 동메달을 따 내 실력을 입증했다.

그가 따낸 두 개의 메달은 수리남이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의 전부다. 30여 년 전 선수로 물살을 누볐던 그가 최근 코치로 맹활약하면서 세계 스포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최근 미국수영코치협회에서 선정하는 ‘조지 헤인스 올해의 코치’로 선정됐다. 미국 수영을 세계 최정상으로 끌어올린 전설적 지도자 조지 헤인스(1924~2006)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이 상은 미국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의 기량을 크게 향상시킨 지도자에게 주어진다. 네스티는 발표 직후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얼굴과 상의 이름이 인쇄된 포스터를 내걸어 수상을 자축했다.

앞서 그는 지난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던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흑인 최초로 미국 남자팀 수석 코치를 맡았다. 유색인종 선수·코치를 쉽게 찾기 힘든 미국 수영계에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직접 지도했던 선수 네 명이 금메달 8개를 합작하면서 미국의 종합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0대 시절 미 플로리다에서 유학하며 수영선수로 기량을 키웠던 그는 이 인연으로 은퇴 뒤 고국 대표팀을 거쳐 플로리다대학교 수영팀을 맡아 정상급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스티는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가진 인터뷰에서 34년 전 서울 올림픽 금메달을 따던 시절을 회상했다. 고국 수리남은 한국 넷플릭스 드라마처럼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나라였다. 그는 “(서울 올림픽 당시) 수리남은 제3세계 국가들이 으레 그렇듯 정치 불안과 인플레이션 문제로 고생하고 있었다”며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밝은 태도로 무엇인가에 열망한 것은 그때(금메달 획득)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3초의 시간 끝에 나는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며 “그 순간 사람들은 고국을 자랑스러워했고,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며,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라는 게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메달을 달고 금의환향하던 순간도 추억하면서 “공항에 도착해서 환영식이 열리는 축구 경기장으로 이동했는데 눈에 보이는 곳마다 인산인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주일 전만 해도 귀국해서 다시 연습에 돌입할 생각만 했었는데, 나의 경기 결과로 나라 분위기가 이렇게 확 바뀌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도 말했다.

그는 도쿄 올림픽 3관왕 카엘렙 드레셀(26) 등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을 조련하는 것과 관련해 “모두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재능 있는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은 압박이 가중되는 일”이라며 부담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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