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쉭쉭" 소리나는 듯.. 거침없는 일필휘지의 풍경과 만나다
태풍 몰아치는 대지·하늘서 본 백록담 등
고향 제주의 환경, 마음에 담아 화폭으로
근작 회화 18점·온라인서 30점 선보여
"동·서양 미술, 전통과 현대 구분 넘어서
첫 번째 느낌 포착.. 그걸 공유하고 싶어"
강요배는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난 작가다. 서울대 회화과를 나와 1980년대 민중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에 합류해 사회참여적 작품을 했다. ‘제주민중항쟁사’ 연작이 대표적이다. 역사화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향으로 돌아간 뒤 제주 환경을 주로 화폭에 담아왔다. 그가 열번쯤 오른 한라산, 어느 날 하늘에 나타났다 사르르 사라져버린 구름, ‘장미’와 ‘바비’, 장난 같은 이름을 한 태풍이 무섭게 몰아치며 한 순간도 같지 않은 풍경을 포착해 그렸다.
평론가 이진명은 이번 전시 서문에서 강요배 회화에 담긴 것은 풍경이 아닌 의경(意景)이라 표현했다.
“작자의 주관적인 사상과 감정이 객관적 사물이나 대상을 만나 융합하며 생성되는 의미 또는 형상. 강요배의 회화의 세계는 의경의 세계다.”
학고재 측은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동양적 자연관이 깔려있고, 자신의 감정을 풍경에 투영한다”며 “서양 인상파 화풍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화면으로 나아가나, 기저에는 동양적 사고가 깔려 동·서양 구분 자체를 무효화한다”고 설명한다.
한국 현대 미술사는 모더니스트 추상화가들과 리얼리스트 민중미술가들이 논쟁하며 써 왔다. 강요배는 그 한복판에 있었다.
무슨 재료로 그리는지 물으면 아크릴물감이라는 대답 대신 “물로 그린다” 답하고, 자신의 그림이 구상화냐 추상화냐 물으면 “추상화(化)돼 가고 있다”고 도인 같은 답을 내놓는다. 100만년 전 용암이 솟구쳐 만들어진 섬에서 바람을 맞으며 사는 그와 기름진 문명의 오염이 어울리지 않기에, 그의 선문답 같은 대답에 연신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얼굴은 말할 때마다 총기 어린 청년의 눈빛과 인자한 어르신의 웃음 짓는 표정을 마치 제주 날씨처럼 변화무쌍하게 오간다. 그림은 작가 얼굴을 닮는다.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칠정을 그림에 담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기쁨에서 출발했는데 잠깐 여유를 갖고 가만히 보다보면 눈물도 나오고 분노도 치솟게 하고. 그것이 계속 일어나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런 그림이 진짜 그림이에요.”
그가 산문집에서 한 말은 그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 데 큰 힌트를 준다.
“만일 미술이라는 것이 막대한 금력의 기반 위에만 구축되는 거대한 건조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그 기반이 무너질 때 하루아침에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일 미술이 사람들의 마음밭에 뿌리내려 자라는 나무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쉽사리 죽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9월30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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