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칼럼] 말의 맛

한겨레 2022. 9. 15. 19: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병익 칼럼]말과 글은 모두에게 두루 수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그 발언자나 필자의 개성을 멋있게 살리는 개별성을 독촉한다. 여기에 방언이나 토속어, 외래어와 시대어의 효과가 스며든다. 한물간 말이나 어투도 그립고 새 말, 고친 말도 당겨온다.

김병익 | 문학평론가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중 질문에 내가 대답 중에 쓴 ‘사뭇’이 사투리이니 앞으로 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어른이 되고서도 꽤 지난 후 사전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생각나 찾아보았다. 지금도 내게 유일한 낱말사전이 되고 있는 <동아 마스타 국어사전>(초판 1979년)에 이 ‘사뭇’은 “거리낌 없이, 마구, 마음대로”란 풀이로 적혀 있고 사투리라든가 속어라는 제한사는 없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마구 쓰던 ‘사뭇’은 아이말일 수 있을지언정 결코 쓰기를 피해야 할 어휘는 아니었다.

내가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던 오래전 이야기를 근래 다시 떠올린 것은 유종호 선생의 <사라지는 말들>이란 책을 다감한 심정으로 읽으면서이다. 문학평론가이며 영문학자인 저자는 우리의 묵은 말들, 옛말들을 다시 떠올려 그 말의 뜻과 변화, 혹은 사라진 말들과 새로 태어난 말들을 부담 없이 쉬 읽히는 단상으로 쓴 그 책에 ‘말의 사회사’란 부제를 붙였다. 정말 우리가 생각 없이 쓰는 숱한 낱말들을 새삼 그 쓰임새며 움직임의 기록들로 다시 살펴보니 우리의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말 그대로의 우리 사회사가 거기 담겨 있었다. 가령 우리 어렸을 때 으레 쓰던 두레박이며 바가지, 문풍지, 바지랑대 같은 가정살이들을 요즘의 어린이들이 무얼 가리키는지 알 수 있을까. 당시의 생활필수품들이 이제 사라져 볼 수 없으니 그게 어떤 것들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짐작도 하기 어려울 듯하다. 지금 주방이라는 것도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널리 퍼진 것이어서 방언으로 찍힌 내 어릴 때의 ‘정지’는 물론 표준어로 적힌 ‘부엌’도 아파트 아이들은 모를 것 같다.

하긴 ‘아파트’란 말은 내 30대에도 쓰긴 했고 실재하기도 했지만 서양의 무슨 풍물처럼 낯선 것이었다. ‘주판’ ‘성냥’은 없어지고 ‘활동사진’ ‘등목’은 ‘영화’ ‘샤워’로 바뀌고 ‘컴퓨터’가 필수어로 새로 생겼으며 ‘숭늉’이며 ‘누룽지’는 커피와 디저트로 옮겨갔다. 유종호 선생과 나는 같은 1930년대 출생이고 충청도에서 자랐기에 그가 든 말들을 거의 알아듣긴 했지만 그래도 모르거나 낯선 말들이 적지 않았다. 그가 나보다 몇해 먼저 태어나 충청의 북도 면소재지에서 성장했고 나는 남도의 지방도시에 산 탓이 있으리라. 그 작은 다름이 말씨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그 시간적·환경적 차이에 관련 없이 내가 부끄러운 것은 서너해 일본어를 교육받은 그분은 우리 국어사전 몇가지와 일어사전·영어사전을 부지런히 찾고 비교하고 따지는 데 비해 나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소리와 뜻, 섬세한 음영과 폭넓은 연상대, 그 나름의 역사적 함의”를 가진 우리 낱말과 구절을 구체적으로 되살리는 그의 이 책은 그래서 내 생각을 키운 시대와 사회를 회상으로 안겨주며 알게 모르게 우리 삶과 그 양상, 그에 따른 우리말의 의외로 깊고 은근한 변화를 실감케 했다.

유 선생의 국어에 대한 실증적 애정에 자극받아 내가 찾아 구한 것이 위평량의 <팔도 말모이>였다. 저자는 방언 연구로 학위를 받은 현장 교육자로, 많이 쓰는 일상어 72개의 우리말 사투리를 찾아 그 어형을 비교하고 그 변모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했다. 내가 여기서 신기해한 것은 가령 ‘감기’란 말의 자유로운 변모였다. 그게 ‘고뿔’이란 옛말로 적힌 것은 자주 보았지만, 함경도에서는 ‘승감’, 호남에서는 ‘개조뿌리’, 강원도에서는 ‘순증’이라는, 전혀 의외의 말로 표현되었다. 그 엉뚱한 사투리 변화는 때로 그 대상에 대한 반감이나 증오감의 표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투리는 ‘방언’이란 말 그대로 지역에 따라 그 상대에 대한 감정의 표현으로 변하게도 될 터였다. 그렇다면 그 말은 그 지역의 독특한 생활 감정의 표현일 것이고 표준어는 그 다양한 감정과 반응들을 하나로 묶어 조인 것이리라. ‘서울의 중산층’ 말을 표준으로 한다는 그 말이 우리에게 단조롭고 무감하게 들려오는 것은 그 지역의 토착성을 지운 탓이고 그래서 현장의 생동감을 잃어버린 때문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묘사에 실감을 주기 위해 지역 방언을 실감나게 쓰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안수길의 함경도, 황순원의 평안도, 오유권의 전라도, 하근찬의 경상도 말들, 여기에 염상섭의 서울 토박이 사투리는 작품의 현장감을 살리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래서 문학의 창작만이 방언의 사용을 승인하고 있으리라. 표준어는 서구에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읽기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립되기 시작했는데, 우리의 경우 1930년대 초 식민지 시대의 한글 학자와 운동가들이 국어운동을 전개하면서 먼저 표준어 사정을 시작했다. 다만 소설과 시의 문학작품에서만은 토착 정서를 살리기 위해 대화에서 자유로운 사투리 사용을 당연히 여겼다. 그 사투리들은 지역적·시대적 풍물만 아니라 박경리의 <토지>에서처럼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사회적 신분, 성격, 풍모를 짐작하게 한다. 근래의 우리 젊은 저자들은 사투리의 지역적 토착성보다는 시대적으로 유행하는 외래어로 더 생동감에 젖은 분위기 묘사의 효과를 얻는 듯한데, 이 같은 말의 변화는 우리 일상이 외국 문화와 시대 풍조에 열려 있어 말이 스스로 폭을 넓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들은 러시아 고려인들의 우리말은 가장 오랜 한국어였는데 1930년대 강제이주 이후 모국어의 변화에 거의 영향받지 않아온 우리의 토착 전통어였다. 환경과 시대만이 아니라 정치체제 때문에 말이 변하기도 한다는 것은 다정한 ‘동무’가 분단 후 사라지고 어른스러운 ‘친구’로 바뀐 데서도 볼 수 있다.

말과 글은 모두에게 두루 수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그 발언자나 필자의 개성을 멋있게 살리는 개별성을 독촉한다. 여기에 방언이나 토속어, 외래어와 시대어의 효과가 스며든다. 한물간 말이나 어투도 그립고 새 말, 고친 말도 당겨온다. 두 세대 전의 어투와 단어를 유종호와 위평량의 책을 통해 보면서 그동안 우리말이 얼마나 변했는지, 사라지고 새로 생겨났는지, 말의 맛이 또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했다. 말이 또 다른 하나의 생명체임을, 태어나고 사라지고 바뀌는 그 생성과 변화가 곧 우리 삶의 구체적인 역사와 더분 것임을 깨닫는다. 말들이 그런 것이라면 그 삶의 풍요를 위해 사투리나 옛말, 바뀐 말도 활발하게 써먹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 말들의 삶을 사전과 기록으로 충실하게 정리해두는 것 또한 우리 삶-살이의 사료가 될 것도 분명하다. 말들에 스민 말의 역사는 우리 삶의 가장 구체적인 체험기록이 되리라. 추석 명절을 치르며 새삼 구미가 돋는 게 그 말맛이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