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탈이성애자의 고백

한겨레 2022. 9. 1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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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2020년 6월15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연 ‘한국교회 파괴 공작 중지 촉구 기자회견’ 모습. 동성애·동성혼 반대 국민연합 누리집 갈무리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내가 레즈비언인가?’라는 질문을 처음 던진 날이 있었다. 스물다섯살 때였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이젠 결혼해야지”라며 얼른 남자친구를 데려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당연한 듯 말해서 내겐 이상했다. 살면서 남자에게 사랑받길 원한 적이, 연애를 꿈꾼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남자를 싫어하거나 굳이 피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뿐이었다. ‘동성애’라는 단어는 알았지만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는 ‘동성’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특별한 한 사람을 사랑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완벽했고 진실했다. 하지만 아팠다. 나의 사랑은 오해받고 모욕당하기 쉬워서. 변태라거나 정신병으로.

내 사랑의 설명법을 모른 채 결혼 적령기가 되었다. 다들 결혼이란 조건을 맞춰서 하는 것이라 했다. 살다 보면 정든다며 연애 과정은 생략 가능하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남자에게 끌릴 거라고도 했다. 이런 설명들은 내게 의문만 남겼다. 혹시 나는 이성애자가 아닌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토록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은 걸까. 아주 어릴 때부터, 최소한 여섯살 무렵의 기억부터 헤집어도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이들의 성별은 일관되게 단 하나였다. 이성이 아니었다. 남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운명처럼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될 가능성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그러리라 다짐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논리에 맞지 않았다. 나는 미래에 만날 내 연인의 이름도, 생김새도 모른다. 어디서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운명적 만남만 기다린다. 그런데 그 사람의 ‘성별’만 미리 결정해 놓으라고? 이전에도 ‘동성을 좋아해야지’라고 성별을 정한 건 아니었는데.

다행히 고민의 출구를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삶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이성을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과감히 열어놓았다면, 동성을 사랑하게 될 가능성 역시 열려 있어야 한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느니, 결혼 못하면 불행해진다느니 하는 세간의 말들에서 자유로워지자 결심했다. 남들처럼, 남들 사는 대로 살라고 하니 그렇게 하자. 이성 간 사랑을 자연스럽게 하는 남들처럼 나도 나에게 자연스러운 사랑을 자연스럽게 하면 되지 않을까. 행여 사람들이 이런 나를 동성애자라고 부른다 해도 피하지 않기로 했다. 스물다섯 이전의 사랑이 아팠던 건 잘못된 사랑이어서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고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이런 깨달음으로 조금은 용감해질 수 있었다. 이성 간 연애와 결혼에만 특화된 사회라고 해도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야만 하는 건 아닐 터. 나는 ‘탈이성애’ 하기로 했다. 이성애가 나쁜 것이어서가 아니다. 나에게 좀 더 맞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일 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50대가 되었다. 그때의 결정에 후회 없이 잘 살고 있다. 그래서 작금의 ‘탈동성애 운동’이 우려스럽다. 여기선 동성애자의 진정한 인권은 나쁜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로 전환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의학적 접근 같지만 오로지 성령의 힘으로만 치료 가능하다고 하니 특정 종교 내의 문제다. 게다가 이미 미국에서 1976년부터 탈동성애 사역을 했던 단체가 2013년에 그동안 탈동성애 성공 사례가 거의 없으며 인권침해만 했을 뿐이라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자진해산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탈동성애 운동은 활발하다. ‘동성애 반대’를 외치면 개신교가 소수자를 배척하는 부정적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강해질 수 있으므로 전략적으로도 동성애자가 죄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는 의미의 ‘탈동성애’를 쓰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편견과 탈혐오 없이 누가 누구를 도울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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