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칼럼] 역사교과서는 투명한 과정으로 편찬해야

2022. 9. 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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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석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前노동부 차관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이 좌편향되어 개정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종전 교과서에 기술돼 있던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6·25전쟁이 '남침'으로 야기되었다는 사실을 일부러 삭제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는 작년 12월 문재인 정부의 교육과정 개편에서 비롯되었는데 좌편향된 특정 교수가 단독으로 응찰해 용역을 맡아 진행했다고 한다. 해당 교수는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든 영웅"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2015년 우리 사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둘러싸고 큰 홍역을 치룬 바 있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초중고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며 충분한 논의를 거쳐 지혜가 결집된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국민교육의 핵심과제일 것이다. 2015년의 국정화는 성급하게 추진되어 문제를 자초한 측면이 있는데, '다양성' 명분 하에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역사관을 접할 수 있도록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해야 한다는 진영논리에 휩쓸리며 논란이 되었다. 왜 역사교과서가 진영싸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이에 비해 2000년 가까이 나라 없이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의 민족정체성을 간직해 온 유대인의 경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음악, 영화 등 다방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구약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부모의 중요한 의무로 여기는데 이 성경이 '민족교과서'로서의 역할을 한다. 구약성경은 모세5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전 18세기부터 시작하여 유대 민족의 장구한 역사가 그들의 시각에서 상술되어 있는 역사서, 문학적 표현이 풍부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를 문학작품처럼 재미있게 읽고 배우면서 자신들의 역사와 민족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될 뿐아니라 풍부한 문학적 표현력과 상상력도 익히게 된다.

우리에게는 그런 역사책이 있는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70년대까지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25권으로 구성된 '한국사'를 편찬했다. 2002년에는 한국사학계의 역량을 결집하여 이를 대폭 보완해 '신편한국사'를 편찬했는데 '대한민국의 성립'까지 총 53권이나 되는 방대한 저작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완성한 대작이지만 너무 방대하여 일반 국민이나 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은 아니므로, 그 핵심 내용만 압축한 '국민역사 교과서'를 만들면 좋겠다.

한국 근현대사 영역에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부분이 있는데 다수설을 외면하고 소수의견을 가진 몇몇 저자에게 편찬을 맡기면 편향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1949년에 설립되어 자료와 경험이 축적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편찬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라 생각한다. 한국사 교과서 편찬에는 투명하게 공개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한쪽으로 편향된 저자들만이 참여하고 이를 심사하고 감독할 기구까지 편향된 진영논리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시각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투명한 과정이 논란을 없애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첫째, 쟁점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통해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TV를 통해 공개된 토론의 장에서 자기 주장과 그 근거를 밝히고 반대 의견을 경청하며 질문에 답하고 토론해야 한다. 이 과정을 생생하게 중계하고 국민과 다른 전문가들이 지켜보며 어떤 의견이 더 설득력 있는지 판단하게 하자.둘째,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공개토론회를 며칠씩 계속해야 한다. 먼저 제기된 논쟁을 지켜보며 잘못된 주장을 반박할 증거를 보완하고 논리를 정립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토론자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참여해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편향된 주장, 편향된 논리는 폐쇄된 논의에서 비롯된다. 자기들만의 편향된 논리를 가진 사람들끼리 밀실에서 논의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다수가 공감할 수 없는 역사책이 만들어진다. 정립된 학설을 토대로 편찬된 교과서를 수정하려면 수정해야 할 논리와 근거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쟁점 이슈에 대한 논란을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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