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공간이자 미적 영감 주는 건축물..별장은 영혼의 안식처

김보라 2022. 9. 1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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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한국 유럽 별장의 역사
고대 이탈리아 때
자연과 어우러진 전시공간서 출발
르네상스 거치며 서유럽 등에 퍼져
유럽 소도시에는 귀족별장 남아있어
슬로베니아 블레드·헝가리 왕족 집 등
韓 첫 별장형 주택은..인천 세창양행 사택
산이 많은 서울에도 대원군 별장 등 많아
소나무숲 사이에서 온천수를 즐길 수 있는 별장단지 설해수림.

매일 사는 집과는 뭔가 다르지만 그러면서도 집처럼 편안한 곳. 두 번째 집으로 불리는 별장이다. 별장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고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별장은 ‘도시에서 떨어져 자연 속에 지어진 집’을 뜻했다. 말을 타고 몇 시간 달려야 도착하는 깊은 산속이나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점점 도시 가까운 지역으로 옮겨왔다. 르네상스 이후 별장은 서유럽 전역과 세계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원칙이 있으니, 바로 ‘영혼이 온전히 쉴 수 있도록 자연 속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유럽 귀족들의 여름 별장

슬로베니아 블레드에 위치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족 별장들.

별장은 나무로 뚝딱 지어내는 오두막,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리조트와는 다르다. 사색할 수 있어야 하고, 건축적으로 아름다워 미적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과도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회복력’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고대 이탈리아에선 자연환경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한 별장이 유행했다. 동식물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한 정원, 예술 작품이 가득 전시된 공간, 그 지역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웅장한 조망이 특징이었다. 로마 정원과 별장의 개념을 통합한 오각형 요새 구조도 있었고 건물 내부에 장식적인 요소로 치장한 바로크 양식도 유행했다.

유럽엔 아직도 많은 소도시에 귀족들의 별장이 남아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족은 슬로베니아 블레드에 여름 별장을 지었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도 1947년 이 지역에 자신의 집을 지었다. 호수와 알프스산맥이 맞닿아 있어 ‘줄리안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린다. 스위스 의사 아르놀트 리클리가 1855년 이곳에 요양소를 세우며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된 작지만 평온한 휴식처다.

포르투갈 신트라에는 페나성이 있다. 푸른 숲속에 노란색으로 지어져 시선을 압도한다. 독일 출신 페르난도 2세가 아내를 위해 지은 여름 궁전인데 유럽 최서단 호카곶 인근의 신트라 지역에 있어 영국 귀족들도 자주 찾던 곳이다.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신트라를 ‘위대한 에덴’이라 부르기도 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1995년)되기도 했다.

 한국의 첫 별장지이던 인천항

영국 귀족들이 자주 찾던 포르투갈 페나성.

우리나라에도 별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조선시대엔 별서 별저 별제 등으로 불렸다. 서양식 별장이 생긴 건 근대에 들어서다. 전통 한옥에 살던 외국인들이 주택 용도의 저택을 사는 곳 근교에 지었다. 첫 별장형 주택은 인천 외국인 거류지에 지어진 세창양행 사택이다. 개항 직후 응봉산 산마루에 들어섰다. 세창양행을 개설하러 온 청년들의 거주 용도였는데, 소박하지만 중후한 매력을 지닌 건물로 이후 별장으로 쓰였다. 나무가 우거진 정원과 옥상의 전망대가 특징이다.

인천 숭의동 우각현엔 알렌 별장이 있었다. 하나의 모퉁이에 원통 모양 탑이 쌓아 올려져 있는데 푸른 잔디가 넓게 깔려 있는 집이었다. 북적이던 인천항에서 조금 떨어져 한적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인천 항구의 또 다른 별장으로 영국인 제임스 존스턴의 인천각이 있다. 1905년 신축돼 인천항의 랜드마크였다. 빨간 기와로 마감한 다각형 지붕에 굴곡진 하얀 벽면 등이 건축적인 아름다움을 더한다. 우물에서 옥상의 커다란 탱크로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있었고, 거실과 식당 등은 목조 조각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어 유명했다고.

 한옥과 만난 서울 속 별장들

한국 땅의 외국인들이 산과 언덕, 산기슭을 선호했다면 한국인들은 집 근처에 정자, 서원 등의 개념으로 외부에서 눈에 잘 안 띄는 한적한 곳을 별장으로 택했다. 부 과시용이라기보단 ‘나를 돌아보는 사색’에 더 집중했던 것이다. 서울은 산이 많아 별장을 지을 수 있는 여건이 뛰어난 도시였다. 인왕산 인근 창의문에서 홍지문으로 이어지는 생태문화길 주변에 별장이 많았다. 창의문 고개 너머 왼쪽 언덕엔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12호인 반계 윤웅렬 별장이 있다. 2층 벽돌조 건물과 한옥이 함께있다. 홍지동 계곡에 있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호 ‘대원군 별장’의 석파정 별당 역시 전벽돌로 쌓은 측면의 박공벽, 원형과 반원형 창, 난간 등이 수려하다.

홍지동 이광수 별장터(서울시 등록문화재 제87호)는 목조와 벽돌조가 혼합된 기와집이다. 전망 좋은 경사지에 앞쪽은 2층으로, 뒤는 1층으로 ㄷ자형 건축이다. 성북동 서쪽 골짜기 주변으로도 이종석 별장과 심우장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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