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땅 7정맥 ③호서정맥ㅣ구간종주 르포] 비밀의 문을 지나 아홉 딸이 죽은 산으로

신준범 기자 2022. 9. 1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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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고개~상당산성~이티재~구녀산~분젓치 15km

비밀의 문으로 들어간다. 상당산성에는 두 곳의 비밀 문이 있는데 이를 암문(暗門)이라 한다. 양덕부는 이곳이 정맥인줄 알았을까? 호서정맥 주능선과 산성이 만나는 지점에 남암문이 있다. 비밀의 문답게 동굴처럼 살짝 허리를 숙여야 지날 수 있다. 문은 1720년, 숙종 46년에 만들어졌다. 상당산성 1차 개축(1716〜1719) 이후에 만든 것이다.

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암문 내벽에 '강희경자오월(康熙庚子五月)'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문구에는 공사 책임자 이름도 있다. '양덕부 패장 한량(梁德溥 牌將 閑良)'이 그것이다. 즉 패장으로 있던 양덕부가 암문을 축조한 공사책임자였던 것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공사 실명제를 했던 셈이다.

상당산성 남암문 위에서 본 청주시내와 우암산.
산성고개의 출렁다리.

양덕부는 조선시대 최대 반란 사건인 이인좌의 난과 관련된 인물이다. 그는 이인좌의 난 당시 청주읍성의 성문을 열어 준 장본인이다. <영조실록>을 보면 '병사 이봉상이 관기인 월례와 함께 있는데 믿는 신하 비장 양덕부가 문을 열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청주읍성을 지키던 병마절도사 이봉상은 이순신 장군의 5대손이었으나 양덕부의 배신으로 이인좌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인좌는 이봉상의 비장 홍림과 남연을 죽이고, 스스로 대원수라 칭했다. 이후 '경종의 원수를 갚는다'고 선포하며 반군을 이끌고 서울로 북상했다. 조선 최대의 반란이 청주에서 시작되었고, 그 문을 연 이가 양덕부다. 암문을 만든 공보다 반란군에게 성문을 열어 준 허물이 더 큰 이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출렁다리에서 상당산성으로 이어진 편안한 숲길.

깔끔하고 아름다운 상당산성

378km의 호서정맥에는 숱한 산이 있지만 등산인들에게 소개할 만한 대중적인 명산은 드물다. 산경표의 금북정맥이었다면 고민 없이 서산 가야산을 택하겠지만 신산경표의 줄기에는 확연히 눈에 띄는 잘난 산이 없다. 상당산을 택한 건 경치도 좋지만 역사적인 의미도 깊기 때문이다.

김웅식(청주 레저토피아 대표)·김정자(58·산행환경문화원 이사), 청주 토박이 산꾼 두 명과 함께 산에 든다. 김정자씨는 2000년부터 등산을 시작해 히말라야 임자체(6,189m)를 오른 만만찮은 실력의 여성 산꾼이다. 김웅식씨와 함께 레저토피아 탐사단으로 활동하며 대청호 둘레길 등 지역의 걷기길과 산행코스를 여럿 개척했다. 지난해부터는 탐사단 멤버들을 주축으로 올바른 산행문화 선도를 위해 사단법인 산행환경문화원을 창립, 청주의 바른 산행문화 정착을 위해 힘쓰고 있다.

차도가 있는 산성고개에서 공짜로 정맥 능선에 올라선다. 힘 안 들이고 능선에 붙었다는 얘기다. 고개의 출렁다리가 놀이기구 같다. 재미는 있지만 다니는 사람도 적은 곳에 1억 원이 넘는 국비를 들여 만들 정도로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다리를 지나면 눈에 확 띄는 '한남금북정맥' 안내판이 있다. 산줄기 이름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이게 옳다고 해도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름이 세월이 지나면 살아남기 마련이다. 차령산맥이 아닌, 호서정맥이고 금북정맥이고 한남금북정맥임을 이해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호서정맥은 상당산성 남암문에서 동암문까지 산성을 따라 이어진다.
전반적으로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길찾기는 수월한 편이다.

산행이라기보다 산책에 가까운 편한 숲길이다. 훅 덮쳐오는 풀 냄새며 나무 향기, 익숙한 행복감이 뇌와 근육을 타고 번진다. 슈퍼맨이 제 옷으로 갈아입고서야 파워를 발휘하듯, 도시의 소시민에서 야생의 산꾼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순둥이 오르막을 기분 좋게 올라서자 파란 하늘과 반듯한 성벽이 정맥꾼을 맞는다. 성 앞에는 수북이 개망초가 피어 묘한 설렘을 유발한다. 문득 나타난 새로운 풍경은 예쁘게 포장한 선물 같다.

비밀의 문으로 입성한다. 포장지를 뜯어 선물을 확인하듯 성 위에서 청주의 너른 풍경을 즐긴다. 상당산에서 뻗은 초록의 세력은 우암산을 통해 청주를 제대로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운동화를 신고 산보 나온 시민들로 시끌벅적하다. 시민들의 행렬에 우리도 묻혀 동네사람인 척 정맥길을 잇는다.

산성을 따라 걷는 길이 달다. 성벽 위라 경치가 시원하고, 푹신한 흙길은 넓고 편안하다. 산성은 풍성한 숲과 잘 어울린다. 촘촘히 쌓은 성벽은 성 본연의 임무를 잊고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인간이 만든 것이 이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호서정맥은 알려 준다. 구불구불 달콤한 산성 길을 두발로 야금야금 삼킨다.

시선을 사로잡는 번듯한 성문은 서문이다. 미호문(虎門)이라고도 하는데, 지형이 활의 시위를 묶는 곳 같다고 해서 '활고자 미'를 썼다. 호랑이가 활을 당긴다는 성문이다. 미호문을 지나자 사람이 줄어들며 한적한 맛이 난다. 김웅식씨가 알려 주지 않았으면 무심코 지났을 듯한 상당산 정상이다. 그냥 지나쳐도 괜찮은 곳이다. 나무에 둘러싸여 조망은 없고 작은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다. 발굴 작업 중인지 파란 비닐로 정상 대부분을 덮어둬 어수선하다.

호서정맥은 성을 빠져나갈 때도 몰래 나간다. 두 번째 비밀의 문인 동암문으로 성을 벗어난다. 반지하로 내려서는 계단처럼 된 곳을 따르니 성 밖이다. 비밀의 문답게 눈에 잘 띄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간 정맥길을 놓치기 십상인 곳이다.

아홉 딸이 쌓은 성을 걷다

성 밖으로 나오자 야생의 산이다. 걸음은 여전히 편안하다. 호흡이 편안한 부드러운 능선인데다 헷갈릴 만한 곳엔 이정표가 있다. 빽빽한 숲엔 털보 같은 물박달나무가 곳곳에 서서 특유의 껍질을 맘껏 뽐내고 있다. 얕은 봉우리를 넘자 순간 시야가 탁 트인다. 간벌을 해놓아 초원이 된 것이다. 삼산목장이 있는 안둥뱅이마을을 지난다. 목장 건물에서 악취가 나도 걸음을 멈추는 것은 번개 맞은 느티나무다. 산신령마냥 고개를 지키고 선 거대한 모양새에서 예사롭지 않은 나무임을 알 수 있다. 나무의 뒷면은 번개를 맞아 속이 다 타서 비어 있다. 그럼에도 남은 줄기로 초록 잎을 틔우고 있다. 느긋해 보이는 앞모습과 달리 뒤엔 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흔적이 담겨 있다.

능선이 나뉘는 길찾기 모호한 곳마다 아크릴 안내판이 정맥길을 알려 준다. 지자체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상당산성의 식당인 상당집에서 세운 것이다. 김웅식씨는 "상당집 사장이 산을 무척 좋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설명한다. 풀숲에 묻힌 이티봉을 지나니 51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이티재다. 이티성영토 식당 마당의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무더위에 한껏 달아오른 머리에 물을 끼얹자 시원함에 온 몸이 짜릿하다. 김웅식씨와 연이 있던 사장님이 수고가 많다며 잠깐 동동주 맛이나 보라며 작은 상을 내온다. 한 사발 꿀꺽 삼키자 배낭도 생각도 다 내려놓은 채 풍류를 즐기고 싶지만, 구녀산이 남아 있다.

삼거리의 신령스런 느티나무. 번개에 맞아 속이 다 탔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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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을 따르는 정맥길은 호서정맥의 하이라이트 구간으로 꼽을 만큼 운치 있다.

신라시대 1남 9녀를 둔 미망인이 있었다. 이 남매들은 모두 장사였는데 항상 불화가 잦아 목숨 건 내기를 하게 되었다. 딸 아홉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고,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내기를 시작한 지 5일이 되던 날, 어머니가 상황을 보니 성은 거의 마무리 되어 가는데 아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이에 아들이 죽을 것을 염려한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죽을 펄펄 끓여 딸들에게 먹이며 천천히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뜨거운 팥죽을 식혀 먹는 동안 아들은 다리에 피범벅이 되어 돌아왔다. 내기에 진 아홉 딸은 성 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었다. 부질없는 불화로 아홉 누이를 잃은 동생은 그길로 집을 나가 돌아올 줄 몰랐다. 어머니도 남편의 무덤 앞에 아홉 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 숨을 거두었다. 이 때 죽은 아홉 딸과 부모의 묘는 성 안에 두 줄로 배열된 11기의 묘라고 전한다.

아홉 딸이 죽은 산은 차분하다.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며 더위를 식혀 준다. 잘생긴 소나무들이 늘어선 짙은 숲은 슬픔보다는 위로의 기운이 짙다. 푹신한 발디딤과 상큼한 솔내음이 몸과 마음의 힐링을 돕는다. 증평군에서 세운 벤치와 체육시설이 인적 없는 산 속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발 디딤 편한 흙길과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이 산행 내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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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이 있는 구녀산 정상.
분젓치의 좌구정. 현지 사람들은 '분티재'라고도 부른다.

구녀산성은 거의 허물어져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산성임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손질을 한 반듯한 바위가 아닌, 자연석을 포개어 올린 성이다. 지금은 성을 쌓던 아홉 딸의 거친 숨소리 대신 "뻐꾹!"하고 뻐꾸기 소리가 인사하듯 울린다. "툭 툭 투두둑"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좋은 노래처럼 감미롭다.

돌탑이 있는 정상을 지나자 능선 오른쪽으로 시야가 뻥 트인다. 대대적으로 간벌을 해 초원이 되었다. 산행이 끝나는 분젓치에 닿자 달걀프라이 같은 개망초가 무더기로 피어 하이파이브하자며 손을 내민다. 살랑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만지고 빗방울이 피부에 닿는다. 산을 먼저 내려온 일행의 웃음소리가 저만치서 들린다.

산행 내내 짙은 숲이 이어져 한여름에도 그늘 속에서 산행이 가능하다.
김웅식(청주 레저토피아 대표)

미니 인터뷰

"잘못된 지리교과서를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종주했다"
김웅식(청주 레저토피아 대표)

산경표의 금북정맥을 최초로 완주한 이가 김웅식(50)씨다. 청주대 산악부OB인 그는 1994년 등산 전문지의 금북정맥 종주대장을 맡아 처음 이 산줄기를 종주했다. 한 달에 한 번씩 3박4일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구간종주를 했다. 개척산행이 대부분이었고 덤불에 긁히는 게 일상이었지만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과 종주하며 대원들 중에 결혼한 커플이 있었을 정도로 좋은 추억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생계도 생각하지 않고 미쳐서 정맥을 탔다"며 "일제에 의해 창씨 개명된 산줄기의 제 이름을 알리고, 잘못된 지리교과서를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금북정맥의 원조 종주대장인 것이다.

충북을 대표하는 산악인 중 한명인 그는 1989년 매킨리 등정을 시작으로 1991년 아콩카구아, 1994년 무르모르나야(6,400m), 1999년 킬리만자로, 2000년 에베레스트, 2001년 엘브루즈ㆍ시샤팡마, 2002년 캉첸중가ㆍ브로드피크, 2008년 헌터피크(5,360m) 등으로 이어지는 등정 기록을 세운 고산등반가다. 고교시절부터 품었던 원래 그의 꿈은 고산등반가가 아니라 그저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이었지만, 그는 꿈 이상의 것들을 해낸 셈이다.

에베레스트를 다녀왔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등산을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을 때 해줄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등산은 스포츠가 아닌데 그동안 내가 스포츠로 등산을 하지 않았나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이후 고산등반을 접고 청주 주변 산을 오르며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레저토피아는 종합 아웃도어 회사다. 1990년에 세워 1994년 멀티숍과 안내산악회로 운영해 오다 2007년부터 네파 사직점으로 바꾸었으며 안내산악회도 여행사로 바뀌었다. 탐사대를 조직해 지역의 여러 걷기 길을 개척해 지도를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소적응은 잘했지만 저소적응은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고산에서 내려 온 이후의 사회생활은 어려웠다고 한다. "에베레스트가 한풀이였다면, 금북정맥(호서정맥)은 산꾼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 말하는 호서정맥의 원조 대장 김웅식이다.

산행길잡이
거리는 길어도 산행은 수월한 순둥이 능선

산성고개 출렁다리~0.9km~상당산성 남암문~1km~서문~1.3km~동암문~6.7km~버드나무 삼거리~2km~이티재~1.3km~구녀산 정상~2.2km~좌구정(분젓치) <총 15km, 6시간 소요>

15km로 당일 산행치곤 거리가 길지만 산행은 수월한 편이다. 들머리인 산성고개와 날머리인 좌구정이 차량으로 접근이 편하고 능선의 오르내림이 비교적 크지 않기 때문이다. 순한 육산으로 이어져 위험한 구간은 없으며 이정표가 적재적소에 있어 길찾기도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방심하면 알바하기 좋은 길목도 곳곳에 있다. 들머리인 산성고개는 남문 입구의 로터리에서 구도로로 가야 한다. 산성옛길을 조성키 위한 차단기를 지나 왼쪽의 산길을 따라 가면 된다. 차단기에서 출렁다리까지 100m 거리다.

상당산성을 빠져나가는 동암문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반지하처럼 동암문이 오른쪽 성벽 아래에 있어 무심코 걷다간 지나칠 수 있다. '동문 0.6km'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상당산성자연휴양림 화살표를 따라가야 한다. 성문을 나간 후엔 바깥 성벽을 따라 온 길을 130m 되돌아가면 휴양림 화살표가 나온다. 여기서 800m를 가면 휴양림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한남금북정맥 이티재 구녀성' 화살표를 따라간다. 이티재에선 식당의 약수터를 끼고 돌아 능선에 오른다. 발디딤 편한 흙길이고 숲이 풍성해 한 여름에도 충분히 도전할만한 종주 코스다.

교통 들머리인 산성고개는 청주에서 접근해야 한다. 청주체육관 버스정류소에서 862번, 864번 버스를 타고 산성입구에서 하차해 구도로를 따라 500m 정도 걸으면 출렁다리에 닿는다. 날머리인 좌구정은 운행하는 버스가 없다. 증평 율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2km 정도 내려가 한다. 율리에서 증평역까지 가는 버스가 1일 9회 운행한다. 승용차 이용시 미원면 택시를 타고 차를 세워둔 산성고개로 돌아갈 경우 2만7,000원 정도 나온다. 문의 미원개인택시 043-297-1400.

숙식(지역번호 043) 상당산성 산성마을에 식당이 즐비하다. 상당산 부근의 정맥에 이정표를 세운 상당집(252-3291)이 청주에서도 유명한 손두부 요리 전문식당이다. 생두부(6,000원), 두부지짐(6,000원), 파전(6,000원), 청국장(6000원), 비지장(5000원) 등의 메뉴가 있으며 부담 없는 가격이라 평일에도 손님으로 붐빈다. 반찬은 셀프서비스 방식이며 무한리필 가능하다.

이티재의 대형 식당인 이티성영토.

산행 경로상의 이티성영토(296-0801)도 빼놓을 수 없는 맛집이다. 곤드레밥정식(1만2,000원)과 연잎밥정식(1만5,000원)이 유명하며 이밖에도 청국장, 닭볶음탕, 연잎오리탕, 참숯훈제바베큐정식 등이 있다.

들머리인 산성고개에선 청주시내가 가깝다. 청주시내의 숙소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날머리인 분젓치에서는 증평의 좌구산자연휴양림(835-3871)이 가깝다. 숲속의 집 4인실(6만 원), 8인실(11만 원)과 별무리하우스 3인실(4만 원), 4인실(5만 원), 8인실(8만 원) 등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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