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ㅣ백두대간 12번째 종주하는 정병훈·하문자 부부] "대간을 타야 산을 탄 기분이 들어요"

신준범 기자 2022. 9. 1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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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 회 산행, 대간 10번·정맥 2번· 기맥 완주한 70대 부부

한 번만 완주해도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 백두대간 700여 km를 10번 완주하고, 11번째 종주 중인 부부가 있다. 정병훈(70)·하문자(71)씨 부부다.

이 부부는 대간 외에도 모든 정맥과 기맥을 모두 완주했다. 지맥은 현재 148개를 완주했으며 10개를 남겨두고 있다. 정맥은 산경표 기준 9개 정맥을 두 번씩 종주했으며 낙남정맥은 세 번 종주했다. 대간 11번째 종주는 10월에 끝날 예정이며, 안내산악회를 통해 12번째 대간 구간 종주를 8월에 시작한 상태다.

정병훈ㆍ하문자씨는 20여 년간 숱한 산줄기를 함께 걸어 온 잉꼬부부다.
백두대간과 정맥ㆍ기맥 등 숱한 산줄기를 함께 한 부부.

짧은 지맥 하나 완주하는 데도 3~4일간 온 힘을 다해 걸어야 한다. 하물며 대간은 한 달에 두 번씩 주말에 안내산악회를 통해 부지런히 걸어도 보통 2년은 걸리는 큰일인데, 그걸 11번째 하고 있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일흔의 고령에 부부가 함께 완주했다는 것도 놀랍다.

정병훈씨는 "대간을 타야 산을 탄 기분이 들고 시원하다"고 한다. 하문자씨는 "계절별로 느낌이 다르고 기분이 다르다"며 "갈 때마다 새롭고 좋다"고 한다. 부부는 대간을 걷는 것이 지겨웠던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이 능선에 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또한 '나이 들고 있으니 다음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 정도로 백두대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실제로 대간의 나무에게 '꼭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며 13번째, 14번째 대간 종주를 기다린다.

부부는 경남 남해가 고향이다. 고교 동창으로 1966년 20대 초반에 결혼했다. 179cm의 장신 남편과 158cm의 단신 부인은 금실 좋은 잉꼬부부로 평생을 함께 걸었다. 먼저 산에 입문한 것은 하문자씨다. 원래 자연을 좋아하고 걷기를 즐겨 산을 찾았다.

등산복을 입고 산을 다닌 건 1990년대부터다. 남편인 정병훈씨는 1990년대 후반부터 산을 찾았다. 체중이 123kg에 달했고 가슴에 통증이 오는 등 몸 곳곳에서 이상 신호를 보냈다. 이때부터 산행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백두대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부부는 무작정 '한 번 해보자'며 집을 나섰다.

부부에게 백두대간 등산지도 같은 것은 없었다. 전국도로지도 책 한 권 들고 종주에 나섰다. 그렇다고 장비를 소홀히 한 건 아니다.

2000년 종주 시작 당시 장비 구입에만 250만 원을 썼다. 텐트며 코펠 등 야영장비를 모두 구입해 지리산에서 시작해서 며칠씩 능선을 걷고 걸었다. 놀랍게도 첫날 산행에서 부부는 중산리를 새벽 4시에 출발, 지리산 주능선을 당일에 주파해 저녁 9시에 성삼재에 도착하는 집념을 보였다.

당시 남해에는 대간 전문 안내산악회가 없었기에 승용차에 짐을 꾸려 짧으면 일주일, 길게는 보름을 대간만 탔다. 3박4일씩 야영해 가며 종주산행해서 도로를 만나면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다시 올라와 며칠씩 야영을 이어갔다. 정병훈씨는 "무식해서 용감했다"며 "참 겁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지금이야 길찾기 쉽지만, 그때는 길찾기 어려워서 알바 많이 했죠. 한 번 가면 10kg씩 살이 빠지니 그 재미로 산을 다녔죠."

부부는 남해에서 농사를 짓다 건재상을 열어 2남2녀를 키웠다. 산에 재미를 붙이고는 아들에게 건재상을 맡기고 전국을 쏘다녔다. 현재는 자녀들이 모두 서울에 있어 부부도 2008년부터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했다. 공기가 나쁘다는 등 도시의 단점을 얘기할 법하지만 부부는 서울이 산에 다니기 편해서 좋다고 한다.

칠순을 넘긴 고령이지만 지금도 부부는 일주일에 4~5일을 산에 다닌다. 매주 기본 산행스케줄이 정해져 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안내산악회 무박 대간종주를 가고, 화요일은 안내산악회 오지산행을 가고, 목요일은 안내산악회 명산산행을 간다.

이밖에 틈틈이 부부가 산행을 다니니, 기본 4일 산행스케줄이 있는 가운데 별도의 산행 일정이 추가되는 셈이다.

백두대간과 정맥ㆍ기맥 등 숱한 산줄기를 함께 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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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과 정맥ㆍ기맥 등 숱한 산줄기를 함께 한 부부.

사실 백두대간 무박산행은 한두 번 갔다가 포기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금요일 밤에 서울을 출발해 새벽 4시쯤 산 입구에 도착, 산행을 시작한다. 대간 종주는 구간이 정해져 있어 하루에 최소 20km를 걷는 것이 보통인데, 이마저도 하산 시간이 정해져 있어 여유를 즐길 틈이 없다.

체력이 뒤처져 늦게 되면 안내산악회를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내산악회의 대간 일정은 한 달에 두 번 격주로 진행된다. 매주 대간을 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도 혀를 내두르는 대간 구간 종주를 부부는 매주 참가한다. 각각 다른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매주 종주하는 것이다.

정병훈씨는 산에 다녀오면 산행기를 써서 자신이 운영하는 까페(포털 다음 '아름다운 강산 정병훈&하문자')에 올린다. 산행일수를 계산해 보니 지금까지 1,780회였다고 한다. 하루 3시간 이상 산행만 계산한 결과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첫 번째 대간을 완주했지만 부부는 "지나온 능선이 기억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진부령에서 남진하는 대간 종주를 다시 시작했다. 도로지도책을 구간별로 찢어서 갔지만 정반대 길은 처음 가는 길인 듯 헷갈려서 무수한 알바를 했다. 이번에도 일주일씩, 보름씩 종주를 이어갔다.

부부는 장거리 종주의 노하우로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는 것'을 꼽는다. 젊은 사람들을 토끼라고 부르곤 하는데, 처음에는 빠르게 가지만 나중에 보면 옷 벗어 놓고 퍼져서 쉬고 있다. 나중에 그들이 다시 추월해서 가지만 결국 하산지점에는 부부가 먼저 도착한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쉬지 않는 것이 노하우다.

그래서 부부는 종주를 시작하면 점심 식사시간 외에는 멈추지 않는다. 속도는 남편인 정씨가 훨씬 빨라 두 사람의 거리가 몇백 미터씩 벌어지기도 하지만 내리막에선 부인인 하씨가 더 빨라 균형을 맞춘다.

정병훈씨는 내리막에서 무릎 보호를 위해 천천히 걷고, 하문자씨는 몸이 가벼워 내리막에서 걸음이 무척 빠르다. 부인은 어릴 적부터 시골에서 하루에 20km를 걸어 통학했기에 누구보다 걷는 데에 자신 있다. 정병훈씨는 "71세에 우리 마누라보다 잘 걷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대간 두 번째 종주를 마치고 정맥과 기맥 산행을 시작했다. 2만5,000분의 1 도로지도를 사서 직접 형광펜으로 물길을 지나지 않게 능선을 그어 표시한 지도로 종주했다. 이때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종주했다. 이때도 알바를 숱하게 했다. 하지만 부부는 "알바하면 더덕이라도 캔다"며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지맥을 탈 때는 산삼을 캔 적도 있었는데 이때도 길을 잘 못 들어 알바하는 중이었다.

대간 네 번째 종주부터는 주로 안내산악회를 이용했다. 남해에 있을 때는 부산의 석봉산악회를 이용했는데 부산까지 승용차로 와서 세워두고 버스를 탔다. 서울에서는 요들산악회, 하나산악회, 새마포산악회, 가고파산악회 등 여러 안내산악회를 두루 이용했다. 산꾼들은 부득이한 일이 있어 안내산악회 산행일정에 참가하지 못했을 때 빠진 구간을 임의로 가서 산행한다.

이를 속어로 '땜빵'이라 한다. 정병훈씨는 부득이하게 빠지면 반드시 개인적으로 다시 그 구간에 가서 땜빵한다. 주변 사람들은 "대간을 그렇게 많이 탔는데 한 구간 빠져도 되지 뭘 땜빵을 하냐"고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아내 하문자씨는 10% 정도는 빠졌다고 고백한다. 자녀들이 SOS를 요청하면 손자를 돌봐줘야 하기에 남편만 산에 보낸다. 그래서 집안 대소사나 손주들을 돌봐주느라 대간종주 때마다 하문자씨는 10% 정도 빠지게 된다.

정병훈씨는 고령이지만 산꾼들 사이에서 힘 좋기로 유명하다. 발도 빠르고 개척산행도 강해서 선두를 놓치지 않는다. 최근 10번째 대간 완주를 할 때는 겨울이었는데 눈이 허리까지 쌓인 상태였다. 10km 구간을 혼자 러셀해서 결국 10차 완주에 성공했다.

부인이 러셀하면 체중이 가벼워 발이 이중으로 빠져 더 힘들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길을 외울 정도가 되어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대간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도둑산행해야 하는가

"대간 전체에서 일곱 군데 정도가 통제구간이에요. 너무 통제구간이 많아요. 설악산 황철봉 같은 데는 순 너덜길이라 사람들이 다닌다고 해서 훼손될 것도 없어요. 언제부턴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역할이 국민들이 산을 못 가게 막는 것이 되어버렸어요. 산림청도 비효율적인 예산낭비가 너무 심해요. 길목마다 엄청 큰 대간 표지석을 세워뒀어요. 기존에 있던 산길은 보존한다며 못 가게 막고, 옆에 나무 베어가며 넓은 임도를 만들고 있으니…, 이게 환경에 맞는 건가 싶어요. 그 깊은 산중에 쓸데없이 비싼 수입목재로 데크 깔아둔 곳이 많고 정작 필요한 곳엔 고정로프 하나 없는 곳도 많아요."

그의 말처럼 백두대간을 완주하려면 부분적으로 통제된 곳이 많아 불법을 자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몇 년 동안 대간을 종주하면 우리 땅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애국심을 가지게 된다.

백두대간과 정맥ㆍ기맥 등 숱한 산줄기를 함께 한 부부.

정부 입장에선 휴양림 하나 더 만들고, 무분별하게 오토캠핑장을 만드는 것보다 백두대간을 가도록 독려하는 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백두대간을 완주한 자는 범법자가 되는 신세다.

"어떤 곳은 산지기들이 아침 8시부터 나와서 지켜요. 그전에 초소를 통과하려고 야밤에 산을 뛰다시피 해서 가요. 얼마나 위험합니까. 어차피 대간 가는 사람은 다 통과한다는 걸 산림청 산지기나 국립공원 직원들도 알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정부가 근본적으로 해결해 줘야 합니다. 2m 폭의 작은 길 하나만 내줬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예약제로 한정된 인원이라도 통과하게 해줘야 해요. 헌법에 국가는 국민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언제까지 우리가 도둑산행을 해야 합니까. 국민들이 안전하게 우리 강산을 즐길 수 있게 해줬으면 합니다."

산행 쉬는 날도 산에 가는 못 말리는 부부

부부에게 대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을 물었다. 정병훈씨는 설악산을 최고라 꼽는다. 그는 "지리산, 덕유산, 대야산도 좋지만 설악산만큼 신비로운 경치를 볼 수 있는 산은 없다"고 말한다. 하문자씨는 그냥 떠나는 게 좋고 점봉산에서 본 운해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이들은 산줄기 종주에서 알바를 적게 하려면 예습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넷과 등산지도 등 다양한 자료가 있으니 사전에 공부하고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씨는 "아무리 길이 잘 나 있어도 갈림길에서 그 찰나를 놓치면 알바를 한다"며 "무조건 빨리 가려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산에 가면 갈 산줄기가 다 보인다"며 "어느 정도 산에 다닌 사람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길을 찾는다"고 한다.

그는 2003년 고향 남해의 산줄기를 개척하기도 했다. 톱으로 덤불을 자르는 등 등산로를 개척해 60km의 산길을 만들었다. 이를 '남해산줄기'라 이름 붙였으며, 이후 남해산악회에서 군청으로부터 매년 지원금을 받아 등산로를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안내산악회에서 1대간 9정맥을 완주한 증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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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기념으로 동남아 최고봉 키나발루를 오른 정병훈ㆍ하문자씨.

"산은 거짓이 없어요. 산을 타는 사람도 자신을 그대로 보여 줘야 산이 받아줍니다. 진짜 산꾼들은 산에서 휴지를 주워 오지는 못할망정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가끔 언론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산꾼들이 산에서 산나물이랑 희귀식물을 채취한다고 하는데, 산꾼들은 절대 그러지 않아요. 우리가 욕을 먹는 게 억울한 면이 있어요."

대간, 정맥, 기맥은 부부가 함께했지만 지맥은 절친한 산꾼들과 같이 해왔다. <신산경표> 저자인 박성태 선생과 '준·희' 표지기로 유명한 부산의 최남준, 김태영, 김우항씨가 절친한 지맥 동료들이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4박5일씩 산행한다. 10년을 함께하다 보니 이제는 여간한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다. 부부는 길찾기 어려운 곳에 표지기를 달기도 하는데 최남준 선생이 디자인해 준 표지기라고 한다.

부부가 산을 다닐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는 자녀들의 지원이다. 두 사람이 일흔이 넘어서도 아픈 곳이 없는 것은 꾸준한 등산 때문이라 여긴다. 그래서 "보통 우리 나이에 드는 병원비에 비하면 산행비용이 얼마나 저렴하냐"며 "산에 갈 일이 있으면 안내산악회 회비를 자녀들이 알아서 입금해 준다"고 한다. 한 번은 딸이 산행을 따라왔는데 10시간을 걷는 걸 보고 "아빠 엄마가 산에 놀러 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들은 쉬는 날도 "산이나 갈까"하고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근교 산을 다녀온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못 말리는 산사랑을 알기에 칠순선물 역시 산을 선물했다. 동남아 최고봉 코타키나발루(4,095m) 산행을 다녀 온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가뿐하게 정상에 올랐다. 자녀들은 늘 함께 산에 다니는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한단다.

"자식들이 자꾸 식사 같이 하자는데, 우리는 산에 가서 밥 먹는 게 제일 행복해요. 도시락이 시내에서 먹는 진수성찬보다 못하겠지만 제일 맛있는 공기를 먹고 오잖아요. 또 팔등신 미녀인들 나이 들면 무슨 소용입니까. 이렇게 아내와 함께 다닐 수 있으니 그게 좋죠."

그에게 대간의 의미를 물었다. 정병훈씨는 "나라에 충성할 수 있는 길은 대간을 사랑하는 것"이며 "백두대간은 내 신조"라고 힘주어 말한다. 부부는 칠순이 넘고서 더 천천히 산길을 걸으려 노력한다.

죽을 때까지 산에 가는 것이 이들에겐 당연한 계획이므로 "천천히 아껴가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은 예전보다 체력이 떨어진 아내를 위해 암릉 구간이 나오면 우회한다. 오래도록 대간을 타고 또 타고 싶어서다.

한 번 완주도 어렵다는 백두대간 700여 km를 12번째 타는 부부의 놀라운 대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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