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수칼럼] 기업 이탈 부추기는 '정치리스크'
美 등 경쟁국 투자유치 목숨 거는데
우리는 지원은커녕 뒷다리 잡기만
반도체지원법도 40일 넘도록 표류
위기 극복 여부는 정치권에 달려
최근 들어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나라마다 기업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프랑스와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풀어가며 해외 기업에 손짓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연달아 통과시키며 투자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볼 부분은 대통령과 행정부·의회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니 법안 통과도 초스피드다. IRA의 경우 법안이 상·하원 통과에 이어 대통령의 서명을 통해 정식 발효되기까지 열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반도체지원법도 불과 이틀 만에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미 상무장관은 한국 투자를 저울질하던 대만의 반도체 웨이퍼 생산 업체를 설득해 7조 원 규모의 투자를 미국으로 돌리기도 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미국의 고용 상황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다.
한데 우리나라의 사정은 경쟁국들과는 딴판이다. 기업 지원은 고사하고 갈길 바쁜 기업들의 뒷다리 걸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반도체특별법’만 하더라도 법안이 발의된 지 40일이 넘도록 국회의 관련 상임위원회에 상정도 안 된 상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까지 만들어 법안 통과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법안이 하염없이 표류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칩4 동맹’ 부상 등 세계 반도체 시장이 재편되는 민감한 시기에 우리만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권이 기업의 힘을 빠지게 하는 대목은 이 말고도 무수히 많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야당들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불법 파업으로 기업이 타격을 입은 경우라도 노동조합이나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가뜩이나 파업 중에 다른 근로자를 사용하는 대체근로가 금지돼 있는 마당에 손해배상청구권 행사마저 제한하면 기업들은 경영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경영계가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은 사용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야당은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필연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투자 이탈을 초래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주요 20개국(G20)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순위를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는 2017년 15위에서 지난해 17위로 두 단계나 떨어졌다.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FDI 유치액은 110억 9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나 줄었다. 반면 올 1분기 국내 기업들의 해외투자액은 254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23.9%나 증가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우리나라의 투자 역조 규모는 807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로 들어온 금액보다 해외로 빠져나간 금액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투자 역조 규모는 2014년 이후 7년 동안 5배나 늘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앞으로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급격한 금리 인상 등으로 내년 경기 전망은 매우 어둡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1%에서 2.5%로 대폭 낮췄다. 외부 기관의 전망은 더 비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 한국의 성장률을 2.1%로 낮춰 잡았고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1.7%를 제시하는 상황이다.
지금은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정부와 기업·정치권이 똘똘 뭉쳐도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때에 정치권이 기업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리스크만 더 키우면 기업들은 투자처를 해외로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경제를 살리는 것도,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물 건너가고 만다. 경제위기 극복이 정치권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철수 기자 cso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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