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애플·MS 혁신 뒤엔 제록스의 실패 있었다

박준호 기자 2022. 9. 15. 17: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역설계
론 프리드먼 지음, 어크로스 펴냄
분석할 대상 역방향으로 뜯어보고
모방 넘어 성공 끌어낼 패턴 도출
경쟁자와 차별화할 요소 첨가해야
자신만의 '성공 공식' 만들수 있어
[서울경제]

빈센트 반 고흐가 화가로 살았던 기간은 고작 10년이지만, 그의 작품은 불멸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는 짧은 기간 장 프랑수아 밀레, 테오도르 루소 등 당대 화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인물과 풍경 묘사를 터득했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뜯어보며 색채와 붓 터치의 활용 등을 관찰했다. 감탄할 만한 작품이 있으면 복제화를 구해서 소장하면서 치밀하게 분석했다. 특히 일본 판화의 경우 숨질 무렵 100점 이상 소장하고 있었다. 고흐는 이런 분석을 토대로 서로 다른 장르의 독특한 요소를 결합해 자기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밀레의 작품에서 농부의 고단한 일상을 묘사하는 법을 배웠고, 인상주의와 일본 미술의 기법도 받아들였다.

사회심리학자이자 행동 변화 전문가인 론 프리드먼은 고흐가 작품세계를 완성하는 과정이 역설계(Reverse Engineering)와 같다고 말한다. 역설계는 특정한 대상이 성공했던 패턴을 발견하기 위해 이를 체계적으로 분해해 탁월함의 비밀을 알아내고 중요한 통찰을 뽑아내는 접근법을 말한다. 고흐가 수련한 과정은 복제약 사업자들이 약제를 분석해 화학 성분과 함량을 알아내는 역방향 작업을 거쳐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프리드먼은 신간 ‘역설계’에서 비즈니스적 성공을 거둔 이들 상당수가 역설계 접근법을 구사했다고 강조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운영체제 개발, 스티브 잡스가 세계 최초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만드는 등의 혁신에도 역설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제록스가 개발했던 개인용 컴퓨터 ‘알토’는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쓴 혁신적 제품이었지만, 제록스는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잡스는 알토의 기능, 특성, 디자인 등 세세한 부분까지 분석해서 ‘애플’을 개발하는데 이용한다. MS도 알토의 운영체제를 역설계한 결과를 토대로 윈도 운영체제의 시초를 만들어냈다.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성장한 지역 맛집, 조회수 7000만건 이상인 TED 강연 등을 역설계 방식으로 뜯어보며 성공의 전략을 분석해 본다. 중요한 건 분석 대상을 뜯어본 다음 단순히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성공을 끌어내는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는 일이다. 저자는 TED 강연 중 조회수가 가장 높은 켄 로빈슨의 ‘학교가 창의성을 죽이는가?’를 예시로 든다. 강연의 길이는 얼마나 되며 단어는 몇 개를 썼는지, 도입부에 이어 주된 논지는 어떻게 이어가는지, 예화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치 혹은 청자를 대상으로 한 질문은 얼마나 썼는지 등을 세세하게 분석한다. 강연 내내 감정의 흐름을 어떻게 가져갔는지도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각자의 스피치 방식과 비교한 다음 보완할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역설계를 통해 패턴을 찾아냈다면, 그 다음 단계로 경쟁자들과 차별화할 요소를 집어넣어야 한다. 마블 스튜디오는 첫 영화인 ‘아이언맨’ 이래 계속해서 히어로물이 아닌 다른 장르에 강점이 있는 감독을 기용하면서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고, 진부함을 벗어나곤 한다. 혼자 일하는 직업이라도 사고에 자극을 줄 수 있는 긍정적 만남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거인들의 탁월함을 풀어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말한다. 불멸의 논픽션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처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글래드웰의 공식을 나만의 것으로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질문해야 한다고 책은 강조한다. 책은 자기만의 공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팁을 몇 가지 전한다. 그가 제안한 것은 △비판과 능력의 격차를 받아들이고 끈기있게 수정하라 △중요 항목을 수치화해 점검하는 점수판을 만들라 △리스크를 감수하되 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고안하라 △편안함과 익숙함을 경계하라 등이다.

이 과정에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찾아서 ‘똑똑한 질문’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게 눈에 띈다. 전문가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져 더 자세한 설명을 유도하고, 질문을 통해 전문가 자신의 여정과 프로세스와 발견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책은 강조한다. 1만7800원.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