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숨진 스토킹 피해자..'스토킹처벌법' 시행 1년 만에 '유명무실' 재점화

이승환 기자 원태성 기자 2022. 9. 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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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가능 범죄였으나 제도 허점으로 피해자 끝내 숨져
스토킹처벌법 지난해 10월 시행..'처벌 강화' 취지 무색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가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호송되고 있다. 14일 밤 9시쯤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무하다 직위 해제된 30대 남성 A씨가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 B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했다. 범행 당시 화장실에 있던 승객이 피해자의 비명을 듣고 비상벨을 눌렀고 역사 직원 2명과 사회복무요원 1명, 시민 1명이 가해자를 제압한 뒤 경찰에 넘겼다. 2022.9.15/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원태성 기자 = 신당역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스토킹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의 실효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경찰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보호조치인 잠정조치 등을 취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초기 강력한 보호조치로 예방할 수 있었지만 제도적 허점으로 결국 피해자가 숨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됐다는 지적이다.

◇'성범죄' 피의자, 스토킹처벌법 입건했으나 영장 신청 안해

15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밤 9시쯤 신당역에서 1시간10여분을 기다린 30대 남성 A씨는 화장실을 순찰하던 20대 여성 역무원 B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했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계획한지는 오래됐다고 진술했다. B씨는 심폐소생술 등 응급 처치를 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날 오후 11시31분 끝내 숨졌다.

두 사람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로 파악됐다. A씨는 과거에도 피해자에게 스토킹과 불법촬영물 활용 협박 등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경찰은 피의자가 오랜 시간 범행을 계획한 보복성 범죄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논란이 되는 지점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경찰이 A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B씨는 앞서 지난해 10월7일 카메라등이용촬영과 촬영물등이용협박 등 혐의로 경찰에 A씨를 고소했다. 다음날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해 그 이튿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B씨는 이후에도 A씨가 자신을 계속 스토킹 한다며 또다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은 지난 1월27일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주목할 것은 당시 A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스토킹처벌법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21일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의 핵심은 반복적으로 스토킹 범죄를 저지를 경우 최대 징역 3년 또는 벌금 3000만원에 처하는 것이다. 흉기를 이용하면 최대 5년 징역 또는 벌금 5000만원으로 처벌 수준이 높아진다.

그러나 경찰은 스토킹처벌법 수사 당시 A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A씨가 영장까지 신청된 성범죄 피의자인 점을 고려하면 안일한 대응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스토킹 처벌 강화'를 취지로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도 함께 나오고 있다.

◇제재 수준 '1000만원 이하 과태료' 솜방망이 논란

경찰이 B씨를 대상으로 한 안전조치를 해제한 점도 논란이 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B씨가 최초 고소장을 제출한 지난해 10월 이후 그를 신변보호 112시스템에 등록하는 등 안전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치 않아 잠정조치나 스마트워치 지급, 연계순찰 등 다른 강도 높은 조치를 하지 않았다.

특히 잠정조치는 스토킹범죄 재범 우려가 있는 가해자에게 △서면경고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조치를 하는 것이다.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지만 '잠정조치 기간은 1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돼 제재 수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경찰은 100m 이내 접근 금지와 전화 금지 등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긴급 응급조치도 할 수 있으니 이 역시 위반에 따른 제재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로 처분에 불과하다. 법 논의 단계부터 제재를 실형에 준하는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보호조치를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사각지대'가 여전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스토킹하던 30대 여성을 살해한 김병찬 사건 이후 '스토킹처벌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여기에 이번 사건이 더해지면서 스토킹처벌법을 둘러싼 '유명무실' 논란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잠정조치나 스마트워치 등 보호조치를 피해자가 원치 않아 이뤄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스토킹처벌법 관련 보완을 논의할 때 고려해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변 관리에 문제가 있어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며 "(지난해 11월 김병찬 사건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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