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2·12반란군에 맞선 형님, 전사자 된다면 더 바랄게 없다"
반란세력 막다가 숨졌는데 당시 軍은 '오인 사격' 처리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그 당시만 해도 군사독재 시절이라 항변할 힘이 없었다. 진정을 해도 먹히지 않으니까…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지난 1979년 '12·12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에게 살해된 고(故) 정선엽 병장의 동생 정규상씨(63)의 말이다.
뉴스1은 15일 오전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정씨를 만났다.
정씨의 3살 터울 형인 정 병장은 43년 전인 1979년 12월13일 오전 1시40분쯤 국방부 벙커 초병 임무를 수행하던 중 군사반란 세력에 맞서다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전역을 불과 2주 앞둔 때였다.
당시 군 당국은 정 병장이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 때문에 '순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생 정씨는 군의 설명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장례식에 온 형의 동료들 얼굴이 부어 있던 것을 보고는 '형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숨기려는 군이 이들을 구타해 입막음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 것이다.
그러나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형의 동료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설 것 같지도, 정부에 진정을 제기해도 받아들여질 것 같지도 않아 형의 죽음을 가족들의 슬픔으로만 남겨둬야 했다는 게 동생 정씨의 설명이다.
그러던 중 고인이 숨진 지 39년이 지난 2018년 9월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가 출범했다. 군 복무 중 사망했으나 그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사건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다.
고인에 대해 대학교 명예졸업장 수여 등 추모 사업을 진행하려던 한 진정인이 고인의 공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점을 이상히 여겨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에 진상규명을 요청했고, 이에 위원회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국방부 헌병대와 공수여단 장병 약 40명에 대한 대인조사, 사건 수사·재판기록 및 국가기록원 보존문서 등에 대한 대물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위원회 조사 결과, 정 병장이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로 숨졌다는 당초 군의 설명은 거짓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위원회가 올 3월 공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군사반란이 발생해 '진돗개 하나' 발령된 1979년 12월12일 밤 9시쯤 고인은 국방부 벙커 입구에 초병으로 추가 배치됐고, 이튿날 오전 1시40분쯤 국방부에 진입한 공수여단의 무장해제 지시에 대항해 몸싸움을 벌이다 고인은 목에 권총 1발, 가슴 부위에 소총 3발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이후 위원회는 올 4월 국방부에 고인의 사망 구분을 '순직'을 '전사'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고 국방부는 현재 그에 대한 심사를 진행 중이다.
이 사건 진상규명을 담당한 오병두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비상임위원은 "당시 군사반란 세력을 상대로 정당한 직무집행 중이던 초병이 총격에 의해 사망에 이른 사건"이라며 "국방부에 고인에 대한 사망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할 것을 요청해 망인과 유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군인사법'은 '적이나 반국가단체(이에 동조한 사람을 포함한다)에 의한 테러·무장폭동·반란 또는 치안교란을 방지하기 위한 전투 또는 이와 관련된 행위 중 사망한 사람'을 전사자로 분류하고 있다.
동생 정씨는 "형님은 군사반란에 맞섰기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전사자"라며 "순직이 전사로 바로 잡힌다면 돌아가신 형님의 명예도 회복될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형님을 사살하라고 명령한 사람도 '내가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제야 사건 관계자들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며 "그 사람들도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일 테니 처벌을 원하진 않는다. 솔직히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생전에 우리 형님이 다섯 자식 중 제일 아까운 자식이라고 했다"며 "어머니가 진상규명 결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가장 아쉽다"고 전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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