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오스카 수상' 트로이 코처 "농아인도 하나의 인간으로 봐주세요"

강선애 2022. 9. 1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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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수상 후 남기는 소감이 아닌, 시상을 위한 호명만으로 감동을 전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인을 상대로.

그 경이로운 순간이 지난 3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펼쳐졌다. 배우 윤여정이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영화 '코다'에 출연한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가 수상자라는 걸 수어로 알리고 축하를 건넸을 때, 그리고 코처가 두 손으로 수어 소감을 전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윤여정이 옆에서 트로피를 대신 들어줬을 때. 그 순간을 지켜본 세계인들은 울컥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언어가 달라도, 소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그런 특별한 기억을 남긴 배우 트로이 코처가 한국을 찾았다. 이번 방한은 특별하다. 배우로서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닌, 내년 7월 제주에서 열릴 '2023 제19회 세계농아인대회'의 홍보대사로서다.

오스카에서 상을 받은 후 코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배역을 따내기 위해 먼저 제작사를 찾아가지 않아도, 그에게 출연 러브콜이 쏟아진다. 어떻게 보면 코처는, 오스카에서 상을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농인이 됐다.

높아진 위상만큼, 코처는 더욱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더 많은 농아인들을 위해 앞장서고자 한다. '세계농아인대회'를 홍보하는 것에서 나아가, 농아인들의 인권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코처는 말한다. "농아인도 하나의 인간으로 봐달라"고.

Q. 한국 방문은 처음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와보니 어떤가요?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코처: 맞아요. 한국 방문은 처음이에요. 며칠 지내며 여러 가지를 체험했는데, 제일 인상에 남은 건 한우였어요. 미국에서 먹어보지 못한 고기 맛이에요. 너무 맛있더라고요.

Q.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윤여정 배우의 배려가 돋보였던 시상이 화제를 모았어요. 당사자로서, 어떤 기분이었나요?

코처: 윤여정 배우는 한국인이고 미국 문화가 아닌 한국 문화가 익숙한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수어로 수상자를 발표하고 트로피를 들어줄 수 있는지, 그건 농아인을 위한 문화인데 그걸 어떻게 알고 그렇게 해주셨는지, 저도 대단히 놀랐고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아무래도 삶과 연기에 대한 내공이 워낙 깊은 분이라, 저한테 그런 배려를 해주신 거 같아요. 트로피를 바닥에 두고 수어를 해야 하나 했는데, 덕분에 편하게 소감을 전할 수 있었어요. 행여나 저와 윤여정 선생님이 사전에 상의해서 그 장면을 연출한 거라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Q.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나요?

코처: 후보가 다섯 명이었는데, 그 누구에게도 상이 돌아갈 거란 보장은 없었어요. 그래서 전 기대하기보다는 침착하게 결과를 기다렸죠. 만약 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도 배우 활동을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려 했어요. 그런데 제 이름이 호명돼서 정말 놀랐죠.

Q. 그렇게 상을 받은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코처: 전에는 제가 직접 할리우드 회사를 찾아갔다면, 상을 수상한 후에는 프로듀서, 감독, 작가 등 여러 분들이 절 찾아와요. 그래서 저한테 더 적합한 작품이 뭔지, 생각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어요.

Q. 작년 수상자 윤여정 배우가 올해 시상자로 나선 것처럼, 내년에는 시상자로 다시 아카데미 무대를 찾을 텐데요. 어떤 시상을 하고 싶다, 구상하고 있는 게 있나요?

코처: 제가 올해 상을 받을 때 많은 분들이 양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박수의 의미를 담은 수어를 보여주셨어요. 제가 내년에 상을 주기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른다면, 그때의 감사 인사를 꼭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외의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긴 한데, 그건 공개하지 않을래요.(웃음) 다음에 제가 상을 드릴 분이, 한국의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Q. 지난 수십 년간 연기를 해왔어요. 장애를 갖고 연기를 계속한다는 게 쉽지 않은 도전의 연속이었을 거 같은데요. 그럼에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코처: 전 우리 안에 갇힌 생활을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네모 반듯한 사무실 안에서 생활하는 것보단, 외부에서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죠. 그런 성격에 더해, 어릴 때부터 연기에 대한 꿈을 품고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계속 보며 자라왔어요. 돈과 상관없이, 전 연기 자체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연기를 포기하지 않을, 강한 열정이 있었죠. 그 결과 제가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우스갯소리지만, 이번 상으로 그동안의 보상을 다 받은 거 같아요.

Q. 최고의 배우의 자리에 오른 코처를 보며, '제2의 코처'를 꿈꾸는 후배 농아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코처: 연기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거기에 '책임감', '겸손함'까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다면 후배들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만약 제가 성격이 괴팍했다면, 제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을 거예요. 책임감이 없는 행동을 하는 것도 배우로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이고요. 무엇보다 본인이 하려는 의지도 필요해요. 전 이 세 가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세계농아인대회'의 홍보대사가 됐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요?

코처: 농아인들의 인권, 교육, 농문화를 위해 힘쓰고 싶어요. 그동안 농아인들이 받았던 불평등과 억압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 세계 농아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해요. 농아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홍보도 하고 다방면에서 신경 쓸 예정이에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 한국의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 같은 것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해요. 다만 제가 한국에 와서 받은 느낌은, 그래도 한국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높고 많이 성숙하다는 거예요. 한국 정부가 한국농아인협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지원을 잘 해주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이렇게 한국에 올 수 없었겠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절 보면 사람들이 손으로 가리키며 "저 사람은 농아인이야" 라고들 해요. 그러지 않아 주셨으면 해요. 절 농아인으로만 보지 말고, 그냥 한 사람으로, 하나의 인간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인터뷰 그 후…

인터뷰가 이뤄졌던 지난 7일 오후, 코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윤여정의 나라' 한국에 왔지만, 코처는 따로 윤여정을 만날 약속을 잡지는 않았던 상태였다. 그런데 그날 코처는 정말 '운명처럼' 길 위에서 윤여정을 만났다.

코처는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장애예술인 특별전 관람을 마치고 춘추관 앞에서 차량을 기다리던 중 우연히 윤여정과 조우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윤여정이 차량을 타고 귀가하던 중 코처 일행을 발견해 차를 멈춰 세웠다. 이렇게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반갑게 대화를 나눴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순간을 남겼다.

정말 기적 같은 만남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는 "진짜 이건 신이 부여한 선물 같다"며 두 사람의 놀라운 만남에 감격스러워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농아인협회 제공]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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